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0 04:48
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일한지 거의 20년이 되가지만, 그동안은 주로 연구활동이나, 아주 적은 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석사과정 강의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학부강의를 하게되었는데..
그렇지않아도 항상 발표공포증이 있는걸 꾸역꾸역참아가며 하고있었는데, 엊그제 학생들이 제 발음과 억양이 너무 세서, 못알아듣겠다며 학생대표에게 불평을 제기했다는군요..-_-;.
아, 정말 울적하네요. 하루아침에 억양을 고쳐서 원어민처럼 들릴 재주도 없고.. 그렇지않아도 전공분야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주제를 '배워가며' 강의를 하는 상황인데 정말 스트레스가 엄청나네요. 온라인강의가 여기저기 손이 가는 곳이 많아서 업무량도 엄청 늘어났는데.
학생들이 코로나사태이후로 짜증이 엄청나게 늘어있는 걸 대하는 것도 - 그런 이메일들을 읽다보면 마음에 생채기가 하다둘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300명이 던지는 작은 돌들을이렇게 계속 맞다가 정말 회복불가능의 상처를 입게 되지않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대학에서는 그렇지않아도 교직원들을 줄여보려는 것 같고, 강의평가가 안좋게 나오면....
발음을 어떻게 빠른 시간내에 교정해볼 방법이 있을까요?
2022.05.10 08:37
2022.05.10 10:13
그렇죠.. 백인남성강사들의 강의평점이 제일 좋고, 아시아여성강사(저는 교수도 아니지만)들이 제일 안좋다던 연구결과가 있던데, 인종에 대한 편견도 좀 있는것같아서 마음이 정말 힘들어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2022.05.10 09:28
신입사원때가 생각나네요.
영어로 외국인 교육시간이 있었는데, 제 차례에서만 못 알아듣겠다고 했던 기억이,,,,아직도 얼굴이 빨개지네요.
2022.05.10 10:15
그런걸 대놓고 못알아듣겠다고하는 사람들도 좀 무례한것 같아요. 특정한 부분을 골라서, 다시한번 설명해달라고 하는 방법도 있을텐데. 왜냐하면님도 힘드셨겠네요.
2022.05.10 10:35
요즘은 그런 말을 대놓고 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네요. 그 기저에는 결국 인종차별 성차별 나이차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견디는 것 외에는 딱히 답이 없다는 게 더 슬픈 일 같습니다.
온라인 강의라서 심화되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강의자료에 좀 더 자세히 쓰고, 천천히 명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좀 더 질문 받고 그런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온라인 강의니 텍스트 채팅 기능이 있으면 그걸 좀 더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명확하지 않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다든지.)
저도 요즘 제 발음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원어민과 1:1 수업을 좀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바쁘기도 하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해서 계속 미루게 되네요.
2022.05.10 16:16
네 정말 그래요. 같은 코스를 가르치고 있는 백인남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를 보면, 그분이 경험이 많고 하시긴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괴롭네요. 주신 팁들은 유용하게 잘 쓰겠습니다. 강의자료에 용어정리같은것을 넣어볼까해요.
2022.05.10 12:47
요즘 학생들 건방져요 말세죠
실라버스랑 ppt자료라든가 강의 자료를 충분히 나눠주면 입다물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자료없이 판서만 혹은 말만하는 교수가 넘나 싫던데요
한국말하는 교수도 알아듣기 힘들때가 있어서 저는 못알아들었는데 옆에 학생보면 못들은 내용이 적혀있고 그런게 싫더라고요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암튼 힘내세요 나는 괜찮아 맘을 굳게 먹으세요.
2022.05.10 16:18
건방지다기보다는 다들 힘들어서 강사들이 힘든건 미처 생각들을 못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돈값을 좀 해라"라는 류의 이메일을 받으면 피가 솟다가도, 학생들 자살률, 이런거 보면 다들 힘들구나 생각도 들고..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2022.05.10 13:28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간 동료들이나 학생들이 불편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단지 그냥저냥 외국인이니까 양해해 주고 넘어가 주던 면이 드러났을 수도 있지요. 대충 이 정도로 통하니까 더 이상 신경 안 쓰셨던 부분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죠
온라인 강의 하면서 교수 실력이나 성실성이 뽀록나기도 하고요. 그리고 배워 가면서 가르친다고 쓰셨는데 그 분야 전문도 아닌 사람한테 배운다는 것은 비싼 등록금 낸 학생들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도 있죠,이건 구조적인 문제같습니다만. 비대면이다 보니 여과없이 자신이 느낀 바를 쓰다 보니 그럴 수도 있고 상처받으신 것도 이해됩니다.
이 힘든 상황을 잘 해결해 가시길 바랍니다. 발음이 단시간에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ppt나 자료같은 것에 신경 많이 쓰시고 강점을 살리시는 쪽으로요. 한국에서 영어 교사들도 발음으로 스트레스 많이 받고 한국어 강의하는 사람들도 가르치는 게 어설프거나 발음 안 좋다 싶으면 항의받기도 하고 강의 평가에서 테러당하는 게 현실이라는 게 위안이 되실 지 모르겠네요 학생들도 잘 듣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거라고 헤아려 주시고 마음 잘 추스리시기를 바랍니다
2022.05.10 16:26
음. 학부의 과정들은 워낙 광범위한 범위로 가르치는 과목들이 많아서 '배워가지'않으면서 가르칠 만한 과목은 별로 없어요. 예를 들면 저는 생물심리학을 가르치는데, 박사과정이후로는 워낙 좁은 분야에 천착하다보니 생물심리학의 다른 분야들에는 - 특히 최신 논문- 들은 공부를 하지않으면 강의준비가 힘들더군요. 너무 오래 좁게 파다보니, 그 우물안에서 정말 편안하게 살다가 바깥에 나와서 허덕이는 기분이에요. 석사과정의 강의평가는 수년간 계속 좋아서, 사실 영어공부를 따로 전혀하지않았는데, 이번에 기회를 잡아서 좀더 노력해봐야겠어요. 조언 감사드립니다.
2022.05.10 15:26
아 저도 특히 박사과정때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스웨덴어로 하는 강의도 영어로 하는 강의도. 언젠가 한 학생이 당신같이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영어로 된 수업을 하면 안됩니다 라고 했던 것도 기억나요. 나중에 그 이야기를 같은 프로그램을 맡은 호주, 케나다, 남아프리카동료들한테 했더니 엄청나게 화를 내더군요. 그때 호주 쪽 학생이 그쪽 선생님들한테 다른 학생들 영어를 이해를 못하겠다 뭐 이렇게 불평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때 그분이 학생에게 이건 호주프로그램이 아니라 international 프로그램이다. 네가 영어가 모든 이들의 모국어가 아니란걸 깨닫지 못한다면, 그래서 이해할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 프로그램은 너한테 맞지 않는다 라고 하셨었죠.
요즘은 스웨덴어는 저의 일상어니까 문제 없는 데 영어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발음도 그렇고 단어도 그렇고... 여전히 두렵죠. 그런데 모르는 거 같으면 한번 더 하면 되요. 서로 이해할려고 노력하면 그래도 더 함께 나아가 지더라고요. 가끔은 제 지도 교수님 영어를 생각해요. 이분은 정말 전형적인 Svengelska (스웨덴 영어)를 하셨거든요.
2022.05.10 16:43
카페사우르스님에게 말씀을 들으니 위로가 많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심한 말을 들으신적이 있다니 정말 놀랍군요. 동료들이 같이 화내줄때만큼 위로가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동료몇에게 얘기하고 같이 방안을 논의해보고, 같이 울적해하다보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군요.
2022.05.10 20:17
디오티마님 글 읽고도 뭐라 위로를 드려야할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카페사우러스님 이 댓글을 보니 괜히 제가 기분이 좋아지고 막 감사한 기분이 듭니다.
2022.05.11 04:14
그렇지않아도 오랜 교직경험의 로이배티님이 조언을 주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 영어도 영어지만, 학생들이 너무 공격적일때가 많아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어요..
2022.05.11 11:58
학생들의 공격적인 태도에 국한해서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카페사우루스 님 말씀처럼 동료 선생님들과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일단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들 어느정도 안고 있는 문제더라고요. 위로도 되고 힘도 조금 얻고 노하우도 나누고요. 실기 위주 과목이나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목은 이런 문제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덜 힘든 것 같았습니다. 강사가 설명하는 걸 가능한 줄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많이 제시하고 학생들 자신이 많이 말하는 방법들을 찾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인들이 질문을 계속 받아야 하는 경우, 피드백이 물론 좋아야 하지만, 수업 자체의 집중도는 커지는 거 같아요. 인터넷 수업이 많아져서 한계가 있으시겠지만 수업 준비를 이런 방향으로 상세하게 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도 함부로 말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있으니 할만큼 하시고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마시길.
2022.05.10 23:38
2022.05.11 04:19
와.. 처음 보는 영상인데, 보면서 눈물이 저도 막 나네요. 감히 김연아선수에게 비견할수는 없지만, 생의 크고 작은 고난을 견뎌나가야하는 것은 저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인것 같아서요. 정말 위로가 되었습니다. 동료중한명이 대신 남은 강의를 해줄수도 있다고 했는데, 강의자료를 더 자세하게 준비하고, 질문시간을 더 많이 배정하고, 천천히 발음하고, 이런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마치도록 하기로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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