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족'(2)

2023.05.19 14:57

thoma 조회 수:242

'아베 일족'(1913)

1912년에 메이지 천황이 죽자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 부부가 순사했다고 합니다. 모리 오가이는 평소 이 군인을 존경했다네요. '아베 일족'은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쓰여진 역사 소설이라고 합니다. 5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입니다.

1641년 영주 호소카와 다다토시가 병으로 죽습니다. 주군이 죽으면 가신들이 따라 죽는 순사의 전통에 따라 열여덟 명이 허락을 받아 할복을 합니다. 소설의 앞부분에 이 가신들이 어떤 인연으로 영주를 모시게 되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가 열거됩니다. 이들이 영주가 위독하자 순사를 허락 받는 과정과 영주가 죽은 후 순사를 어디서 했고 누가 뒷처리를 했는지가 줄줄이 이어서 나옵니다. 

맛보기로 한 명만 그대로 옮겨 볼게요. 

<데라모토 하치자에몬나오쓰구의 선조는 오와리 지방의 데라모토에 살았던 데라모토 다로라는 사람이다. 다로의 아들이었던 나이젠노쇼는 이마카와 가문에 봉사했다. 나이젠노쇼의 아들이 사헤에이고 사헤에의 아들이 우에몬 노스케이다. 또 우에몬노스케의 아들이 요자에몬인데 그는 조선 정벌 때 가토 요시아키 부대에 속해 공을 세웠다. 요자에몬의 아들이 하치자에몬인데 그는 오사카 전투 때 고토 모토쓰구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호소카와 가문의 부름을 받고 녹봉 1000석에, 철포 부대 50정의 조장을 맡고 있었다. 4월 29일 안요사에서 할복했다. 53세였다. 후지모토 이자에몬이 뒷마무리를 담당했다.> 

이름도 길고 복잡한데 누가 누구 아들이고 무슨 공을 세워 녹봉은 얼마고 등등의 계통이 나오면 좀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 되긴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열여덟 명의 열거 이후에 순사를 허락받지 못한 아베 야이치에몬이라는 인물이 드디어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찌저찌하여 아베 일족 전체가 본가에서 농성을 하게 되고 토벌이 됩니다. 


이 작품은 거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네요. 오가이의 역사 소설은 사료를 충실히 조사해서 그 안에 있는 '자연스러움'을 존중하는 역사관에 의해 쓰여졌답니다. 변경하는 것은 싫었다고 본인이 수필에서 밝혔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것은 실제 일어난 일을 드러내는 과정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서 인물의 심리가 조금 얹어진다는 것,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해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조금의 상상이 발휘되어 제공된다는 것, 정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대부분 독자에게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창작 부분을 뚜렷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지 싶습니다. 작가의 말을 근거로 보면 일단 일어난 일들, 사건들과 인물들은 모두 사료에 있는 역사적 사실인 모양입니다.


소설 독자로서 이 작품은 내용보다 문장과 서술 방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인이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난중일기를 김훈의 소설에서 조금 맛보았을 때 가졌던 느낌이 떠올랐는데 김훈의 소설은 문체가 두드러지게 앞장선 면이 있습니다만 이 소설은 문체상의 '기교' 같은 것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냥 기름기 없는 정확한 문장에다가 갑자기 싹둑자르듯 서술되는 사건의 전개가 단도직입입니다. 앞서의 '무희', '기러기' 와는 다른 산뜻한? 섬뜩한? 감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카세부네'(1916)

제목 '다카세부네'는 교토에서 오사카로 죄인을 호송해 가는 배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호송하는 관리가 하루는 특이한 죄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죄인으로 인해 자기 삶을 돌아본다는 내용의 14페이지 짜리 짧은 소설입니다.



@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와 '아베 일족'은 무척 인상적이었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와 견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견주기에는 작품 수가 적고 단편 위주니까요. 모리 오가이가 1862년 생으로 소세키보다 5년 일찍 출생했다고 하는데 훨씬 더 예전 사람 느낌이 듭니다. 장남이라서 대접 받았지만 부담도 크게 지고 성장하였고 의대도 최연소(일본은 최연소 비롯해서 최초, 최고 식의 등위를 많이 따지는데 우리 나라가 그 영향을 그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졸업생이라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육군에 지원한 것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공직이 좋다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라 하고요. 여튼 나쓰메 소세키에 비해서 성장 환경이나 진로 선택을 봤을 때 전통의 압박과 영향을 더 많이 받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모리 오가이를 높게 평가 언급한 것을 봤는데 미시마 유키오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모리 오가이 소설 한 권 읽고 아는 체 쓰자니....줄여야 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작품들이 더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7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59
123478 오스카를 부부가 모두 받은 경우는? [10] scherzo 2010.07.14 2777
123477 신촌,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 [9] 01410 2010.07.14 4691
123476 오늘 무릎 팍 도사에 김갑수 나옵니다. [13] DJUNA 2010.07.14 4394
123475 '대부' 아버지와 함께 봤어요. [1] 산호초2010 2010.07.14 2103
123474 퇴근길 봉변 당하는 글? - 젊은 남성의 경우 [7] soboo 2010.07.15 3891
123473 그 멘트는 왜 안바뀌는 걸까요 [3] 메피스토 2010.07.15 2412
123472 개념없는 기자들 참 많네요. [8] 푸른새벽 2010.07.15 3783
123471 부산 1박2일 여행; 가볼만한 곳 알려주세요. [6] 풀빛 2010.07.15 3668
123470 인셉션 아이맥스로 예약했어요. + 디카프리오 잡담 [7] Laundromat 2010.07.15 3324
123469 이쯤에서 돌아보는 노라조의 히트작 슈퍼맨 그리고 연극 뮤직비디오 밀크 2010.07.15 2102
123468 정지선 위반하는 차들 [8] 장외인간 2010.07.15 2686
123467 패러디 영화라면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죠 [5] 밀크 2010.07.15 2670
123466 기사 펌. 제천, 채석장에서 나온 석면 먼지로 뒤덮여, 4대강에도 쓰인다고..ㅜㅜ [2] 검은머리 2010.07.15 2524
123465 Inception: the Cobol Job [1] 날다람쥐 2010.07.15 2562
123464 부산 검찰, 짝퉁운동화 적발 [2] 푸네스 2010.07.15 2801
123463 초등학생에게 적당한 수도권 관광지 질문입니다. [7] sent & rara 2010.07.15 2070
123462 엔터 더 보이드(가스파 노에) 오프닝 크레딧 삽입곡 [1] lynchout 2010.07.15 2802
123461 Roger Ebert on "Inception" [1] 조성용 2010.07.15 2860
123460 [bap] 대학로의 두극장이 하나로 태어났네요(한팩&) [1] bap 2010.07.15 2185
123459 자취생은 H형책상이 싫어요! ㅜㅠ [5] 29일 2010.07.15 786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