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

양쪽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 느껴져서 조문 논란에 한마디도 보태기가 어려우니, 나는 그저 박원순이라는 정치가가 삶의 마지막에 붙잡았던 프로젝트를 다시 곱씹어본다.
박원순의 정치는 명백히 요 몇달이 가장 흥미로운 시기였다. 예전의 그는 아이디어와 헌신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능했으나, 자원배분의 본질을 건드리려 들지는 않는다고 나는 느꼈다. 누가 희생하지 않고도 세상은 더 나아질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어떤 영역에서는 그럴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본질상 자원배분 그 자체를 건드리는 업이다. 파레토 최적 상태에서도, 그러니까 자원배분 상태를 바꾸려면 누군가 손해를 보아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정치는 자원배분을 바꾸어야 할 때가 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강한 저항에 맞닥뜨리며, 하기 싫은 일이다. 그래서 이런건 잘 안하려고들 하고, 누가 손해보는 일 없이도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러니까 파레토 개선이 가능한 아이템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물론 이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박원순의 정치가 전형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요즘의 박원순은 좀 달랐다. 그는 명확히 자원배분 그 자체를 바꾸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예전의 관성, 손해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태도가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 인터뷰가 보여주는 방향은 명확하다. 그는 재난의 시기에 자원배분의 규칙을 바꾸자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가 박원순에게 대단히 의미심장한 도약이라고 나는 느꼈다. 
우리는 재난기를 살고 있다. 재난은 정치가를 거목으로 키우는 힘이 있다. 코로나19가 결국 누구를 최고의 거목으로 키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힘이 가닿은 정치가의 목록을 뽑는다면 거기서 박원순을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만 그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갑자기 끝나서 우리는 그 결과를 알 수 없게 되었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067323683344740&id=100002014156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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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저 역시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오신 고인과 
개인적 인연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애통하신 모든 분들이 그렇듯
개인적 충격과 일종의 원망만으로도 
견뎌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 슬픔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메시지들이 쏟아졌습니다.

한쪽에서는 함께 조문을 가자 하고, 
한쪽에서는 함께 피해자를 만나자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 했고,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냈으니 책임지라 했습니다.

한마디도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말하는 분도, 피해자 옆에 있겠다 말하는 분도 부러웠습니다.

그 부러움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메시지는 더더욱 쏟아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고인에 대한 기본 예의도 없이 무죄추정도 모르고 명복을 빌 수 있는게 부럽다는 소릴하냐고 실망이라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리 저를 욕할 수 있는 것조차 얼마나 부러운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떤 분들은 입장 바꿔 네 가해자가 그렇게 되었음 어땠을지 상상해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경우를 상상 안해봤을까봐...

그 상상으로 인해 심장이 곤두박질치고 대책없이 떨리고, 그런 상황이 너무 거지같아 숨이 조여드는 공황장애에 시달려보지 않았을까봐...

이 일이 어떤 트리거가 되었는지 알지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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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도 국가기관도 아닌 제가 감당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온갖 욕설과 여전한 음해나협박은 차치하고라도
여전히 계속 중인 제 자신의 송사조차 제대로 대응할 시간적 정신적 능력마저 부족함에도,
억울함을 도와달라 개인적으로 도착하는 메시지들은 대부분 능력밖에 있었고,
함께 만나달라는 피해자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아냥을 받고 의절을 당하기도 하고,
성직자의 부탁을 거절못해 가졌던 만남으로 지탄을 받고 언론사와 분쟁을 겪기도 했습니다.

능력과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말을 해온 것 같습니다.

제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는 것이
제가 가해자와 공범들과 편견들 위에 단단히 자리잡고 서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뛰어내렸던 그 절벽 어디쯤에 우연히 튀어온 돌뿌리 하나 기적적으로 붙들고
‘저 미친X 3개월 내에 내쫓자’는 그들을 악행과 조롱을 견뎌내며,
내가 그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혹여나 누군가에게 절망이 될까봐, 내 소중한 이들을 지키지 못할까봐
그상태로라도 뭔가 할수있는게 있을거라 믿으며
죽을힘을 다해 위태위태하게 매달려있다는것을
다른 이들이 다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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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누구를 원망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는 경험과 인식이 다릅니다.

극단적인 양극의 혐오 외에 각자의 견해는 존중합니다.

모두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와중에 손정우를 위험하게 하면 저도 위험해질거라는 경고인지 걱정인지 모를 메시지, 기자들의 취재요청, 이 모든 것은 
성치 못한 건강과 약한 성정에 맞지 않는다는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을 무릅쓰고 제가 자초한 일입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를 해주시는 분들께 송구스럽게도
도져버린 공황장애를 추스르기 버거워
저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도 할수없는 페북은 떠나있겠습니다. 

숨을 쉴 수 없는 이유를 주사장에게라도 돌려봐야겠습니다...

참으로 세상은 끔찍합니다...

https://www.wikitree.co.kr/articles/551700 (페이스북 폐쇄로 인해 기사로 대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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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요 근래 몇몇 분들과 일부 매체에서 저와 서지현 검사를 목 놓아 부른 것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입니다.
검사게시판에 글 쓴 것이 징계사유 중 하나였고, 내부망과 펫북에 글 쓰면 징계하겠다는 검사장 경고에 한참을 시달렸으며, 절 징계하라고 진정 넣는 민원인도 있었지요.
글 쓸 때마다 징계 회부할 꼬투리가 있는지 재삼재사 확인했고,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징계한다면 소송에서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할지도 미리 생각해놓아야 했습니다.
생업이 바쁘기도 하려니와, 제 직과 제 말의 무게를 알고 얼마나 공격받을지는 경험으로 더욱 잘 알기에, 아는 만큼 필요최소한으로 말하려 하고, 살얼음판 걷듯 수위 조절하고 있는데요.
검찰 내부고발자로 8년을 견딘 생존력은 살벌한 자기검열입니다.
처한 자리와 입장에 따라, 각종 사건에 맞춤형 멘트를 원하는 분들이 참 많은데, 애처로운 SOS도 적지 않고, 함정에 걸려들긴 바라는 악의적 시선도 없지 않네요.
검사직과 제 말의 무게가 버거운 저로서는 앞으로도 아는 만큼만 말할 생각이고,
검찰 내부 일만으로도 능력이 벅차 검찰 밖 일은 지금까지처럼 깊이 공부하여 벗들과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니, 혹여 세상만사에 대한 제 짧은 생각을 기대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양해 구합니다.
또한, 미투 이야기를 접한 후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피소된 분들 중 울산시민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제가 사건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말을 더욱 아끼고 있는데요.
몇몇 분들의 몇 마디에 호응하는 일부 언론의 부름에 편하게 답하기 어려운 제 직에 대해 더욱 양해 구합니다.

https://www.facebook.com/eunjeong.im3/posts/299661310374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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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율 기자님이야 불편한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영 좋아하지 않는 꿈동산 내지 꽃다발형 기자분이려니 싶어 그리 놀랍지 않고, 두 검사님의 신념과 용기가 진혜원 검사님의 그것에 미치지 못함은 잘 알겠다.

징계의 위협 앞에 굴하지 않고 권력형 성범죄를 고발하는 진혜원 검사님의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르는 용기와 신념은 아래 링크에서 영접할 수 있다. (경고: 정신오염의 위험 있음)

https://www.facebook.com/hyewon.jin.1238/posts/29818478487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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