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하지만 죽어도 좋아

2021.01.05 02:44

겨자 조회 수:446

1. 연극 '프랑켄슈타인' 


코비드-19 판데믹이 일어난 뒤인 2020년 5월 1일, 영국 내셔널 씨어터에서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이 작품을 늘 보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러 영국까지 가야하나 하고 고민했던 적도 있었죠.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마음만 먹으면 추남 역할도, 미남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컴버배치가 닥터 프랑켄슈타인으로 나오는 연극 한 번, 괴물(Creature)로 나오는 연극 한 번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내셔널 씨어터는 볼 거면 영국에 와서 봐라는 식이었고 DVD 구매도 안되더군요. 


연극 '프랑켄슈타인'은 두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1)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2)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가? 


고립해야 하는 판데믹 시대에 이보다 더 적절한 질문이 있을까요? 닥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과학의 힘을 빌려 죽음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죽음이 곧 적입니다. 극복해야할 대상이고 절망의 근원입니다. 죽음과 싸워 생명을 만드느라 닥터 프랑켄슈타인은 인생을 즐기지 못합니다. 약혼자와 사랑을 나눌 수도 없고 남동생과 놀아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괴물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을 통해 빼앗아갑니다. 


괴물은 죽지 않는 대신 외로운 존재입니다. 아버지가 되어야할 닥터 프랑켄슈타인은 그에게 사회에 스며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괴물을 교육시킨 맹인 드 레이시 교수는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지만,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못합니다. 괴물은 현인같은 드 레이시 교수에게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드 레이시 교수는 곤혹스러워합니다. 교수가 제대로 답변을 내지 못하자 짜증을 냅니다. 괴물은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가'라는 질문에 '동반자가 없어서'라는 결론을 내리고, 닥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동반자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모두들 알다시피, 괴물의 동반자는 창조주인 닥터 프랑켄슈타인이 됩니다. 닥터 프랑켄슈타인의 레거시는 괴물이니, 그는 괴물이라는 존재를 통해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셈이고, 괴물은 닥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동반자를 얻어 북극으로 출발하니, 이제 외롭지 않은 걸까요? 결과는 일그러졌으나 어쨌든 그들은 강력히 욕망하던 걸 가졌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판데믹 중에 이 작품을 보고는 사람은 모두 필멸의 운명, 고독의 운명을 나눠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내셔널 씨어터에서 유튜브에서 이 작품을 내릴 때까지 일곱번 봤습니다. 이 작품 희곡은 두 번 읽었죠. 


아래는 이 작품의 일부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의 에너지가 짧은 영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https://youtu.be/TU24uLLlSJc


2. 하지만 죽어도 좋아


작년에 난데없이 지인의 장례식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실종이기 때문이죠. 판데믹 이전에 깊은 오지의 산으로 암벽 등반을 갔는데, 그 이후로 그 사람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호주 여행가가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봤다고 했습니다. 특정 봉우리를 향해서 오르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숙소에 여권을 맡겨놓고 갔으니 남몰래 나라 밖으로 나갔을 리도 없겠고, 조난 당했음이 분명하다고 하더군요. 날씨와 지리를 보건데, 구조하러 갔다가는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거라는 판단 하에 가족들은 구조를 포기했습니다. 시신 없이 빈 관을 넣고 장례식을 치렀죠.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미 오지를 탐험하다가 20대에 한쪽 눈 시력을 많이 잃었으니까요. 40이 되기 전에 죽는군요. 테드 창은 'The story of your life'에서 딸이 죽을 걸 알면서도 낳는 어머니 과학자 이야기를 씁니다. 이 소설에 기반해서 만든 영화 '어라이벌'과는 달리, 딸은 산악 사고로 죽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인을 생각했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전 세계 산을 하나하나 오르는 게 인생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머리 좋고 건강하고 젊은 나이에 일찌거니 모든 교육을 끝낸 사람이라, 인생을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더군요. 아무에게도 목매지 않고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매혹하며 인생을 살아나갔죠. 그의 어머니가 제발 그만 하라고 해도, 친구들이 걱정해도 아무도 그 뜻을 꺾을 수 없었죠. 그의 어머니는 말했죠. 이미 나는 포기했어.


- 고독하지 않아? 위험하지 않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을 수도 있어. 


= 나는 죽지 않아. 하지만 죽어도 좋아. 


판데믹이 끝나면 시신을 수습하러 갈까 하고 순간 생각했죠. 하지만 저같은 아마추어가 접근할 수 있는 지역도 아니겠고, 백골을 찾은들 그게 무슨 의미일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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