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플라이언스>와 <한공주>, <셔틀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 영화들에 대한 사전정보를 일절 원치 않는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컴플라이언스>와 <한공주>에 대해 스포일러가 있다/없다 표시하는 건 이상하다 못해 좀 무례한 일인 거 같은데.. <한공주>의 경우 프로그램 노트에 명시된 줄거리 이상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적어놨고, 

<셔틀콕>의 경우에도 사람에 따라 스포라고 느낄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 전 실화를 영화화 한 영화들을 많이 보지 않았어요. <도가니>도 안 봤고, <남영동1985>,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도 보지 않았지요.

그래서 비교군이 별로 없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컴플라이언스>였어요. 작년 부산영화제 미드나잇패션에서 봤던가 그랬는데요.

이미 시놉시스로 걸려있는 한에서 줄거리를 말씀드리자면, 패스트푸드점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오고 그 전화가 성폭력으로까지 번지는 영화에요.


그리고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 중 <한공주>라는 영화가 제 주변에선 좀 찬반이 격하게 갈리는 영화인데요.

저는 <한공주>가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생각을 처음엔 못했어요. 언뜻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떠오르긴 했는데요.

사실 저는 사건이 있었던 2004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고, 사건에 대해 어렴풋이 알 뿐 자세한 내막에는 별 관심이 없었나봐요. 자세한 가해자의 숫자라든가, 범행수법 이런 건 잘 몰랐어요. 

아마 저희 부모님은 딸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아이들에게 멀지도 않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저한테 주의를 주거나 했을 수도 있을 텐데, 보통 부모님 말은 흘려들으니까... 별로 귀기울여 듣지 않았겠죠.

 

그래서 <한공주>가 그냥 일반적으로 (물론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집단성폭행 사건에 대해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 영화가 굉장히 불쾌했다는 분들의 말을 듣다보니, 가해자의 숫자라든가 정황에서 (100%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거의 유사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사건을 (감독 본인이 소재로써 이용하려고 의도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하더라도) 다시 불러들일 때 실제 피해자들이 겪을 고통에 대해서 너무 간과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전에 봤던 <컴플라이언스>가 떠오르더라구요. <컴플라이언스>의 경우,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처음부터 밝혔던 걸로 기억하고, <한공주>가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컴플라이언스>는 아예 사건이 일어나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를 거의 리얼타임으로 다루거든요. 피해자가 잊고싶거나 지우고싶은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면에서는 사실 그 영화가 더 심할 거 같은데,

그 영화를 보면서도 '근데 이거 피해자들에게 허락은 구하고 만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게다가 영화에서 자막으로 제시되는 정보에 따르면 비슷한 보이스피싱 전화에 수난 당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더라구요. 

사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거야 누가 만들면 만들어지는 거겠죠. 근데 그걸 지지하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니까요.

특히 영화윤리를 쇼트 단위로 아주 세세하게 따지고 중시하는 사람들은 주로 비평가들이잖아요. 근데 <컴플라이언스>는 비평가상도 탔더라구요. 


사실 <한공주>에 대해서도 본 사람들끼리는 몇 몇 장면이나 쇼트에 대해 의견이 많이 충돌했었는데 (주인공이 겪는 일을 너무 담담하고 안정적으로 잡았다고..) 저는 영화 내에서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특별히 비윤리적인 연출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요.

자크 리베트였나 세르쥬 다네였나 기억은 안 나는데 하여튼 외국평론가는<카포>의 트래킹 쇼트와 반대의 지점에서 <우게츠 이야기>가 살인을 담아내는 방식에 대해 카메라가 죽음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우게츠 이야기>가 더 윤리적이라고 말을 하던데 

사실 저는 비평가의 글을 읽을 때는 오호,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거든요. 근데 막상 <우게츠 이야기>의 영상을 볼 때는 뭔가 꿈보다 해몽처럼 느껴졌고 (애초에 비평이란 게 대체로 그렇게 보이기 십상이지만) 

심지어 그걸 50년도 더 지난 지금 똑같은 기준으로 '<한공주>의 카메라는 더 불안하게 사건을 바라봤어야 됐다'고 말하는 건 너무 기계적인 해석처럼 들리고 심지어 위선적으로 들리기까지 했어요.

요즘 한국영화들은 정말 삑하면 카메라를 핸드핼드로 흔들어대면서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했다는둥 그러고, 

요번에 부산영화제에서 본 어떤 영화는 아주 사람을 쉽게 죽여나가면서도 막상 살인할 때에는 내킬 때는 카메라를 일부러 더 흔들어대거나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죽임 당하는 피해자 시점의 쇼트를 불쑥 삽입하는 등 맥락도 없는 연출을 해대던데...


물론 온전히 픽션 속에서라 해도 강간 장면을 자극적이게 담아낼 때에는 진짜 너무 감독이 저열하단 생각이 들고, 

결국 그런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는가는 윤리적인 문제랑 닿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한공주>는 그런 지점에서 자극적으로 연출하는 건 끊임없이 견제하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결국에는 연출을 어떻게 했냐를 떠나서 영화가 피해자에게 또다른 3차적인 고통이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애초에 만들어져선 안 되는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구요.


그럼 실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아예 만들어져선 안 되는 것이거나, 피해자의 동의를 구한 후에 만들어져야 하는 걸까요?

사실 전 여기서부터 판단이 안 서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공주>를 이번 영화제에서 본 한국영화 중 <족구왕> 다음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다가, 

이 영화가 실제의 사건하고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을 때에도 맘편하게 지지할 수 있는가, 에서 조금 의문이 생겼어요.


사실 정말 이상한 이야기인데, (<한공주>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이전에) 저는 <셔틀콕>이라는 영화를 볼 때에 실제 동물 사체가 등장한 데에 무지 불쾌감을 느꼈거든요.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살인이나 시체(혹은 죽은 동물)를 볼 때에는 보통 저것이 지어낸 것, 만든 것, 실제가 아닌 것- 이라고 생각하고 보는데 

사실 그게 실제였을 때 드는 이상한 감정 같은 게 있잖아요. 전에 지아 장커 영화를 볼 때에도 실제 죽음이 영화 속에 들어와서 굉장히 머리 속이 물음표로 가득찬 적이 있었는데..

뭔가 사람의 주검이든 동물의 사체이든 실제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고 쇼트로 구성하는 게.. 그냥 도구처럼 쓰이거나 착취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싫었어요.

근데 그러면 또,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걸까, 싶기도 하고. 다큐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나올 때에 제가 본 경우는 대다수 그 죽음의 한을 풀거나 또 다른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맥락에서 위치한 경우가 많았는데 

저 스스로에게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에 사실 거기에 '응, 실제 사건을 그런 용도로 쓰는 건 정당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거부반응이 적었던 거 같긴 해요.


근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 딜레마를 느끼고 있어요. 실제의 사건을 이야기에 끌고 들어와서 피해자에게 기억을 상기시킬 권리는 없다는 말이 공감되고 (소설이나 만화도 해당되겠지만, 영화가 시청각적으로 재현하는 기능은 탁월하니까요)

<셔틀콕>을 보면서 제가 거부반응을 일으켰듯 영화가 가상이 아니라 실제를 끌고 들어왔을 때에 야기하는 불편함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실화 소재의 모든 영화는 제작돼선 안 되는 것일까,

그게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른 문제라면 (실제의 사건을 소재로서 착취하느냐 아니냐) 목적이 옳으면 수단이 정당화 되느냐 (장르영화에 가까워보이던 <컴플라이언스>를 볼 때 들었던 거부감이 지아 장커의 영화를 볼 때에는 덜했던 걸 보면, 

지아 장커 영화가 픽션과 다큐 중간처럼 보여서인 걸까?..) 그렇다면 실화를 소재로 해도 되는지 아닌지의 기준은 어디까지 둬야하는지, <살인의 추억>도 만들어져선 안 되는 영화였다고 말해야하는가? 등등 계속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너무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심한 문제를 하나로 정리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걸까요? 


솔직히 전 <살인의 추억>에는 그런 문제제기를 할 필요를 못 느끼고, <한공주>나 <컴플라이언스>도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마음 한켠이 켕겨요. 그러면서 <셔틀콕>을 싫어하는 제 잣대에 일관성 없음을 느끼구요.

결국 두 편 다 부산영화제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물론 <한공주>를 싫어하는 사람은 혐오하는 수준으로 싫어하고, <셔틀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그 영화를 싫어합니다, 바로 저처럼.. 제 경우엔 영화 외적인 부분들이라 좀 반칙같지만..)

큰 상은 아니지만 2관왕씩 상도 탄지라 글을 적어봤는데요. 사실 <셔틀콕>이나 <한공주>를 영화제 때 본 분이 아니라면 개봉전이라 별로 본 분이 없으실 거 같고 

두 작품 다 개봉할 예정이 있으니 이런 글은 개봉 후에 써야 되나 생각도 했는데.. 며칠 전부터 계속 그냥 생각이 복잡해서 정리차원에서 써봤습니다. 별로 쓴다고 정리가 되는 건 아니고 그냥 제 줏대없음만 다시 한 번 느낄 뿐이지만요.. =.=


혹시 저와 비슷한 생각이나 고민을 하신 분이 계시다면,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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