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옛날엔 돈좀 벌었다는 사람들이 사업병에 걸려서 돈을 다 날리는 게 이해가 안됐어요. 그 돈이 있으면 건물만 샀어도 몇백억은 더 벌었을텐데...라며 의아해했죠. 나라면 더 똑똑하게 굴 수 있었을텐데...라고 막 비웃고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이해가 돼요. 내가 생각하는 돈과 사업의 관계가 뒤바뀌었거든요. 사업이라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사업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거란 걸 말이죠. 나이먹은 사람들에게 돈이란 건 결국 사업이라는 기차를 달리게 만들기 위한 연료...수단에 불과한거죠. 돈이 목적이 아니게 되거든요.



 2.그 사업이 망하든 말든, 사람에게는 그럴듯한 명함 한 장이 필요한 거거든요. 왜냐면 백억이 있어봐야 뭘 하겠어요. 백억원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백억원을 가진 소비자로 살아갈 뿐이거든요. 백억을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후회를 하든 말든, 일단 사업을 시작하는 게 사람의 본성인 거예요. 


 그래서 강남을 다녀보면 정말 1평짜리 사무실 빌려놓고 'XX회사 대표'라고 박아놓은 명함 들고다니는 놈들도 흔해요.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지만 명함 한 장이라도 있어 보이게 파는 거죠.



 3.물론 그렇게 사업병에 걸려서 일 벌이다 망하면 아내와 자식들은 가장을 저주하겠죠. '당신이 사업 한답시고 말아먹지만 않았어도 우린 몇백억 부자였어!'라면서 뭐라고 할 거예요. 예전에는 나도 그런 사람들에게 이입하곤 했어요. 저 사람은 사업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돈을 가져다 처박을까...라며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이해가 돼요. 돈이 많아도 명성과 평판이 없으면 사람은 참을 수가 없거든요. 주위 사람들을 풍족하게 해 주자고 자의식을 다 죽이고 산다...? 글쎄요. 일단 돈이 있으면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해요.



 4.휴.



 5.보증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보증을 서주는 사람들을 비웃었어요. '멍청한 놈, 보증 서달라고 하는 놈을 믿냐 ㅉㅉ'이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글쎄요.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가요. 일단 보증도 아무나 서는 건 아니거든요. 그가 아무리 서민이라고 해도 평생동안 어디서 일하고 신용을 쌓은 사람이어야 보증을 서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예요.


 그리고 어느날 누군가가 찾아와 보증을 서달라고 하면 그걸 거절하는 건 힘들어요. 상대를 위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서요.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자의식만 엄청 커지니까요. 누군가가 내게 찾아와 책임을 져달라고 말하는 것...그런 것쯤은 멋지게 오케이하는 자기 자신에게 취하고 싶어서죠.



 6.뭐 그래요. 남자는 나이를 먹으면 돈이 많든, 아니면 돈이 많지 않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확장하려고 해요. 그리고 듀게에 언젠가 썼듯, 나이를 먹으면 책임이 곧 권력이거든요. 책임이 많으면 많을수록 권력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자는 부자 나름대로 사업병에 걸려서 가산을 탕진하고, 중산층은 중산층 나름대로 뭘 해보려다가 돈을 날리고, 서민은 서민 나름대로 남의 보증을 서주려다가 말아먹는 결말로 가는 거죠.


 왜냐하면 자의식을 만족시키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방식은 남들보다 더 큰 출혈을 감내하고 감당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거든요. 사업병, 무리한 투자, 보증...남자들은 그런 자기파괴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자의식을 만족시키려고 하죠.



 7.젊을 때도 물론 그렇긴 해요. 50만원짜리 글렌리벳 마시고 있는데 호스티스가 250만원짜리 발렌타인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러한 '부추킴'이 들어오면 남자는 거절할 수 없어요. 설령 통장에 500만원만 남아 있어도 그냥 시원하게 250만원짜리 위스키를 질러버리는 마는 거죠. 


 그러나 어쨌든 '소비자'로서 보여주는 출혈은 감당할 수 있는 거거든요. 다음날 좀 현타가 올 뿐이지 인생의 몇년...또는 남은 인생 전부를 힘들게 만들지는 않아요. 


 

 8.그래서 남자는 젊을 때가 행복한 거예요. 그냥 백화점에서, 술집에서, 클럽에서 조금 무리한 소비를 하는 것만으로 가오도 잡을 수 있고 스스로의 자의식도 만족시킬 수 있으니까요. 무리한 사업을 하거나 남의 빚보증을 서는 건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요.


 그러나 나이를 먹어버리면 고작 소비자로서 부리는 허세 정도로는 만족이 안 돼요. 고작 누군가의 하루 매상을 책임져 주거나 누군가에게 비싼 선물을 해주는 것 따위보다 더더욱 큰 책임...사업을 일으켜서 남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거나 어려운 친구의 빚보증을 멋지게 서 주는 정도는 되어야 스스로가 만족감이 드는 거죠.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싶어요. 조금 큰 씀씀이를 보여주는 것 정도로는 만족이 되지 않게 되거든요. 어렸을 때는 그 정도로 충분했지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5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1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08
123517 프레임드 #466 [4] Lunagazer 2023.06.20 95
123516 엘리멘탈 봤습니다. (약스포) [4] 가라 2023.06.20 517
123515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2] catgotmy 2023.06.20 253
123514 요즘 뉴스들(권경애 변호사, 수능 전문가 윤석열, 가세연 등) [3] 왜냐하면 2023.06.20 535
123513 축구 ㅡ 벨기에 그 콩가루 집안 야그는 계속 이번에는 주장 완장 [3] daviddain 2023.06.20 154
123512 손흥민 ㅡ 알 이티하드/김민재 ㅡ 바이언 &맨시티/이강인 ㅡ 파리 [2] daviddain 2023.06.20 287
123511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1] 조성용 2023.06.20 499
123510 [워너필소] 샤이닝 The Shining 예매창이 열렸어요. [1] jeremy 2023.06.20 279
123509 듀란 듀란 - 퓨쳐 패스트 콘서트 다녀왔습니다. [4] theforce 2023.06.19 255
123508 [넷플릭스바낭] 뭔가 많이 익숙한 맛의 중국산 웰메이드 로맨스, '먼 훗날 우리' 잡담입니다 [14] 로이배티 2023.06.19 479
123507 눈물의 장점 [4] catgotmy 2023.06.19 219
123506 브루노 마스 현대카드 콘서트 다녀왔습니다 [2] Sonny 2023.06.19 559
123505 내셔널 갤러리 전 다녀왔습니다 [2] Sonny 2023.06.19 334
123504 [넷플릭스바낭] 익스트랙션 2: "좀 더 크고 화려하게"가 성공한 경우 [10] 폴라포 2023.06.19 458
123503 파라마운트 플러스가 축구 스폰서 daviddain 2023.06.19 240
123502 후래쉬 봤어요 [4] 돌도끼 2023.06.19 279
123501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1] 물휴지 2023.06.19 109
123500 [철목련] 추억의 여배우 앙상블 영화 [9] LadyBird 2023.06.19 290
123499 현재 영화관 상영중인 '순응자' 추천(스포 없음~) [6] ally 2023.06.19 355
123498 프레임드 #465 [4] Lunagazer 2023.06.19 8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