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5 06:49
혼자 있으면 먹으면서 책보는 아주 안좋은 버릇이 있는데, 또 딱 고칠 생각은 별로 들지가 않네요.
먹는 것, 음식 거리 이야기들 자주 나오는 책 있으면 추천 좀 부탁 드립니다. 우선 저부터 시작하자면, 생각나는 것으로는
1) 초원의 집 시리즈 : 로라의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들 정말 묘사가 끝내줍니다. 넉넉지않은 살림에서도 깔끔하고 멋을 내면서 음식을 장만해나가는 품이 인상적이죠. 특히 버터를 누가 본다고, 틀에 넣어 꽃무늬를 내어 쓰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2) 백경 :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해물 스튜라든지, 청어 구이라든지. 이런것이 생각나는데, 나중에 세월의 돌에 오마주되어 더욱 기억이 나네요.
3) 혼불 & 토지 : 토지는 자주 나오는건 아닌데, 초반에 김서방댁이 만들던 호박 버무리 ? 여기 묘사가 끝내줍니다. 서리맞은 시금치는 먹어볼길도없겠지만 왠지 굉장히 달콤할것같은 생각이. 혼불에는 여러가지 음식이 자주 나오는데, 만들다가 숨넘어갈것같아서 별로 식욕은 돋지 않더군요.
요새 피천득의 수필집을 오랫만에 한번 읽어보는데, 여전히 좋은 글이긴 하지만, 조금 욱 하는 부분들이 생기더군요. 예를 들면 딸 서영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들이 자신이 못생겨서 인물좋은 어머니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참, 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글들을 출판한 것인가라는 생각에 씁쓸해졌습니다. 그밖에도, 부인이 주변머리가 없어서 자신이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다행(?)이라는 부분, 인생에 두 여인이 가장 중요한데 , 하나는 어머니이고, 다른 하나는 딸이라는..
혼자 쓰는 일기라면 모르겠으나, 실제인물의 이름을 바꾸어 넣을 만큼 출판을 의도하고 쓴 글들에 이렇게 배우자에게는 무례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아연했는데, 예전에 같은 글을 읽을때는 전혀 느끼지못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아픈 시대를 그리도 오래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별 거슬리지않는 맑고 가벼운 글들만 쓸 수 있었는지.. 아마 그래서 교과서에 실리기도 쉬웠었나봐요.
2019.02.25 08:25
2019.02.25 09:03
추천 감사드립니다. 사실 초컬릿도 들어보기만 했지 책도 영화도 보지 않았는데 이 기회에 한번 봐야겠어요. 그러고보니 오렌지와 또 초콜릿은 또 짤떡궁합인데 추천해주신 책들도 우연찮게 그렇게 되네요 :)
2019.02.25 08:51
피천득 수필에 대한 문제점은 옛날부터 많이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뭐 백인 앞에서만 서면 뭔가 꿀리는 느낌이 든다고 하질 않나, 그래도 내 딸이 어른이 되면 '명예백인'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말이 없나...
아무리 이게 그의 솔직한 느낌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는 솔직한 게 꼭 좋은 건 아니죠.
2019.02.25 09:07
그렇군요.. 저는 예전에 어려서 (10대정도) 읽고 나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좋아하던 글들이 갑자기 이렇게 읽혀서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마 서구적 문화에 대한 동경이 저한테도 있었고, 그것에 별생각없이 공명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었나봐요. 배우자에 대한 배려부족이나, 글속의 서영씨외의 자녀들의 부재.. 이런 것들에 대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구요. 지금 검색해보는 중인데, 정말 비판글이 많네요.
2019.02.25 09:50
2019.02.25 14:22
저도 그 시든 백합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에 대해서 이번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사코와의 '교감'은 전혀 묘사되지않은 '인연'이었죠. 글의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저역시 여전하게 느꼈습니다. 요새의 '소확행'에도 잘 어울리는 글이고, 오래 사랑받을 작가라는 생각은 해요.
지적해주신 '치하'는 이번에도 눈치를 못챈 부분이네요. 단어선택이 참..
2019.02.25 11:28
2019.02.25 14:22
제목부터 멋진 책인데요. 추천감사합니다.
2019.02.25 11:39
2019.02.25 11:41
<프로방스에서의 1년> 안타깝지만 절판되었군요. 작가도 그 사이 고인이 되셨네요.
2019.02.25 14:24
아마존에 있네요. 찾아보니.. 리뷰수가 어마어마한데다가 모두들 만점..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https://www.amazon.com/Year-Provence-Peter-Mayle/dp/0679731148/ref=sr_1_3?ie=UTF8&qid=1551072207&sr=8-3&keywords=my+year+in+provence
2019.02.25 11:45
2. 조실부모하였기에 더욱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컸고, 그래서 딸에 대한 애착도 컸다고 해요. '10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늘에서 보내주신 딸이 서영이'라는 수필 구절을 본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부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무례한 말이지만...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같은 노래를 생각하면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이런 인식이 크게 문제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대는 변화하니 다행입니다.
2019.02.25 14:48
네 그런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배우자에 대한 애정을 글로 표시하는 것은 흔하지않은 분위기였다던가.. 이런 짐작도 들구요.
2019.02.25 11:48
<초원의 집>은 시댁 옆에서 넉넉하게 살던 1권만 벗어나면 애달프기 그지 없어요. "말"로 억지로 양념을 치는 식이죠. "닭파이보다 찌르레기 파이가 좋다" "크리스마스에 이런 맛있는 토끼 고기라니" "갓 구은 빵이 너무 구수해서 버터도 필요없네" "감자에는 역시 소금이지"
2019.02.25 14:40
그렇죠.. 저도 중간중간에 그 가혹한 환경이 느껴진 기억이 납니다. 아파서 누워있어도 도와줄사람하나 없는 상황, 식량이 언제 떨어져 굶주리게 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함.. 가난도 그렇지만, 남편의 '역마살'에 지긋지긋해진 아내의 한숨이 팍팍 느껴지더군요. 참, 여기에서 나온데로 언젠가 애호박으로 애플파이를 만들어먹었는데 은근히 먹을만했던 기억이 나요. 모르게 먹인 사람은 거의 구별도 못하더라는.
2019.02.25 13:48
2019.02.25 14:50
추천 감사합니다. 그런 식으로 강렬한 장면들도 좋아해요. 예전에 감옥에 오래 갇혀있던 죄수가 그나마 친절한 간수가 주던 거친 소금알갱이를 아껴서 녹여먹던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그걸 어찌나 맛나게 묘사했는지, 지금도 김치절이는 알갱이큰소금 보면 그 생각이 납니다.
2019.02.25 13:51
소설가 권여선님의 데뷔작 '푸르른 틈새'도 권장합니다. 자체로 뛰어난 성장소설이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한 묘사가 맛깔나고 실감있게 묘사돼 있었어요.
2019.02.25 16:09
추천 감사합니다. 듀게가 역시 방문자가 적어도 추천의 질에 있어서는 제게는 가장 소중한 곳이에요. 권여선님의 글들을 찾아보다가 한겨례에 음식 칼럼을 연재하신 곳을 발견했습니다. 으아.. 침넘어가네요. http://h21.hani.co.kr/arti/COLUMN/256/
"마지막으로 비장의 밑반찬 가죽장아찌 얘기를 할 차례다. 가죽은 가죽나무(또는 참죽나무)의 순이다. 깨끗이 씻어 연한 소금물에 절였다 지그시 눌러 짜 그늘에서 반나절 이상 꾸덕꾸덕 말려 고추장에 차곡차곡 박아놓으면 장아찌가 된다. 가죽은 정말 오묘한 맛과 향을 내는데, 나무와 쇠와 흙의 맛이 골고루 나서 나는 그 맛을 ‘목금토의 맛’이라고 부른다. 찬물에 밥 말아 가죽장아찌 한 오라기 얹어먹으면 ‘수목금토’의 맛이 난다. 사등분한 김에, 참기름에 비빈 밥과 가죽장아찌 한 줄기씩을 넣어 꼬마김밥처럼 싸먹어도 맛있고, 대접에 보리밥 담고 가위로 잘게 자른 가죽장아찌와 오이지와 열무김치를 넣어 들기름 한 방울 뿌려 비벼먹어도 맛있다. 가죽을 박아놓은 고추장에도 특유의 향이 배어 듬뿍 넣고 비비면 가죽 향이 사무치도록 짙다."
2019.02.25 19:50
앗, 권작가님이 이런 글들도 시리즈로 기고를 하셨다는 사실을 님한테서 듣고 알게 되는군요.
역시 사람은 문학은 경험치와 체화의 힘을 무시할 수 없나 봅니다. 덕분에 저도 감사합니다.
2019.02.25 14:29
윤대녕 작가의 <어머니의 수저> 좋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렌드를 대단히 앞서간 식도락 에세이집이에요.
2019.02.25 16:13
찾아보니 최근에 칼과 입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네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음식뿐 아니라 식재료/지역에 대한 얘기까지 있는 것 같아서 더 끌리네요.
2019.02.26 18:45
저는 최근에 다시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완역본을 보면서 식탐을 느꼈어요...특히 전쟁 후 스칼렛이 먹을 것 동난 타라 농장을 주린 배 잡고 일구며 떠올리던
과거 평화롭던 시절의 식탁은 상황의 특수성(?)이 배가되어 읽는 이에게도 더 맛깔지게 느껴지더군요. 고기즙 소스에 둥둥 떠 있는 햄과 잘 구운 고구마에 버터롤 등등...
2019.02.27 08:54
원하시는 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해림씨의 탐식생활 좋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깊은 내용이 빼곡해요.
며칠 전 읽은 일본 여성작가 모리 마리의 수필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떠오르네요. 모리 오가이의 맏딸인 작가가 어렸을 적 먹은 음식, 커서 해 먹은 음식 얘기로 빼곡합니다.
[초콜릿] 작가로 유명한 조안 해리스의 [오렌지 다섯 조각]도 추천해요. [초콜릿]에도 음식묘사가 좋지만 [오렌지 다섯 조각]도 프랑스 음식 묘사가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