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2023.08.30 10:06

Sonny 조회 수:689

예전에 친구와 서태지 이야기를 하다가 다툰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의 갈등 이야기만 계속 하는 것 같군요 ㅋㅋ 저는 인간관계를 소중히 합니다) 저는 나름 서태지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서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서태지가 북공고 짱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너무 황당해서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서태지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 사람이 얼마나 그런 육체적인 다툼을 싫어하고 지배하는 거에 관심이 없는지 알 거다 라고 하면서 서태지가 데뷔초에 자기 일기 형식으로 칼럼을 썼던 것까지 말했는데 안믿더군요. 서태지 몸뚱아리만 봐도 이 사람이 짱이 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하지 않습니까? 그 친구의 논리가 저를 더 얼빠지게 했는데, 너는 서태지 친구나 지인이 아니고 우리 모두 그에 대해 정확한 사실은 모르니 자기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슈뢰딩거의 서태지 같은 논리였습니다. 이 탈진실 post-truth 스러운 소리에 정을 떼버렸죠. 앞으로도 이 친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고집을 부리겠구나...


그 때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건 어떤 것을 이해하는데는 애정이나 호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조금 편향된 단어라면, 호의가 섞인 호기심이라고 해야할까요. 뭔가를 알고 싶어하는 그 욕구 자체가 이미 무언가에 대한 강한 지적탐구심을 일으킵니다. 흔히들 차갑고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에 대해 냉정하고 감정이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실한 관측이 제일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애정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어떤 깊이가 있습니다. 그 안까지 깊숙히 파고들어갔을 때만 보이는 진실 같은 게 있죠. 그 진실은 때로 직관적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작품을 비평적으로 다가간다는 건 그 작품이 됐든 그 장르가 됐든 어떤 애착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 것이 첫번째인 것 같습니다. 안좋아하는데 뭔가를 어떻게 깊이 파고 들어가고 디테일들에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모든 탐구는 한편으로는 '덕질'의 최종단계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왜 이 부분이 이렇게 이뤄져있을까, 왜 이 부분은 이렇게 강렬한 감흥을 일으키는 것일까... 이렇게 그 탐구심들을 쓰고 보니 한편으로는 그 호기심과 지적 열망이 자신의 결여된 무엇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고 좋아할 수 있게 된 무엇이 일으키는 그 감정적 화학작용의 원리를 기어이 분석하려는 걸 생각해보면 좋아하지 않는 채로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진실을 많이 흘려보내는 일인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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