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번에 엘리아스 카네티의 자서전을 읽다가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카네티가 취리히에서 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지역 행사로 전교생이 큰 교회에 갑니다. 이 행사는 고트프리트 켈러라는 그 지역 출신 작가의 백 주년 기념행사였어요. 그때 카네티는 이 작가를 알지 못했어요. 어머니께 물어도 모른다는 겁니다. 당시 문학에 심취해 있던 소년 카네티는 행사장의 기념사와 엄숙함이 다 우습게 여겨집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위대한 작가(셰익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위고, 스트린드베리)도 아닌 사람을 그런 급이라도 되는 양 다들 경건하게 우러르는 분위기에 점점 화가 나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집니다. 내가 모르고 문학에 조예 깊은 우리 어머니도 모르는 지역 작가일 뿐인데! 마치고 나오며 친구와 '우리는 절대로 지역 명사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라는 말도 나누고요. 
나중에 대학생이 된 카네티는 고트프리트 켈러의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 사람'을 독일 문학 유일의 이야기로 여기게 되었고, 같은 작가의 [초록의 하인리히]에도 얼마나 심취했는지 모른다고 적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백 주년에 자신이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면 어린 날 무지의 오만함을 사죄할 찬사를 보낼 텐데, 2019년에도 살아 있다면.... 이렇게 적고 있었어요. 이 자서전이 나올 때가 1977년 나이 72세. 1994년에 돌아가셨답니다.
       

저는 고트프리트 켈러....어디서 들었더라 끙끙거리다가 검색을 해 보니 창비에서 나온 [젤트빌라의 사람들]을 사 놓은 겁니다. 왜 사놓은 것이야, 생각해 봤더니 제발트가 인터뷰에서 언급해서요. 이게 얼마 되지도 않은 일인데 기억이 안 나다니. 제발트는 자신의 작품 경향에서 어떤 영향을 찾는다면 19세기 독일 산문문학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중 고트프리트 켈러라는 스위스 작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역시 처음 들어 본 작가라 작품을 찾아 봤었고 창비 책을 샀었네요. 그리고 이번에 연말이기도 해서 대작 [초록의 하인리히]를 거금(*럽게 비쌈)을 들여 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초록색 옷을 줄여 입혀서 '초록의 하인리히'라는데 애초에 왜 아버지는 초록색 옷만 남겼는지는 읽어 봐야 알겠습니다. 

연말과 '초록색'은 관련 있...겠죠..붉은 색과 더불어. 사실은 이 책이 2009년에 나온 책이라 품절될 걱정에 그냥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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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네 페이지 읽고 어쩔까...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 대한 진단을 자기 이론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며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그 시대를 졸업했다, 라고 단언하며 시작합니다. 21세기는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 바이러스적이지 않고 신경증적 질환의 시대라고 말이죠. 이 책이 2010년에 독일에서 나왔나 봅니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이질적인 것의 위협보다 우리들 안에 있는, 내 것으로 여긴 것들이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시대라는 것인데, 코비드19를 겪은 지금 이 책의 설득력을 생각하게 되네요. 외부 요소의 부정성이 갖는 위협을 만만하게 본 거 아닌가 싶고. 지금은 이 책을 어떻게들 평가하는가 궁금하네요. 그래도 책이 얇기도 하고..일단은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요. 코끼리 다리 더듬기식으로 가다 보면 목이나 등짝에 이를지도.


3. 넷플릭스에서 웨스 앤더슨이 만든 로알드 달 시리즈를 봤습니다. 근래 본 영상물 중 가장 만족. 요즘 영화를 잘 안 보고 있긴 하지만요. 백조, 쥐잡이 사내, 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황극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담아 독특하게 살렸어요. 모두 우열 없이 좋았어요. 웨스 앤더슨 좀 다시 보게 되고요. 다시 보니 선녀같네요. 배우들 너무 잘 하고요. 한 편 한 편이 연극을 본 느낌입니다. 이어서 계속 나오면 좋겠는데 예정이 있을까요.


4. 요즘 게시판이 자주 멈춥니다? 지난 몇 년 중 짧은 기간에 횟수로는 제일 잦은 것 아닌가요. 갑자기 이용자가 폭증해서라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아닌 거 같고. 

2023이란 숫자에 적응도 못 했던 느낌인데 2024가 곧입니다. 개인이 적응하던 말던 날짜로 표시된 시간은 마구 흐릅니다. 

연말이래야 다를 거 없네요. 노견 보살피는 일상에 괜히 책지름이나 좀 더 하고 그렇게 즐기지 않으나 가끔 생각나는 초콜릿을 기분낸다고 이거저거 질렀습니다. 

그냥 하루를 그냥 순간순간의 시간을 산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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