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번역하면 보통 고유명사의 경우, 한글 발음으로 적고 그 옆에 괄호를 치고 원어를 병기하는 게 원칙입니다.

최종 출판본에 원어를 넣거나 안 넣는 건 보통 편집자 재량이고, 어쨌든 번역자는 혼동 기타 등등을 피하기 위해 병기를 해주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내가 받는 책은 "영어" 원서고 그 안은 어지간하면 몽땅 다 로마자 알파벳으로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미국/영국식 표기법에 따라서요. 이 경우 한국 독자들을 상대하는 번역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컨대 여러분이 읽는 책에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은 아주 못된 놈입니다" 라고 되어 있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블라디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Путин)은 아주 못된 놈입니다."라고 되어 있는 게 좋을까요.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받은 원서에는 그저 "Prime Minister Humio Kishida"라고 되어 있을 뿐이니

나는 영어 번역자로 "기시다 후미오(Humio Kishida) 총리" 이렇게 번역을 해서 넘깁니다~ 이래도 괜찮을까요.


우선 편집부와 상의하면 될 거 같은데, 그게....그런 게....말하기가 귀찮아서요.....그래서 대강 알아서 합니다.

에효...위대한 구글신이 있기는 하지만 유명 인물도 아닌 처음 듣는 아무개 대학 교수니 아무개 박사니 하는 경우는

정말 할 수 있는 한, 인터넷을 다 뒤집니다. 

중국 대학 교수 아무개라고 하면 그 대학 홈피 다 뒤져서 찾아내 한자로 병기하고요

일본 아무개라고 하면 또 다 뒤져서 히라가나 아니면 한자로 병기하지요. 사서 고생 같지만 그냥 그러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미국 장군이 영어로 손자병법, 육도삼략의 일부 내용을 끼적여 놓은 걸 보고는 이걸 해 말어 하다가 결국 다 한자 원문 찾아서 병기하기도 했고요.

물론 적당히 타협할 때도 있긴 하지요. 미얀마의 반군 아무개씨...까지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사서 고생"은요...

아람어, 아랍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등의 지명과 인명이 꽤 많이 나오던 책이었습니다. 문장은 아니고 지명, 인명 뿐이니까,

그것도 다 찾으면 나오는 유명인이니까 할만하다 생각했습니다. 위키피디어와 다른 사이트를 교차 대조하면서....

아니 근데요....이게 아랍어랑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거잖아요. 그걸 어찌어찌 복사, 붙이기를 해서

뭐...넘겼습니다. 이때는 솔직히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상하게 일거리를 만든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

뭐에 꽂혔는지 편집부나 에이전트랑 상의도 안하고 멋대로 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출판사에서는 별 말없이 몽땅 다, 원서 그대로 영어 알파벳 표기로 병기해서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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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편집부 측에서 오히려 "의논 없이 멋대로 뭔 짓을 한거냐? 일만 더 어렵게 만들지 않았나?" 라고 화를 냈어도

할 말이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정성에 기가 막혔는지, 아니면 사장님이 무던한 분이셨는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시고 그냥 넘어가셨어요. 아, 한 번 전화는 왔습니다. 한글 파일에 따라 뭐가 다 깨지거나

안 보이는게 있는데 이건 왜 그런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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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적당히 하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 관련은 정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다 원어를 찾는데요, 

출판사 측에서는 쓰다 달다 별 말 없이 내가 찾은 한자/히라가나를 그대로 병기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동쪽 키릴 문자는 뭔가 거부감이 드시는지, 이건 대부분 그냥 영어식 표기가 그대로 나갑니다.  


어쩌면 오히려 번역자 입장에서 하소연 해야 할 일일까요? 난 영어 전공자지 일본어, 중국어, 기타 등등은 모르잖아요!

하지만 구글신이 있고 어쨌든 뭐라도 시도할 방법이 있는데 그냥 넘어가기란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래서...니콜라이 고골 선생은 앞으로 러시아식으로 표기를 해드릴까요 아님 우크라이나 식으로 표기를 해드려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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