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대선 후기 - 1

2022.03.14 13:10

Sonny 조회 수:893

1. 안철수


단일화에 관련된 질문만 몇십번을 받고서 단일화 안한다고 고수하던 안철수가 끝내 단일화를 했습니다. 지지자든 아니든,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죠. 이에 대해서 예상했다고 하실 분들도 많겠지만(결과론으로는 누구든 예언가 흉내를 낼 수 있으니 그런 논리는 자제하고) 자신이 거듭해온 말을 막판의 막판에 뒤집어버리는 이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고민해보게 되더군요. '인성론'으로 안철수를 평가하는 건 너무 쉽고 오히려 몰이해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비겁하고 찌질한 인간이어도 자기 지지자들을 저렇게 바보취급하면서 저렇게 말을 뒤집는데는 더 적극적인 동기가 있지 않을까요.  정치인을 섣불리 인성으로 평가하는 건 오히려 정치인의 성역화와 악마화에 더 가까운 함정 같기도 합니다. 


저는 안철수의 단일화를 기업가적 선택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기의 지지율을 자본이나 회사의 주식으로 생각하고, 그걸 고스란히 다른 정치인(자본가)에게 파는 거죠. 자본가들에게는 사회적 평판보다 자본주의적 이득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본가가 어떤 상품은 절대 생산도 판매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칩시다. 그런데 이 상품이 되게 잘 나가고 수익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자본가는 자신의 말을 뒤집어도 됩니다. 아니, 뒤집어야 합니다. 약속보다 결과적 손익이 훨씬 더 중요한 세계가 자본주의니까요. 그러니까 안철수는 자기가 무슨 욕을 들어먹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자기가 정치인으로서 부풀릴 수 있는 자신의 가치와, 그걸 비싸게 팔아넘기는 거니까요. 이를테면 선수 이적이나 기업 합병 같은 것일 겁니다. 자본가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손익이 우선순위에서 제일 앞서는 가치입니다.


안철수는 오히려 일반 지지자들이나 국민들이 대의 민주주의의 후보에 갖고 있는 개념을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어느 팀을 가도 똑같이 자기 플레이를 하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냥 자기가 좋은 사람이고, 자기는 어느 곳에서든 똑같은 정치를 할 거니까 아무튼 지지해주라고 할 거니까요. 그에게는 '철새'라거나 '완주'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안철수는 다음에도 또 무슨 당에서 무슨 후보로 나오든 또 서슴없이 지지자들을 배신하고 자기 말을 뒤집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안철수가 나쁜 사람이거나 파렴치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최종적으로 좇는 것은 자본가적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2. 텅빈 야심가


안철수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텅빈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정치에 큰 뜻을 품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치계에 입문한 계기는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나가서 엄청난 호감을 얻은 것이었죠. 그 이후로 그가 부각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주목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직업으로서의 정치인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세상에 시민이나 국가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의외로 그런 정치인들도 많습니다. 다만 안철수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그런 고민이 전혀 없어보입니다. 정치적 철학이나 자신만의 소신이 없이 그저 새로운 지지층을 발굴해낼 수 있는 공약이나 정책들을 내놓는데 급급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윤석열과 안철수를 결국 같은 유형의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선토론에서 무슨 이슈가 나오든 대장동만 물고 늘어지는 윤석열의 모습은 왜 검찰 출신이 정치를 하면 안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같기도 했습니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아예 대본에 코를 박고 정수리로 발표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종부세 폐지를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종부세는 얼마인지 모르는 모습이나 성인지 예산이 따로 있는 예산인 것처럼 둘러대는 모습은 대통령이라는 직에만 관심이 있지 대통령 직의 책임이나 권한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전반적으로도 외워서 대답하는 티가 너무 났고, 행정가로서의 전문성은 기대할 수 없는 인상을 남겨주었죠. (뭐 어차피 윤석열에게 표를 준 사람들은 '정권교체'라거나 '민주당 심판'이라는 슬로건에만 꽂혀있는 분일테니 큰 상관은 없었겠지만요)


저는 윤석열이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텅 빈 지점이,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이 안티페미니스트 기질이 농후해서 여가부 폐지를 외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야 당선이 된다고 하니까 구호로 내걸어놓은 인상이 강합니다. 그래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휴머니스트로서의 페미니스트라면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대답을 하기도 했구요. (물론 이 발언은 남초에서의 술렁술렁에 혼자 겁먹어서 바로 아니라고 자기 인터뷰를 취소하는 초유의 선택을 했고 외신도 열받아서 후속 기사를 다시 냈습니다 ㅋ) 아마 윤석열의 텅 빈 지점은 검찰총장 출신이자 대통령으로서 만나는 주변 고위급 인사들과 유력인사들에 의해서만 채워질 겁니다. 그는 죽어도 노조를 하는 이유나 시위하는 여자들의 울부짖음을 이해못할 겁니다.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세계의 디테일을 다 받아들이고 공감하기에 그는 너무 좁고 딱딱한 아저씨이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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