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어제 영화를 재생한 후에도 한참을 이 영화 제목이 바바'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평가 좋은 호러 무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쭉 안 보고 미루고 있었던 이유가 제목이 묘하게 귀여워서(?)였는데 그게 제 멋대로 착각이었던 거죠. ㅋㅋ 한글도 제대로 못 읽다니...; 암튼 스포일러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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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호러 영화 빌런 주제에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 첫 아이를 출산하러 차를 몰고 병원에 가던 행복한 부부가 교통 사고를 당합니다. 훈훈한 비주얼의 남편은 대사 한 마디 없이 사망했지만 아내는 무사히 병원에 실려가서 아이를 낳았어요. 결국 남편 제삿날이 아들 생일날인 셈이죠. 세월은 7년이 흘러 그 때 태어난 아기는 늠름한 초딩이 되었지만... 살짝 문제가 있습니다. 늘 괴물, 유령에 집착하고 언젠가 괴물로부터 엄마를 구하겠다며 고스트 버스터즈 유령 장비 같은 걸 만들어서 메고 다니죠. 사회성도 떨어져서 이 학교 저 학교마다 문제를 일으키며 옮겨다니구요. 그 와중에 양로원에서 노인들 보살피며 간신히 먹고 사는 우리의 주인공은 인생이 너무나도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나마 이 분의 삶을 붙들어주는 게 너무나도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의 존재이긴 한데, 사실 이 놈은 동시에 아주 거대하고 무거운 혹덩어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하는 아들놈이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겠는 '미스터 바바둑' 이야기 팝업북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는데, 대충 '부기맨' 이야기와 비슷하지만 왠지 소름이 끼치고. 이 책을 읽은 후로 집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아들놈의 상태도 격하게...



 - 큰 틀에서 보면 아주 뻔한 이야기죠. 갑자기 닥쳐온 미지의 공포로부터 하나 뿐인 자식을 지키려는 엄마의 투쟁!!! 그리고 정말로 이야기 자체도 미리 준비된 그런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게 전개가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필살기가 하나 있었으니... 철저하게 이 '엄마'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아주 사실적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한다는 겁니다. 분명히 '모성'이 중심 소재 중 하나이긴 한데 접근하는 시각이 다르구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기 전의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총 런닝타임은 90분 남짓입니다) 주인공이 직장에서, 엄마들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집에서 애를 돌보는 일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들과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그리고 그 상황들은 모두 재난이면서 아주 현실적인 재난이죠. 정말로 두통이 날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후의 본격 대결보다 더 무섭기도 하구요. ㅋㅋ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의 결론은 '이게 다 아들놈 때문이다' 거든요.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남편이 죽은 것도 애 낳으러 가는 길이었고, 또 주인공이 그렇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혼자 살고 있다면, 혹은 애 없이 재혼이라도 했다면 충분히 유유자적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겠죠. 아들만 사라지면 간단합니다. 뭐 그 애를 만들기로 한 건 본인의 선택이었겠지만,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이제라도 본인 행복을 챙겨보려는 게 과연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일까요. 어차피 영화 초반부의 주인공 상태는 '이번 생은 망했어' 이고 이대로 쭉 가면 아들도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그리고 다행히도 이런 주인공의 처지, 심리 묘사가 전체적인 '바바둑 이야기'와 잘 붙어서 자연스럽게 전개가 됩니다. 메시지 따로, 호러 따로 진행하는 그런 게으른 각본은 아니에요. 오히려 전반부에 알게 되고 공감하게 된 주인공의 처지가 후반부에 스릴과 공포 요소로 작용을 하죠. 특별할 거 없어 보이면서도 상당히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 또 한 가지 차별점이라면... 뭐랄까. 편집의 타이밍이나 음악을 쓰는 방법 같은 게 보통의 헐리웃산 영화들과 다릅니다. 뭔가 되게 스타일리쉬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호흡이 좀 달라요. 그런 생소한 느낌도 작품의 개성 살리기와 공포 분위기 조성에 일조를 해주구요. 다 보고 나서 좀 검색을 해 보니 이 감독 양반이 연출을 라스 폰 트리에에게 배웠다고 하던데. 뭔가 수수께끼가 좀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ㅋㅋ 맞아요 좀 그 쪽 스타일 느낌이었네요.



 - 주인공 역할의 배우가 연기를 참 잘 하더라구요. 처음 뵙는 분인데 딱 보는 순간엔 '키어스틴 던스트?'라고 몇 초 정도 착각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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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도 안 닮았다고 느끼셔도 정상입니다. 제가 늘 엉뚱한 사람들 두고 닮았다고 혼자 우기는 사람이라....;

 저는 그냥 '라스 폰 트리에한테 연출 말고 배우 취향까지 배웠나봐'라고 혼자 생각하며 혼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호러' 무비로서 진짜로 이 영화를 살려내는 건 아들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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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배우에게 몹쓸 소리지만, 무섭습니다(...)

 아니 정말로 영화를 보는 내내 아들이 제일 무서웠어요. ㅋㅋㅋ

 어린 배우이다 보니 영화 내용을 순화된 버전으로 뻥쳐서 가르쳐 줘 놓고 이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잘 안 해주고 찍었다는데,

 연기를 잘 못 해서 그런지 자꾸만 튀어나오는 어색한 표정에 저 창백한 느낌의 메이크업이 어우러져서 그 느낌의 총합이 참으로 ㄷㄷㄷ했네요.

 미안합니다 어린 배우 양반.


 

 - 대충 종합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마어마한 공포감 뭐 이런 것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잘 만든 호러물이구요.

 그동안 게으르게 그 밥에 그 나물로 변주되던 '모성'을 다룬 공포 영화에 나름 좀 다른 관점과 디테일로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는 느낌.

 시간도 90여분 밖에 안 되니 부담 없이 한 번 시도해보실만한, 재밌게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호러 좋아하시는데 아직 안 보셨으면 추천해드려요.




 + 신체 손상 장면 같은 건 딱 한 번, 1초 정도 나오는데... 애초에 그리 디테일하게 보여주지도 않는 짧은 장면인데도 알뜰하게 블러를 넣어뒀더군요. 케이블 방송용 소스를 갖다 틀어주는 컨텐츠의 경우 이런 일이 있다고는 하는데 저는 처음으로 겪어서 좀 기분이 별로. 였지만 워낙 짧았고 강조되거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면도 아니었으니 뭐 그냥저냥...


++ 옆에서 덩달아 같이 보시던 가족분께선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저 팝업북 갖고 싶어!' 라고(...) 

 근데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팝니다? ㅋㅋㅋㅋ 근데 레플리카라고 적어 놓고도 600달러씩 받다니 이게 무슨... 감독 본인 사인까지 적혔다고 하는 물건은 천 달러가 넘네요. 안 사요. ㅋㅋㅋㅋ


 +++ 감독님이 배우로 활동하던 분이라 출연작을 훑어봤는데 '꼬마돼지 베이브2'가 눈에 띄는군요. 음. 거기에 대체 무슨 역할로 나오신 거죠.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는 안 나와서 imdb를 보니 그냥 한 장면 정도 스쳐가는 단역이었던 듯 하네요. 이거 집에 블루레이가 있긴 있을 텐데... 굳이 찾아볼 생각까진 안 드는군요. 


 ++++ 도대체 주인공이 밤마다 켜놓고 보는 채널은 뭐하는 채널이길래 그런 영화들(?)만 주구장창 틀어주는지. ㅋㅋㅋ '바바둑' 디자인의 모티브를 알리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그냥 좀 웃겼습니다. 아니 왜 귀신 때문에 정신줄 날아간 양반이 그런 채널에서 그런 영화를 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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