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연결성, 징조)

2019.03.04 06:22

안유미 조회 수:557


 1.휴...지겹네요. 어쩔 수 없죠. 할일이 없으니까요. 할일도 없고...사회와의 연결성도 획득하지 못한 상태죠.



 2.할일이 없다는 건 단순히 노동이나 경제활동을 말하는 건 아니예요. 뭐랄까...일종의 약속같은 게 없다는 거죠. 일이란 건 곧 '사회와의 약속'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야 일을 하는 이유는, 다들 돈을 벌기 위해서이긴 해요.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남겨두고 있으면 불안한 이유는 돈을 못 벌까봐서 그러는 것보다는, 그것이 사회와의 약속이기 때문이예요. 내가 이 일을 정해진 기간 내에 끝내놓지 않으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엿되는 일인 경우가 많거든요.


 직장에 다니든 프리랜서로 일을 하든, 기본적으로 일거리를 맡았다는 건 곧 사회와 타인과의 연결인 거예요. 책임을 동반한 연결인 셈이죠.



 3.그렇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노는 건 재밌어요. 스릴이 있으니까요. 이제 마감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흰긴수염고래 문서를 읽거나 고양이가 트림하는 영상을 보면 괜히 재밌는거예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걸 미루면서 놀면 평소에 재미가 없던 것조차 아주 재밌는거죠. 전에 썼듯이 작업을 해야 하는 시기엔 시간도 자원이거든요. 귀중한 자원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는 건데 재미가 없을 수가 없죠.



 4.휴.



 5.하지만 백수는 그게 문제란 말이죠.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 말이죠.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아무도 좆되지 않는 상황 말이예요. 그리고 시간이 많으면 기본적으로 뭘 해도 재미가 없어요. 시간이 자원이 아니라 짐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백수는 진짜 진짜 재밌는 시간...정말 재밌는 쇼가 방영되거나 나가서 여자들과 놀거나 하는, 극도로 재밌는 시간이 아니고선 재미를 못 느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은 하루에 기껏해야 3~5시간이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백수는 그 하루의 3~5시간의 스위트스폿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거죠. 뭔가 일거리...내가 마감시간까지 완료해서 누군가에게 넘겨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좆되는 일거리가 어깨에 올려져 있지 않으면, 놀아도 재미가 없어요. 


 '정말 일하기 싫은데...딱 10분만 더...20분만 더 놀고 일을 시작하자.'라는 상황에서는 뭘 해도 재밌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졸라 많으면? 뭘 해도 재미가 없는 거거든요.



 6.뭐 그래요...요즘 바쁘게 지내보니 드는 생각이예요. 백수에게 필요한 건 놀면 안된다는 압박감인 거죠. 놀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있어야 노는 게 재밌는 거거든요.


 하지만 그 압박감을 느끼고 싶어서 일감을 너무 많이 따와버리면? 그것도 문제예요. 일이란 건 단순한 압박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실체가 있는 거잖아요. 그게 원고든, 아니면 번역물이든, 기사든...마감시간까지 메이드해서 넘겨주지 않으면 누군가는 엿되는 '진짜 일'이란 말이죠.


 아니 그야 실체가 있긴 있는 일이니까 진짜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만요.



 7.휴...지겹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압박감이 없으면 지겨움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우울하고 슬프네요. 하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죠. 압박감이 없으면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 드는 게 디폴트니까요. 


 나는 착하기 때문에 그냥 공격적이 될 수가 없거든요. 압박이라는 작용에 대해서만 반작용으로 공격성을 띌 수가 있어요. 



 8.수요일엔 사바하를 보기로 했는데 29가 먼저 보고나서 절대로 보지 말라고 경고해왔어요. 정말 재미가 없다고요. 흠 어쩌죠...하지만 그래도 봐야죠.


 추리력이 좋은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읽고도 이미 알았겠죠. 공포 영화를 미친듯이 좋아하는 내가 아직도 사바하를 보지 않았다...는건 당연히 여자때문이라는 거요. 어떤 여자랑 보기로 했는데 그자의 스케줄 때문에 밀리고 밀리다가 이번주 수요일까지 밀렸어요. 



 9.파라다이스시티를 엄청나게 가고 싶어요. 누군가가 태워다 주면 좋을텐데. 요즘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자에게 차가 없어요. 씨메르스파...크로마클럽...아트파라디소 프라이빗스파...너무너무 가고 싶다 이거죠. 날 만날 때 차를 가지고 나와주는 여자들은 굳이 인천까지 가지 않으려고 하고요.


 내일은 뭘하나...가 문제예요. 정확히는 '뭘 하나'가 아니라 '뭘 하면서 밤을 기다려야 하나'겠지만요. 밤만 되면 뭐...어떻게든 되니까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미적미적 가거나, 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이 나를 소환해내는 데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죠. 


 그래서 요즘은 7~8시부터 술집에 가서 죽치고 있지는 않아요. 한 10시...10시 반까지는 절실하게 나를 불러내고 싶어하는 누군가에게 나를 불러낼 기회를 줘보려고 아무데도 안 가고 있곤 하죠. 내가 먼저 어딘가에 가서 자리를 잡아버리면, 절실하게 나를 불러내고 싶은 사람에겐 아예 기회조차 없어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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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야 뭐 늘 비슷해요. 밤에는 여자를 보러 가고, 낮에는 밤을 기다리며 사는 거죠. 그러니까 나의 근황같은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주 오래전에...알았던 사람들, 알았던 사람들의 알았던 사람들의 근황이 궁금해요. 내가 얼굴도 못 본 놈들 말이죠. 걔네들은 나를 전혀 모르겠지만 나는 걔네들을 종종 생각하곤 하죠.


 예전에 알았던 여자의 옛날 남자친구도 궁금해요. 그 여자의 남자친구는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하려고 돈을 모으고 있댔나...뭐 그랬다고 들었어요. 걔는 잘 죽었을까...아니면 아직 죽으러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을까...궁금해요. 만약 안락사했다면 그 과정이 숙련된 기술자들에 의해 진행되었을까? 가능한 한 그 과정을 짧게 줄여주는 기술자를 만날 수 있었을까? 같은 점들도 궁금하고 말이죠.


 예전에 알았던 사장들의 근황도 궁금해서 다시 한번씩 가보곤 해요. 종종 썼듯이 직원이었다가, 자신의 가게를 차려서 사장이 된 젊은 사장이 요즘 많아요. 즉 이전 세대가 밀려나고 있다는 뜻이죠. 


 가끔 그녀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밀려난 사장들'의 가게에도 가보곤 해요. 뭐 사실, 아직 가게를 하고 있다는 건 아직 완전히 밀려나지는 않았다는 거지만요. 그녀들의 가게에 손님이 하나도 없으면 딴데 가려다가도 그냥 눌러앉게 돼요. 뭐 이 일은 나중에 써보죠.


 예전에는 글쎄요...내가 얻을 것에만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꽤 이기적인 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글쎄요. 인간은 결국 자신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게 행복인 것 같기도 해요. 무언가를 주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쓰여지는 것이야말로 기쁨...마음이 놓여지는 종류의 기쁨인 것 같기도 해요.


 결국 인간은 조금씩 약해져가는 것 같아요. 자신이 얻을 것이 있는 상대를 찾아다니다가 자신이 줄 것이 있는 상대를 찾아다니게 되는 것...그런 전환은 내가 오래 전부터 예측하던 징조거든요. 누군가에게 그런 날이 오게 되면 그가 약해지기 시작한 징조일 거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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