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7 10:22
2019년 내내 영화 기생충의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송강호 대사를 반복해서 들은 거 같아요. 유행어는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팔도 왕뚜껑 공중파 광고에도 나오기도 했었죠. 기생충을 보면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에 따라 '계획'할 수 있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나눠지는 거 같기도 해요.
하지만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음'이 삶의 유일한 속성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던 시절에 저보다 한 살 더 많았던 동기와 외박을 나갔던 적이 있어요.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유라 시간과 분 단위로 계획을 잡았더랬죠. 뻔하지만 계획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이리저리 망가진 계획으로 터벅터벅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억울해하는 나를 가만히 보면서 그 동기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살아가는 묘미야."
영화라는 장르야말로 정교한 계획이 전제되는 작업이에요.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것 이외에도 온갖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패스츄리 반죽처럼 켜켜이 얹혀있죠. 그런데 신기한 건 아무리 완벽한 플랜을 갖고 있더라도 촬영 현장에 가면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런 알 수 없는 우연과 화학 작용으로 어떤 영화는 마스터피스가 되고 어떤 영화는 망하기도 하죠. 이번 스타워즈의 시퀄도 처음 계획 당시에는 완벽했을 거 같아요. 처음 계획되었을 10년 전쯤에는 9편이 이렇게 나올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겠죠. 캐리 피셔의 죽음을 포함해서 말이죠.
여행 준비를 하고 여행에 나서면서 계획의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질적인 낯선 곳에 가는 여정이라 제법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정은 전혀 알 수 없는 맥락으로 흐르더라고요. 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힘이 들어갈수록 그에 반해 여정은 전혀 다른 궤도로 튕겨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은 필요하겠죠. 여행도 사랑도 재물도 모든 게 계획대로는 안 되기 마련이지만 모든 게 끝나고 망했을 때 처음 시작했던 계획의 초심을 떠올려보는 건 중요한 의식 같아요. 이런 끝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어야 어떤 어른의 영역에 이르게 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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