수십 년을 개인주의적인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최근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아요. 


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제된, 혼자 사는 인간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삶을 열심히 사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무인도에 혼자 살면서 아름답고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나요?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살았지, 만약 무인도에 계속 혼자 살게 될 운명임을 


알았다면 그때부터는 퍼져서 아무렇게나 살았을 거예요.) 


예전에 어떤 정신과 의사의 자살시도자에 관한 통계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출판된 책인데 제목을 잊어먹었어요. ㅠㅠ)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 혹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자기효용감을 느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살하고 싶어 한대요. 


유대감이나 소속감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이고, 자기효용감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죠. 


한 마디로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드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그런데 어떨 때 다른 사람들이 나와 연결되고 싶어하고 나를 쓸모 있는 존재로 여길까요? 


당연히 내가 그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때겠지요. 작게는 나와 함께 있을 때 즐겁다든지, 생활 속에서 내가 소소한 도움을 준다든지, 


크게는 내가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때겠지요.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려고 하지 않고, 내가 가진 능력이나 시간이나 돈, 사회적 지위 등 그 어떤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려고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고 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할 리가 없겠죠. 


나를 그들의 삶에 쓸모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요. 


그러니까 계속 이기적으로 살면 결국엔 나로 하여금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유대감이나 자기효용감을 얻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돈이나 지위가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고 삶이 허무해질 테고요. 


결국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소속감, 그리고 자기효용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간은 이기적으로 


살아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인간이 선한 존재라서 이기적으로 살면 행복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죽어버리고 싶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기적으로 살면 행복할 수가 없어요. 


어느 누구도 이기적인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을 존경하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도 아마 나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 그 관계가 쉽게 끊기지 않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내가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필요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인간은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애완동물이 있을 때 오히려 힘이 나는 존재죠. 


내가 밥을 안 주면 이 녀석이 굶어죽는다는 걸 알 때, 내 밥은 귀찮아서 안 챙겨 먹어도 이 녀석 밥은 챙겨주면서 힘을 내죠. 


아마 자식이, 그리고 배우자가 이런 존재일 거예요. 남편이나 아이들 밥 해주러 집에 가야 한다는 엄마들을 볼 때 그렇게 매여 사는 게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책임감이 그 엄마들에게 열심히 살게 하는 힘을 줄 거예요. 


나만 바라보고 사는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이겠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험한 세상에서 버티면서 


열심히 살게 하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거예요.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건 의외로 내가 열심히 살게 하는 힘을 주죠.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을 때, 그로 인해 감사와 존경, 사랑을 받을 때, 사는 게 행복해지는 존재이고 


그런 조건을 만들어 가려고 부단히 애쓰는 존재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돈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애쓰고 


그것을 다 얻은 후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인생이 허무해지고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존재고요. 


인간은 참 이상해요. 항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면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나에게 의지하는 인간이 하나도 없으면 


살고 싶어하지 않는 존재라니.... ^^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느냐고 질타하신다면... 그건 아마 제가 사람들과 열심히 관계 맺지 않으면서도 여태까지 그럭저럭 


살아올 수 있었던 성격과 운빨 때문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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