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놈이 어디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에 나오는 대사였던가 그렇습니다. 어르신이 유아인에게 이렇게 한마디 하자 유아인은 바로 맞받아칩니다. "아저씨는 눈 네모나게 뜰 수 있어요?" 우스운 대화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얼마나 권력이 오고가는 현장인지 실감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웃어른이라는 권력을 지닌 자는 나이가 어린 보다 하위계급의 발언을 어떤 식으로든 통제하고 제동을 겁니다. 말하는 방식에서부터 자신의 기분을 맞추고 형식을 점검하라는 일방적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이 게시판에도 전에 올린 적이 있는데 일찍이 마틴 루터 킹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흑인들의 투쟁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선명한 차별주의자들이 아니라 본인들을 지지한다면서도 계속 투쟁의 때와 방식을 정해주려하는 온건주의자들이라고.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효율적 전략과 "센스있는" 대응방식 같은 정답지를 본인들이 갖고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이 역사는 너무 유구해서 시위만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폭도"로 불리고 어떤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힙니다. 세상에는 귀족노조와 폭력노조밖에 없는 것 같죠. 촛불시위 말고는 그 어떤 시위도 훌륭하고 성공적인 시위는 없는 것도 같고요.


샘 오취리를 두고서도 그런 말들이 많습니다. 영어로 그렇게 말했어야 했냐? 저는 사실 이런 논란이 꼬투리 잡기라고 생각합니다. "강한 비판"은 "비하"와 동의어가 될 수 없고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You put in so much effort to educate people here in Korea and make them understand that you can appreciate a culture without making mockery of the the people. This has to stop in Korea! This ignorance cannot continue!" "여러분은 여기 한국에서 사람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누군가를 조롱하는 것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이해시켜야 합니다. 이런 행위는 한국에서 더 이상 일어나선 안돼요! 이러한 무지가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이 말이 무엇이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한국인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판당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어떻게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실수는 했지만 잘못까지는 안했고, 잘못은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고, 나쁜 사람이었을 수 있지만 원래는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으로서의 이데아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본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을 비판할 때는 늘 부탁의 어조로, 용서와 관용을 전제하고, 강자의 권력을 자신들에게 베풀어주라는 내용을 담아서 그저 질책이 아니라 호소를 해주길 무의식적으로 기대합니다. 어떻게해서든 "넌 잘못됐어!"라는 직설적 비판과 교정을 피하고 싶어해요. 그 결과 남는 것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너는 어그로쟁이이고 배은망덕한 위선자라는 프레임뿐이구요.


퀴퍼, 여성시위, 환경, 노동운동... 이런 저런 운동을 다 봤지만 그 운동을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외부인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취지는 이해해도 방식만큼은 좀 더 온건하게 자기들 보기 좋게 하라는 무례한 요구들이 대다수였어요. 너무 절박해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그런 식의 평론이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열받는만큼 다른 어떤 사람들도 충분히 열받을 수 있다는 걸 지각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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