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면도날'은 서머싯 몸 자신이 화자로 등장하여 짐짓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인 듯 써나간 소설입니다. 

책 소개에 나오는 정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읽으며 생각한 것을 조금 덧붙이려 합니다.

화자가 관찰한 주요 인물은 래리, 엘리엇, 엘리엇의 조카이며 래리와 약혼했던 이사벨인데, 이들은 대립적인 가치를 지닌 두 세계를 표현합니다. 작가의 지지를 받는 사실상의 주인공인 래리의 여정과 사고 추이가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만 반대편의 세계에 있는 엘리엇도 소설 후반까지 존중을 받으며 등장합니다. 

엘리엇은 인생의 목표가 상류 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사교계의 인정을 받으며 사는 것이었고 인생 초반에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상냥한 천성을 바탕으로 끈기있게 노력을 했고 결국 성공해서 뜻대로 화려하게 산 인물입니다. 이사벨은 삼촌 엘리엇과 기질이 비슷하여 비슷한 경로를 선택하여 살게 되고요.

(작가처럼)어릴 때 부모를 잃고 지인의 손에 자란 래리는 1차대전 참전 때 겪은 일로 삶에 대한 의문을 안게 되고 자신이 속했던 사회를 벗어나 공부와 모색의 길을 나섭니다. 

이들과 인연을 맺은 화자가 수십 년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며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인생에서 자리잡는지(어떤 인물의 경우에는 마무리짓는지)를 대화를 직접 옮기거나 서술하여 전달합니다.


이사벨은 나서 자란 환경에 의해 형성된 '자기 계급 상식'의 틀을 벗어날 생각이 없고 그것이 때로는 현명하게 보이지만 대체로는 속물적인 상류층 여성입니다. 삼촌인 엘리엇은 임종에 임박해 상상하는 천국조차도 자신이 가는 곳이 화려한 상류 계층의 환경일 것이라고, 그곳에 빌어먹을 평등 따윈 없을 거라고 떠드는 사람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라는 예수의 말을 근거로요. 그게 뭐 누구나 환영한다는 뜻이지 계층별로 방이 나뉘어 있다는 뜻이랍니까. 저는 이들과 오래 인연을 이어가는, 엘리엇의 경우 임종까지 지키는 우정을 이어가는 작가인 화자의 심사가 의아했습니다. 엘리엇의 경우 비열한 사람이 아니며,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장점을 미리 얘기하긴 했어요. 이사벨의 경우엔...... 네, 아름답다고 하네요. 작가라면 특히 서머싯 모옴 같은 작가라면 다종다양한 인생 경험이 많아서 타인의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가며 두루 사귐을 이어갈 줄 알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글도 잘 쓸 수 있을지도요. 

저는 그냥 작가(화자)가 자신의 속물성을 인정하고 품은 결과가 아닐까 싶었어요. 

래리의 경우 책을 다 읽고 나니 당시의 여건이 되던 미국인들이 유럽과 아시아를 돌아다니던 것과 크게 다르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물론 유명 호텔과 관광지를 돈으로 주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가난 속에서 노동하며 공부가 목표인 진지한 방랑이었지만요. 래리가 알자스의 수도원 경험 후에 기독교에 대해 실망 섞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기독교 신에 대한 이해(신학 공부)는 부족하지 않나 싶은데 인도에서의 수행 생활을 통해 접한 신비한 체험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소설이 동양사상 체험이라 더 고평가하나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독자인 제가 힌두교 등 인도 사상이 낯설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인물들이 옮겨 다니는 유럽의 여러 장소들이 서머싯 모옴이 지냈던 곳과 겹쳤습니다. 특히 남프랑스의 해안가 동네들이 그렇습니다. 서머싯 모옴은 니스에서 영면했다고 하네요. 제목이 왜 '면도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래리의 위태로운 여정을 의미하는 것인가 짐작해 봅니다.


2. 

애플티비+에서 '유진 레비 : 여행 혐오자의 일탈 여행'을 2회까지 봤습니다. 

제가 본 두 편은 핀란드와 코스타리카였고 베네치아, 유타, 몰디브, 남아프리카, 리스본, 도쿄가 이어집니다. 기대됩니다! 35분 안팎이고요. 

큭큭거리며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도 특별한 곳, 색다른 곳을 특급으로 모시는 여행이긴 하지만 노인네 유머가 즐거워요. 이용 중이시면 추천합니다.  

'아무리 인생을 책에 비유해서 여행을 안 가는 삶은 한 장만 읽은 삶이라고 한들 나는 집이 제일 좋고 덥거나 춥거나 불편한 여행이란 거 싫거든. 하지만 이제 뭐 75세 쯤 되었으니 시야를 넓힐 시기 아니겠어.' 라고 시작합니다. 너무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75세 전에 갈겁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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