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6-e1622011083506.jpg


트레일러를 보고 꼭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괴짜 여자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한증 때문에 학창시절에 대인관계의 쓴 맛을 보고 좀 고립된 채로 성장해버린 20대 후반의 청년입니다. 그는 집에서 혼자 마늘 까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비자발적 괴짜입니다. 그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하는 것도 전부 학창시절에 사람들이 자신을 꺼리는 것 때문에 마음을 닫은 결과입니다. 그의 세계는 이 매정한 식구가 그나마 내준 다락방만큼이나 좁습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그 세계를 넓혀나가기 시작합니다.


보면서 전소운 감독의 소공녀 생각도 났습니다. 약해보이지만 의외로 심지는 단단한 여자가 사람들을 만나며 다정을 뿌리고 다니는 이야기니까요. 이 영화의 주인공 춘희도 다친 마음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도 알고 작은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위태로워보이는 세계에서도 이런 여자들은 쉬이 꺾이지 않죠. 그 대신 그는 과거의 상처와 마주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움츠리고 있으니까요. 이 과정은 파블로 라라인의 스펜서와 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집안에서, 자신만의 환상을 만나는 여자의 이야기도 영화가 갖고 있거든요.


연애는 춘희에게 하나의 사건이지만 이것이 그렇게 결정적이진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춘희의 정신적 자립에 장해물로 작용해서 춘희가 그걸 뛰어넘고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만들죠. 그가 자꾸 떠올리는 과거는 어떤 표현도 못한 채로 뚱하게 서글픔을 삼키기만 하던 어린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더 이상 응어리만 빚는 것을 그만하고 그걸 꺼내놓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집이란 공간과 인간의 관계, 가족으로부터 청년의 자립, 컴플렉스의 극복, 우울증 혹은 트라우마... 진지한 주제이지만 무겁게 그리진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고민이니까요. 영화는 간간히 웃기고 어쩔 때는 속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전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아주 친숙하고 낯익은 세계 안에서 채워집니다. 한해에 하나씩은 인상적인 독립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서 기쁘군요. 이 영화는 진짜 괜찮습니다. 다들 꼭 보시길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0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3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19
126551 생산성, 걸스로봇, 모스리님 댓글을 읽고 느낀 감상 [20] 겨자 2018.10.24 471206
126550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8] DJUNA 2015.03.12 269826
126549 코난 오브라이언이 좋을 때 읽으면 더 좋아지는 포스팅. [21] lonegunman 2014.07.20 189543
126548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의 글 ㅡ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5] smiles 2011.08.22 158089
126547 남자 브라질리언 왁싱 제모 후기 [19] 감자쥬스 2012.07.31 147524
126546 [듀나인] 남성 마사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9] 익명7 2011.02.03 106288
126545 이것은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1] 책들의풍경 2015.03.12 89320
126544 2018 Producers Guild Awards Winners [1] 조성용 2018.01.21 76450
126543 골든타임 작가의 이성민 디스. [38] 자본주의의돼지 2012.11.13 73003
126542 [공지] 개편관련 설문조사(1) 에 참여 바랍니다. (종료) [20] 룽게 2014.08.03 71755
126541 [듀9] 이 여성분의 가방은 뭐죠? ;; [9] 그러므로 2011.03.21 70669
126540 [공지] 게시판 문제 신고 게시물 [58] DJUNA 2013.06.05 69138
126539 [공지] 벌점 누적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45] DJUNA 2014.08.01 62780
126538 고현정씨 시집살이 사진... [13] 재생불가 2010.10.20 62465
126537 [19금] 정사신 예쁜 영화 추천부탁드려요.. [34] 닉네임고민중 2011.06.21 53711
126536 스펠링으로 치는 장난, 말장난 등을 영어로 뭐라고 하면 되나요? [6] nishi 2010.06.25 50941
126535 염정아가 노출을 안 하는 이유 [15] 감자쥬스 2011.05.29 50001
126534 요즘 들은 노래(에스파, 스펙터, 개인적 추천) [1] 예상수 2021.10.06 49893
126533 [공지] 자코 반 도마엘 연출 [키스 앤 크라이] 듀나 게시판 회원 20% 할인 (3/6-9, LG아트센터) 동영상 추가. [1] DJUNA 2014.02.12 4952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