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조카들과 정기적인 교류를 가지려고 노력중이지만 여러모로 쉽지 않습니다.
타국에서 산다는 핑계로 연락도 잘 없다가 거의 십수년만에 만나니 대면대면하기만 합니다.
기억 속의 애기들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 다들 저보다 덩치가 더 큰 징그러운 20대가 되어버렸기도 합니다.
또 학교, 취업, 직장생활로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에게 으른의 충고나 도움을 주기에는 여전히 저도 덜 컸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삶에 별로 이롭지 않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발베니 14년산 시음회를 명목으로 모아놓고 밤새 술을 마신다든지, 집을 찾아가서 코디 교육이랍시고 옷장의 옷들을 죄다 버리고 새로 옷입기를 가르친다든지, 디아블로4 단체 티셔츠를 맞추고 원정대를 조직한다든지, 이성친구를 끌어들이는 자취방 인테리어에 대한 강의를 한다든지...
보통 어느 집안에나 하나씩 있는, 엇나가서 집안의 골치덩이가 된 작은 삼촌이 하는, 또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이런거죠, 뭐.

문제는 남자놈들만 그득한 저의 조카군단에서 유일한 여자 조카에게는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가지는 술 모임에는 대부분 참석을 못하고 있거든요.
남자 녀석들과 달리 집에 불러서 술 진탕 먹이는 건 제가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얼마전 우연히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가 예전에 어머니께 김호중 콘서트 티켓 구해드린다고 조카에게 티켓구매를 시켰던 얘기가 나왔어요.
그러다가 백예린도 몇년만에 콘서트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좋겠다, 아, 가고 싶다 뭐 이런 대화도 오갔습니다.
생각해 보니 백예린은 저와 조카와의 몇 안되는 공감대의 하나였죠.

그러고 검색해보니 콘서트 티켓 판매는 벌써 지난달, 보나마나 몇분, 몇초컷으로 매진이 됐겠죠.
갑자기 오기가 발동해서 티켓 리셀사이트나 중고나라 같은 곳들을 찾아보니 당연하게도 프리미엄 붙은 표들이 많이 있더군요.
처음에는 “정가의 2배나 받다니!” 분노했지만 또 생각해보면 매진된지 한달도 지난 표를, 저같은 게으름뱅이가 느지막히 와서 구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일수도 있겠죠.

그래서 조카녀석과 며칠동안 최고의 표를 구하기 위해 콘서트장 배치도를 그려가며 머리를 싸매고 분석을 하고 가격비교를 하고 사기당할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마침내 나름 괜찮은 좌석을 구합니다. 그리고 콘서트날까지 두근두근하며 기다립니다.

토요일, 드뎌 공연이 시작합니다.
응원봉 대신 하얀 장미 조화를 흔들라고 주는데 이거 없었음 공연 내내 되게 심심할 뻔 했습니다.
아이돌 공연같은 대형 공연이 아니라 조촐하겠거니 했는데 나름 무대가 화려합니다. 아, 십수년만에 콘서트를 보러 온거지! 

첫 의상은 빨강 드레스에 롱 부츠를 신었는데 막 밀라 요보비치같고 그렇습니다.
조카가 “삼촌, 얼굴 표정이 보여요. 너무 가까워요.” 합니다.  역시 돈값을 하는 자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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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로 한시간씩 공연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프로듀싱을 한다는 구름이란 멤버가 공연내내 시선강탈이었습니다.
발로 건반치던 JYP의 텐션의 70%에 가까웠습니다.

백예린이 중간에 스우파에 나왔던 팀과 함께 춤을 추는데 제일 놀란 포인트였어요.
뭔가 되게 브리트니 스피어스스러운 바이브였어요. 역시 JYP, 실력 어디 안가네요.

후반에는 미발표곡 위주로 불러서 그냥 그렇구나, 아 좋네 했는데
몇번 앵콜곡을 부르면서 마침내 sqare를 다시 부르는데 아! 나는 이 곡을 듣기 위해 왔구나 싶더군요.
조카와 두 손을 부여잡고 서로 ‘고마워요, 오길 잘 했어’ 를 연발했습니다.

무대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하루 종일 차 시간 바빠서 딱히 서로 얘기가 많지 않았지만 뭔가 충만한 느낌만은 확실했어요.

여러분도 노래들으며 점심 맛있게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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