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군도>를 봤습니다

2020.08.21 15:53

Sonny 조회 수:751



저는 서부극을 거의 안봐서 <군도>가 어떤 고전들을 참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영화 자체보다는 그저 강동원에 대한 환호가 워낙 자자하길래 그 얼굴값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봤습니다. 원래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거 없다고 하던데 강동원의 얼굴은 진짜 상다리 휘어지는 미모더군요. 이 영화가 잘 안된 게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배우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근사한 미쟝센이 되었는데 그래도 작품적으로 조금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영화는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망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 미감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측인 군도 무리는 너무 추접스럽고 시각적으로 정이 안갑니다. 반대편에는 강동원이 긴 머리 휘날리면서 신출귀몰한 무예와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데 주인공이라는 인물들은 사흘은 기본으로 안씻었을 것 같은 드러븐 아저씨들이 사투리를 마구 뱉어내면서 떼로 도적질을 하고 있으니... 윤종빈 감독은 그 지저분한 몰골로 서민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눈요깃거리가 되는 오락영화에서 그같은 표현은 좀 도가 지나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군도들이 나올 때마다 좀 보기가 싫었어요. 의적이라지만 그냥 적같았습니다.

꼭 미쟝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강동원의 조윤에게 심정적으로 이입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드라마가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단 양반가의 서자인데다가 그 능력은 출중하되 그것을 출신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아주 고급스러운 드라마가 있습니다. 출생부터 이미 운명이 결정지어진 운명적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이 미남에게 덧씌워진 것입니다. 거기다가 조윤에게는 악한으로서의 드라마가 크게 강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악랄하고 미워할만한 행위들이 스크린에서 지독하게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품위가 있는 악당이죠. 거기에 갓난아이를 안고 지키는 그 고결함까지... 그에 반해 돌무치의 사연은 이미 엄마와 여동생을 잃어버려서 복수 말고는 딱히 답이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할 것이고 그 드라마는 한없이 단순합니다. 거기에 그가 표현하는 분노는 천박하고 직선적인 분노입니다. 그런 점에서 파토스의 추가 조윤에게 완전히 쏠려있어서 돌무치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활극이 하나도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프로타고니스트들은 바쁘고 요란해서 관객을 산만하게 만드는데 비해 안타고니스트는 고요하고 감정적으로 관객들을 움직입니다.

일당백의 구도도 좀 문제였던 것 같아요. 계속 조윤 하나를 둘러싸고 다수가 그를 린치하는 모양새가 그려지는데 거기서 조윤은 그걸 본인의 현란한 무예로 돌파합니다. 주인공들이 비열하고 무능해보이는만큼 악역이 초월적이고 영웅처럼 보이는 효과가 거듭됩니다. 이건 미워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조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그림이 계속됩니다. 거기다가 강동원이 액션연기를 진짜 잘합니다...!! 충무로에서 액션 잘하는 남자배우로 소문이 나있던 게 진짜긴 진짜더군요. 돌무치랑 집안에서 일대일 싸움을 펼칠 때 칼놀림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고고한 한복차림에 오만한 말을 계속하니 역으로 이 캐릭터의 격이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게 되더라구요...

<군도>의 엔딩에서 돌무치가 아이를 데려가는데 그게 전혀 구원받은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저 아이도 고생시키려고...?? 참으로 찜찜했습니다. 역시 <군도>는 강동원빨로 그나마 관객수를 채웠던 게 아닌가 싶네요. 영화는 아무리 설정이고 현실이고 뭐고 해도 결국 화면의 아름다움이 이야기하는 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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