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5

2019.02.16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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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긴박했던 두 차례의 회의에서 느낀 것. 
작은 바늘구멍에 두꺼운 실을 꿰려고 애쓴 하루였습니다. 손가락은 너무 둔했고 시력 또한 약했으며, 실은 물에 젖어 있었고 실끝은 풀어져 있었죠. 더 기가 막힌 건 제가 바늘구멍에 실을 집어넣어야 할 이유도 분명치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그 많은 사람들과 온갖 사안에 대해 논쟁한 후에 제게 남은 건 '고독'뿐이었습니다. - - 뭐. 하지만 인간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현실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다음 주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익숙해져 있을 거에요.  그 현장이 다른 지점에서 와서 우연히 목격하는 사람들에겐 놀랍고 동정할 만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2. 자주 느끼는 건데, 하나의 아이디어에 대해 어떤 사람은 why를 질문하고, 어떤 사람은 what을 질문합니다. 전자는 사실 뒤의 진실에 주목하고 후자는 사실을 중시하죠. why라는 질문의 단점은 사실과 진실을 착각하기 쉽다는 건데 당자들은 그걸 자각 못하는 것 같더군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토론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일에 소극적인 사람은 합의된 것이 자기 의견과 다를 경우, 뒤에서 가열찬 불평을 해댑니다. 반대 의견을 확실히 표명한 사람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합의된 의견에 승복하고 군말없이 따르고요.

3. 두 기업의 이해조절에는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할 때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이 있기 마련이죠. 이른바 특이점의 충돌입니다.
이걸 해소하는 방법은? 두 도로를 입체적으로 건설하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죠. 즉 높이라는 척도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데요, 그러나 그 방법으로 충돌 위험은 해결되지만 그림자엔 두 도로의 특이점이 해소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게 돼요.  과연 이것까지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있을까요?

4. 어제 처음 만난 '알렌'이라는 영국인. 그가 지닌 '태도'가 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무엇을 증명해 보이거나 가르키지 않아도, 그 자체로 '경지'가 무엇인지를 알 것 같게 해주는 아름다운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어요. '태도의 예술'을 감상한 듯한 느낌. 
마치 관목 우거진 숲 속에서, 완만히 부는 바람을 느끼며 미동도 없이 꼿꼿이 서 있는 영국 민속화 속의 인물 같았습니다.

저와 이생에서 가장 친했고 존경했던 할아버지의 인상과 매우 흡사했으므로 굳이 적어봅니다.
- 상대와 자기 자신을 향해 동시에 양방향으로, 같은 밀도로 열려 있는 확신에 찬 동작. 
- 사람과 사물을 향해 같은 밀도로, 동시에 양방향으로 열려 있는 균형감. 
- 행위라는 전면과 자아라는 배면, 어느 한쪽으로 치중되지 않은  얼굴. 혹은 양자가 모두 선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얼굴.

5.  일로 만나는 관계에 있어 저에게 선택과 결정의 강도가 심하게 기울어지는 경우, 상대와의 '거리'를 정하는 일이 아직도 저는 곤혹스럽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결정을 망설이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것에 몰두해 있는 상대에게 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을 충분히 양해하고 용납하는 것. 그건 관계의 기본 예의일 뿐 힘들어할 일이 아닌데도 말이죠.

두 기둥 사이에는 거리 혹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빈 곳 때문에 삶이 존재할 수 있는 거겠고요.  무엇으로든 그것을 채우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막연한 생각만 할 뿐이에요. 빈 곳이 없으면, 바라볼 공간의 이격이 없으면, 도무지 아무것도 없다는...  당연한 생각의 기둥에  머리를 찧고 있습니다. 콩.콩.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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