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남굉 감독 1976년작.
[소림사십팔동인]이 히트하자 마자 바로 나온 속편입니다.
전작과 제작진 출연진이 거의 그대로 겹치지만 배우들의 배역은 다르고 이야기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별개의 영화입니다. 걍 곽남굉의 십팔동인 유니버스에 속하는 영화라고 보면 될듯...

제목이 참 도발적이죠. 옹정황제는 실제인물상과는 달리 70년대 무협영화, 그중에서도 소림사 관련작에선 거의 타노스에 해당하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모든 일의 원흉, 흑막이고 한족들과 강호협사들의 철천지원수,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림사를 불태운 장본인'입니다.
그런 인물이 십팔동인을 작살낸다니... 나쁜놈이 이긴다는 소리잖아요.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겠죠. 물론 저 제목은 낚시입니다만...

[십팔동인]의 주인공은 전붕과 상관영봉이지만 이 두사람보다 조연으로 나왔던 황가달이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었죠. 그래서 이영화에선 황가달이 단독 주인공, 옹정역을 하게되었습니다.(전/상관 두사람은 카메오로...)
그니까, 정의의 싸나이들만 주인공을 하던 시절에 공인된 악역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나름 참신한 뒤집기를 시도한 영화인가봅니다.
뭐... 황가달이 데뷰 초기에는 정의감에 불타는 싸나이역을 자주 하긴 했지만 사실은 악역이 더 잘 어울리는 얼굴이긴 하죠ㅎㅎ


옹정제를 둘러싼 대표적인 흉흉한 소문중 하나가, 강희제의 유언장을 조작해서 황제자리를 찬탈했다는 거고, 이 영화도 그걸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황제가 된 옹정은 소림사에 대해 올라온 보고서를 보고는 자신이 과거 소림사에 살았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4황자이던 시절 평민으로 위장하고 외출했던 훗날의 옹정(이하 그냥 옹정)은 어쩌다 소림파 제자(양팔에 용호문신이 새겨진 사람...)와 싸움이 붙었고, 이기지 못하게 되자 열받아서 소림무술을 배우겠다고 소림사에 찾아갑니다. 수하들에게는 3년뒤에나 찾아오고 그동안에는 연락도 하지마라는 지시를 내리고요.

악당답게 소림사에 들어가는 동기가 참 찌질합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입산한 옹정이 3년후 하산하기까지 피눈물나는 개고생을 하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그니까, 앞부분 30분 동안 있으나 마나한, 스토리라 할 것도 없는, 소림사에 들어갈 구실만 대충 잡아놓고는 그뒤 한시간 동안 18동인진을 통과하는 과정만 나오는 겁니다. 제작진들이 다 필요없고 18동인진을 통과하는 과정이 영화의 성공요인이라고 판단한 거죠ㅎㅎ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전작에는 안나왔던 새로운 관문들을 선보입니다. 락카칠 아저씨들은 두번 보니 신선함도 떨어지고 전작에 비해 좀 인상이 약한 감은 있어도...
전붕에 비하면 황가달이 훨씬 더 운동을 잘하는 분이니까 액션은 더 절도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뭐 재미난 구경거리로서는 어느정도 역할을 합니다.

그치만 한편의 영화로서 재미있게 보기에는 문제들이 좀 있는데...
전작은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쉽고 효율적인 복수플롯으로 전개과정이 뚜렷한 영화였습니다.
근데 이 영화의 앞부분은 그야말로 주인공이 소림사에 들어갈 구실만 간신히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의 액션이 정서적인 쾌감을 이끌어낼 분위기 조성을 하지 못합니다. 그 구실이 그리 납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옹정이 주인공이니 이야기를 함부로 진행할 수도 없죠. 나중에 소림사를 불태울 사람인데 옹정이 진짜로 십팔동인진을 통과해 소림제자가 된다면 그 뒤의 이야기가 꼬여버리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옹정이 황제가 되는 걸 보여주고 시작했고요. 그러니 결말은 사실 정해져있습니다. 주인공이 그 개고생을 해도 보는 사람은 이미 저친구 아무리 저래봐야 소림제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거란 걸 알고 보는 거죠.

그런데 또 의외로 영화속에서 옹정의 캐릭터가 밉상은 아니거든요. 시작부분에 부정하게 황제가 되는 걸 보여주고, 시덥잖은 동기로 소림사에 들어가는 것까지 해서 일단 좋은 놈은 아니다라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정작 절 안에 들어간 후의 옹정은 성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황자라는 신분인데도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주변에서 놀림이나 천시를 받아도 다 참고, 성질 한번을 안내고, 무술 연마도 열심히 합니다. (밤에 장경각에 들어가서 책 훔쳐보는 것만 빼면) 오히려 모범적인 무협영화의 바른생활 사나이 캐릭터ㅂ니다.

이렇게 착실한 친구가 화로 옮겨서 양팔에 용호문신을 박아보겠다는 소망 하나로 3년을 꾹 참고 개고생했는데, 그랬는데도 소림사측에서 순전히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옹정을 거부하는 겁니다. 아니 그런 것과는 무관해야할 절에서 정말 성실히 노력한 친구를 좌절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소림사가 나쁜넘들이예요.

그니까 이 영화는 옹정이 왜 소림사를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탐구하는 프리퀄인 셈입니다.
아마도 70년대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 의도는 '그냥 나쁜넘'인 옹정이 소림사를 속여넘기려다 발각되어 정의구현당한다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만, 나쁜넘을 주인공으로 해보자는 색다른 시도를 해본 것까진 좋은데 그 나쁜넘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냥 주인공처럼 보이도록 그려버린 거 같아요. 그러니 소림사가 나쁜넘으로 보이고 옹정이 정말 억울하게 부조리한 대우를 받는구나 싶고요... 보고 있는 입장에서 누구편을 들어야할지 참 애매해집니다.

영화 마지막은 옹정황제가 소림사를 없애버리겠다는 결의를 하며 끝납니다. 그리고 곽남굉은 이어서 [불타는 소림사]를 만들었죠.


[옹정대파십팔동인]은 [소림사십팔동인]에서의 관문통과 과정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추가 DLC 같은 영화입니다. 스토리는 별 의미가 없는데다 옹정과 소림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무의미하고 황당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될테고요. 그니까 '2편'이라는 이유로 꼭 봐야할 필요까진 없을것 같고.... 걍 고전 무협/쿵후영화 팬이라면  그럭저럭 볼만하지 않을까 싶어요ㅎㅎ





-1편이 국내 극장에서 히트했지만 2편은 나왔던 당시에는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것 같고요.(어쩌면 당시 높으신분들한테 껄끄러운 내용이었을지도...)
비됴로는 [대파십팔동인]이란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고 딥디로는 [소림통천문]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같은 제목으로 70년대에 극장개봉한 영화가 있는데 관계는 없습니다)
글구 [소림사 18동인 2]라는 제목으로 몇년전에 (VOD에 '신작'이란 라벨 붙일 목적으로) 극장에 잠깐 걸렸고 지금은 그 제목으로 서비스중인 것 같네요.


-DVD 보다 HD 버전이 한 30초 짧은 것 같습니다. 뚜렷하게 삭제된 장면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프레임이 여기저기 삭제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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