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좋은게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속 좁은 인간이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런 거창한 건 물론 아니다. 주로 주변에서 보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것이다.

지하철의 빈자리를 집착하는 아주머니나,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본격 스트레칭을 하는 아저씨나,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라며 시줏돈을 내고 비는 사람들이나.(저게 빈다고 되는 것인가…)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당장 서 있는게 고역이라거나, 고관절이 습관적으로 결리거나, 어디가 조금씩 아프다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기지 않았으니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나이가 들며 ‘아니 뭐 이런데까지 아퍼’ 싶은 경험이 누적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참고로 나이 들어 아픈건 십중팔구 병이라 젊어서 아픈것과는 다르다)

아 결국 나도 늙는구나, 그러다 언젠가 죽겠지. 누구나 아는 평범한 진리지만 그걸 체득하는건 말 그대로 내 몸으로 체험해야만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건 평범하지만 세상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체득했다는 것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거창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늙는다는걸 인정해도, 아프고 처지고 차오르는 나의 몸을 거울에서 마주하는건 아직은 도저히 못볼꼴이다.

근데 진짜 짜증나는건 이런 나름의 생각에서 시작된 운동도 나이가 들어 하려고보니 매번 아프다는 것이다. 아니 안 아프자고 하는게 운동인데 운동을 하면 아프다니.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나.

그렇다고 나이나 체력도 감안하지 않고 무식하게 운동한 것도 아닌데, 조금 달렸더니 허리가 아프고, 근력 살짝 했다고 어깨가 아프고, 스탭밀에 재미 좀 붙였더니 등산 같은 운동을 멀리해야 한다는 하지정맥류가 의심되고, 여름에 땀을 줄줄 흘리며 유산소 좀 했다고 지루성두피염이 생기질 않나.

한두달 운동하다 아퍼서 쉬고, 그러다 게을러져서 멀리하고, 겨우겨우 맘잡고 정말 몇달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다른데가 또 아프고..!!!(글을 쓰면서도 빡침이 차오른다) 이런 짓을17년부터 지금까지 반복해왔다.

그러다 어제밤엔 드디어 현타가 와서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거실에 누워있었더니 아내가 나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자기도 예전에 마라톤 재미붙였다가 족저근막염 왔었다고. 아이고. 이게 운동을 맞이하는, 특별하지 않은 중년의 일상이다.

그래도 운동을 해야겠다. 지루성두피염 약 처방받고 몸 관리 잘하면서. 그러다 주말엔 술도 마시고. 그래봤자 젊을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몸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래야 삶에 생기가 돈다는 걸 아프기 전까지의 운동으로 느꼈으니까.

대신 오늘부터 경사각 내리고, 속도 줄이고, 땀은 좀만 덜 흘리게, 약하게 걸여야지, 노인네처럼.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인네처럼 걸어야지. 라고 글을 마무리하려니 참 궁상맞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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