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에요. 상영 시간은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이고... 장르물도 아니고 실화 그대로인 데다가 결론도 뻔하지만, 이게 미국에선 꽤 유명했던 사건이라서 제작진도 뭘 숨기려는 노력같은 건 하지 않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사건의 진상을 그냥 툭 까놓고 적을 예정입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이란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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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탐지기 그래프로 장난을 쳐 놓은 포스터. 잘 보시면 바로 범인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사건이라 스포일러 같은 건 신경 안 쓴 거죠)



 - 한 여성의 sns 영상들로 시작됩니다. 참말로 귀여운 6세와 4세 딸 둘을 키우며 세상 둘도 없이 착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네요. 인생에 역경이 많았는데 악착같이 노력해서 극복해내며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정말 하늘의 선물이었으며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당연히 잠시 후 화면은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과 통화하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로 넘어가고, 경찰관의 출동 기록 영상으로 넘어가고, 너무나 행복하던 그 영상의 주인공은 딸 둘과 함께 실종되고 남편만 남았네요.

 

 이때부터 이 영화의 내용은 두 방향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이 실종 사건의 진행 과정을 첫 날부터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한 sns 영상과 사진들 이면에 존재했던 이 가족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 그리고 이 둘은 마지막 결론 즈음해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사실 이 전개 과정만 봐도 결말은 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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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저 여성은 임신 상태입니다...)



 - 한 가지 이 작품의 좀 특이한 부분이라면, 제작진이 따로 찍은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정말 아주 가끔씩 짧게 들어가는 동네 소개용 부감샷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다 합쳐도 10초가 될까말까 할 듯) 전부 다 이미 존재하는 영상과 사진, 그리고 실제로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들을 편집해서 만들었어요. 나레이션도 없구요. 그래서 보면서 계속 존 조의 '서치' 생각이 났습니다. 21세기,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만 가능한 형식의 다큐멘터리인 거죠.



 - 일단 칭찬을 하자면...

 결국 자료 수집과 편집이 거의 전부인 작품인데. 그런 편집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해놨습니다. 여기서 '효과적'이라는 게 마냥 칭찬은 아닌데요. 암튼 아주 잘 해놨어요. 제작진이 따로 인터뷰를 딴 것도 하나도 없고 그냥 있는 자료들만 긁어다 배치한 건데도 보다보면 그냥 기승전결 분명한 극영화를 보는 기분이 드니까요. 그리고 어쨌거나 이게 실제 사건이다 보니 마지막에서의 울림도 아주 크죠. 네. 그렇게 잘 만들어 놓긴 했는데... 다 보고 나서 전 같이 사는 분에게 '이건 보지 마' 라고 말을 했습니다. 왜냐면요,



 - 다 보고 나면 너무나 불쾌합니다. 아니 뭐 실제 흉악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스스로 골라서 봐 놓고 이게 무슨 소리냐... 싶기도 하지만 그게 뭐랄까.

 80분 조금 넘는 영화의 내용 중에서 거의 절반이, 체감상으론 절반 이상이 애들 엄마의 sns 영상 + 가족과 이웃들의 촬영 영상이거든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특히 저 귀여운 아가들이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sns에 업로드된 영상이니까요!) 꽁알꽁알 꽁냥거리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 제목이 뭔가요(...) 


 그러니까 뭔가 제작진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겁니다. 이 훌륭한 편집이 결국 보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한 거라면 그 자극의 목적과 결과가 중요할 텐데. 그게 결국 우울과 절망과 분노, 혐오 뿐이라면 음...; 그래서 뭔가 고문 포르노류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보는 내내 들구요.


 그나마 결말에서 정의사회 구현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지만, 어쨌거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마지막에 보여지는 건 그저 그 범인 놈의 징징징 소리 뿐입니다. 그리고 범인 가족들의 뻘소리까지 좀 들어주면서 빡침을 +100 하고 나면 영화는 끝.


 뭐 나름 공익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다 끝난 후에 자막으로 뜨는 거, 이런 범죄는 거의 대부분 범인이 가족이며 그 중 거의 전부가 아버지이다. 이런 얘길 하고 싶었다고 생각해줄 순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네요. 



 - 제작진의 편집에 대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범죄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임에도 경찰의 수사 과정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경찰측 영상은 시작 부분의 긴급 출동 장면을 제외하면 그냥 용의자를 불러다 심문하는 장면들만 나와요. 뭐 실제로 존재하는 푸티지들로 만든 다큐이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보긴 했는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뉴스 영상들도 삽입이 되니 수사 과정을 못 보여줄 것도 없었거든요. 

 막판에 스쳐가는 발언들 몇 개를 보면 처음부터 경찰은 진범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내용들이 이 다큐에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그 결과로 뻔하디 뻔한 진범의 정체를 숨겨주는 효과가 생기는데... 


 다 보고 나서 워낙 불쾌하다 보니 이런 부분까지 좀 안 좋게 보게 되네요. 장르적 재미를 강화하기 위한 제작진의 취사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서요.

 


 -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이쯤에서 정리합니다.

 21세기 sns & 개인 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시도로 만들어진 '재밌게' 잘 만든 다큐멘터리입니다. 재미(?)도 있고 다 보고난 후의 울림도 커요.

 다만 이 소재를 다루는 제작진의 태도가 제겐 좀 껄끄럽게 느껴져서 칭찬을 못 하겠네요. 그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좌절, 비극을 이런 식으로 전시해가면서 어떤 공익을 얻을 수 있었는가... 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요. 뭐 논란이 있는 사건이라든가, 범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이라든가 그런 것도 아니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것도 아니고...;

 근데 뭐 그냥 재미는 있습니다. 그건 분명해요. 각자 취향따라 잘 판단해서 보시면 될 듯.


 


 + 사실 이 다큐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희생자인 아내의 평소 취미 덕분입니다. 아내 쪽이 sns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면서 라이브 방송도 자주 하고 가족의 일상, 본인이 살아온 인생 같은 걸 엄청 많이 업로드했던 것 같더군요. 실제로 다큐에 나오는 장면들을 봐도 일상에서 뭔가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sns 업로드용으로 '연출'을 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그리고 그런 부분 때문에 이 사건이 유명해진 후 아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한 살인 사건 피해자인데... 사람들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 미국은 참 희한한 나라 같아요. 사건에 아주 결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 분이 한 분 계신데... 그냥 이름, 얼굴 다 공개하고 다큐에 나옵니다. 뭐 그 전에 이미 까발려져서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이 동네 정서로는 역시 이해가...;



 +++ 범인 가족들의 심정은 뭐... '가족'이니까 이해는 하지만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굳이, 언론과 피해자 가족들이 다 보는 가운데 그런 말을 했어야 했나 싶었습니다. 염치가 있으면 입 다물고 있다가 그런 소린 나중에 면회 가서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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