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드렸듯이 망작 소감글로 시리즈를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ㅋㅋㅋㅋ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주인공 '자영'은 참으로 한숨 나오는 청춘입니다. 현재 31세인데 8년 동안 행시 공부만 했다니 23세의 꽃다운 나이부터 20대를 그냥 시험 공부로 날려 버린 셈이죠. 장기 고시생들이 종종 그렇듯이 친구들은 거의 다 나가떨어졌고 성격은 암울해졌으며 자존감은 땅을 뚫고 지하에 파묻혀 있고 그렇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남자 친구가 찾아와서 섹스를 하고는 다짜고짜 '너도 이제 좀 인간답게 살아라'라는 조언(?)을 던지고 떠나버리는데 거기에다 대고 화도 안 내요.

 이러던 어느 날, 드디어 본인 인생에 지칠만큼 지친 자영은 행시 시험날 그냥 집에 널부러져 버리구요. 딸래미 곧 5급 될 거라는 희망 하나 붙들고 열심히 생활비 챙겨주던 엄마의 분노에 적반하장으로 버럭! 하고 뛰쳐 나와 버리구요. 꼴에(...) 속상하다고 자취방 앞 계단에서 맥주를 들이키다가 심야에 빡세게 달리기를 하고 있는 미인 '현주'를 마주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네이버의 공식 영화 정보에 적혀 있는 스토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8년 차 행정고시생 자영.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면서 공부와 삶에 모두 지쳐버린 그녀 앞에 달리는 여자 현주가 나타난다.
 현주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생애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자영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며 조금씩 삶의 활기를 찾아가는데...


 음. 거짓말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 이런 내용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기대하고 보면 도중에 여러번 당황하게 되실 거에요.

 대체로 이야기가 예상대로 흘러가지가 않아요. 그래서 별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고 어느 정도 납득도 됩니다만, 저는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상당히 호감을 품고 봤습니다.



 - 그러니까... 어떤 인물 하나에 집중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그 인물의 목표 하나를 던져 놓고 이야기 구조를 거기에 다 집중을 시키는 게 보통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이 따라가기도 좋고 이해하기도 좋고 또 창작자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좋고 참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죠.

 그런데 사실 거의 모든 우리들은 그렇게 안 살잖아요? 명문대 가고 싶은 고3이라고 해서 그 삶의 1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 죄다 대입을 위한 거고 대입 때문에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대입이라는 목표가 거의 모든 일들에 영향을 주긴 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이란 건 늘 의외이고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게 마련이고, 어떤 영화들은 그래서 이렇게 불균질한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 놓는 식으로 현실을 느낌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라고 길게 적고 있는 건 바로 이 영화가 그런 방식으로 쓰여진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우울 칙칙한 자존감 마이너스의 여성 자영이가 달리기 매니아이자 나이스 바디의 미인 현주를 만나고 함께 달리면서 변화를 겪는 이야기인 건 맞습니다. 근데 이야기가 그렇게 매끄럽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직장 이야기도 나오고 가족 이야기도 나오면서 툭툭 튀고, 또 그 와중에 대략 정신이 아득해지는 (뭐야? 이제부터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할 건데??)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중엔 깔끔하게 맺어지는 사건들도 있고 '그냥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흘러가 버리는 사건들도 있고 그래요. 찜찜하고 난감할 수도 있겠지만... 뭐 우리 사는 게 원래 그런 게 맞지 않나요.



 - 이렇게 적어 놓으니 뭔가 아무 얘기나 막 던지며 자유롭게 흘러가는 이야기 같지만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족, 달리기 동호회, 회사라는 세 공간을 오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결국 모두 주인공 자영과 달리기를 매개로 느슨하게나마 다 연결이 되구요. 장르가 드라마였다가 스릴러였다가 아주 살짝 호러였다가... 하는 식으로 변화가 있긴 한데 그러면서도 깨는 느낌으로 튀지는 않아요. 또 그 모든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몸'이라는 주제와 연결이 되구요. 그 연결 고리가 분명한 것도 있고 좀 흐릿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통일성은 준수하게 유지가 됩니다.

 이 영화를 악평한 분들 중엔 '왜 그렇게 섹스가 자꾸 나오는 건데?'라는 게 불만인 사람들도 많던데... 주제가 '우리들의 몸'이고 30 갓 넘은 여성의 이야기인데 섹스를 중요하지 않게 다뤄야할 이유가 뭔가 싶네요. 애초에 영화 제목부터 '바디' 아닙니까. '아워 소울'을 보셨다면 모를까(...)


 아. 그리고 또 중요한 것. 이 영화의 제목에서 '아워'는 그냥 우리 모두가 아니라 '여성'을 뜻합니다. 여성의 건강, 여성의 섹스, 여성의 외모와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래서 사실 40대 아재로서는 충분히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영화였습니... ㅋㅋㅋㅋ



 - 큰 인기는 아직 없어도 최근에 가장 주목 받으며 쑥쑥 성장하고 있는 배우 최희서가 하드캐리하는 영화입니다. 전 사실 '동주'도 '박열'도 안 봐서 이 분의 연기를 집중해서 본 건 이 영화가 처음인데, 그렇게 인정 받을만큼 충분히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여기 주인공 양반은 당최 속을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어려운 캐릭터인데요. 그래도 배우 덕에 캐릭터의 일관성이 깨지는 느낌 없이 이야기가 잘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냥 흔한 소시오패스 히키코모리 느낌으로 가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더라구요. 마스크도 개성있어서 영화 내내 배우 얼굴에 되게 집중하며 봤습니다. 처음에 안경 쓰고 나오다가 초반을 넘긴 후론 쭉 벗고 나오는데 그냥 다른 사람 같더라구요. 사실 안경 쓰고 나올 땐 정말 극사실주의 히키코모리 느낌이... (쿨럭;;)


 그리고 제가 '어른 도감' 이후로 쭉 응원하고 있는 이재인도 나와요. 이야기상 비중이 큰 건 아니고 대체로 걍 편하게 연기했을 만한 캐릭터이지만 그래도 반가웠고, 또 연기도 적절했구요. 이재인 만세!!!!! <--



 - 대충 종합하자면 제 소감은 이렇습니다.

 좀 튀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갖고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영화입니다.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정리해보면 참으로 건전한 이야기이지만 이야기가 튀다 보니 뻔한 느낌, 교훈극 느낌이 안 들어서 좋아요.

 다만 깔끔하게 정돈되는 모양새의 영화가 아니다 보니, 그리고 몇몇 많이 튀는 장면들 때문에 모두가 좋아할 영화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40대 아저씨 입장에선 뭔가 '아, 이거 나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ㅋㅋ' 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 근데... 정말 요즘 대한민국의 '15세 관람가'는 대단하네요. 신체 노출은 거의 없지만 노골적인 섹스씬이 세 번 나오고 또 한 번은... 뭐 그러한데요. 중3 학생이 엄마 아빠랑 사이좋게 극장 가서 이 영화를 보는 상황 같은 건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ㅋㅋㅋ



 - 첫 섹스씬에서 최희서는 그냥 옷을 다 입은 상태로 나옵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나중에 달리기 한참 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겨서 조금씩 노출있는 옷들을 입는 모습을 보니... 사실은 이미 몸매 탄탄한 걸 숨기려고 그랬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ㅋㅋ 사실 초반에 주변 사람들이 살 좀 빼라느니 그럴 때 이상했어요. 아무리 옷을 두텁게 입고 나와도 애시당초 얼굴에 군살이 하나도 없구만 뭔 소리들이여.



 - 극중에서 나오는 달리기 동호회와 회사 생활의 모습들이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 은근히 디테일하고 현실감이 살아 있어서 '사실 이거 감독 본인 이야기 아닌가?'라는 의심을 좀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취재를 되게 열심히 한 거겠죠 뭐. ㅋㅋ



 - 사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자영보다도 자영의 세상 유일한 친구 캐릭터였습니다. 막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사실 그 양반이 인생에 보탬도 안 되고 같이 어울릴 재미도 없는 자영을 위해 영화 내내 해준 게 어딘데!!! 평범하게 세상 적응해서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죄라고 이런 영화들은 항상 이런 캐릭터들 대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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