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고과는 잘 처리하고 계십니까?

2012.12.24 14:34

DH 조회 수:2587

연말이네요. 고과 철입니다.

 

자기평가부터가 고욕입니다. 한 줄 쓰는 것도 아니고 각종 능력치별로 다 자기 평가를 해야하는데 그 자화자찬이 참 어렵습니다. 팀웍이 뛰어남, 기획력이 좋음, 리더십이 뛰어남, 분석적 사고가 돋보임 등등. 지금 회사는 다행히 본인에게 점수를 주는 시스템은 아닙니다만, 전에 다녀본 회사에서는 등급을 직접 줘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스스로에게 S를 줘야한다. 본인마저 스스로를 S등급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누가 S로 봐주겠는가?" 했었는데, 일부 팀장들은 "팀장이 평가할 여지를 줘야하는 거 아니냐. 무조건 다 S라고 해서 들고오면 이거 뭐 어쩌라는 거냐?" 며 일종의 "자수"를 선호하기도 하더군요.

 

이제 저에게 여러 명의 평가가 할당되었습니다. 역시 능력치별로 평을 쓰고 이번엔 점수를 줘야합니다.

 

문제는 아마 모든 회사가 그렇지 싶은데... 여기서 또 '온정주의'가 고개를 든다는 겁니다. 사실 저에게 배당된 피평가자들은 다들 딱히 뭐 잘못한 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도 없죠. 이렇게되면 자꾸 다른 걸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음.. 이분은 이번에 승진하실 때가 됐지. 고과를 좀 높이 줘야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얜 신입이잖아. 신입은 좀 바닥 깔아줘도 괜찮아." 등등.

 

마음먹기에 따라서 피평가자들의 점수 격차를 확 벌이면서 특정인에게 고득점을 몰아줄 수도 있습니다. 승진이 절실한 분에겐 큰 도움이 되겠죠. 문제는 점수의 범위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러려면 누군가는 그만큼 피해를 확 봐야한다는 점. 게다가 누가 누구를 평가했고 몇 점을 줬는지는 당연히 특급비밀인데, 전 그동안 당연히 모르고 살았습니다만, 아는 사람들은 또 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되면 특정인 밀어주겠다고 다른 특정인을 깔아버렸다가 나중에 그게 밝혀져서 인간관계 개판되는게 아닌지도 또 걱정이고...

 

사실 말단의 평가는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은 팀장의 하향평가가 승부를 가른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보니 고과가 발표될 때 승진을 앞둔 분이 점수가 영 안나오면 대놓고 팀장과 대판 싸우는 경우도 은근히 있다고 합니다. "나 승진 기수인거 알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지만, 팀장은 다른 반발도 감수해야 하죠. "아무리 저 사람이 승진이 걸려있어도 그렇지, 내가 정말 저 쓰레기보다 일을 못했다고요? 쟤 일 하나도 안하고 노는거 아시잖아요!! 저런 애 승진시키면 회사 개판되요!!" "아 나도 아는데.. 그래도 동기들은 다 승진했는데 혼자 과장이고.. 딸린 식구들 생각도 해야... 당장 나한테 들이받을 것도 겁나고.."

 

뭐 길게 썼지만 내용이야 뻔히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고욕, 남을 평가하는 것도 고욕. 평가, 판단 다 힘들어요. 교사나 판사가 되지 않길 잘했...(못된건 아니고?) ㅡㅡ;;

 

p.s. 근데 다면평가가 도입되서 팀원이 팀장을 평가하게 되면, 정말 팀장이 고과철만 되면 난데없이 잘해주던가요? 저희는 다면평가가 도입되어 있습니다만 별로 그런걸 느껴보질 못해서요. (모르죠 아직 끝이 안났으니 어느날 조용히 불러 부탁하실지도.. ㅡㅡ)

 

p.s. 언젠가 인사팀으로 발령이 나서 과거의 다면평가 기록을 다 까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면, 본인을 평가했던 타인의 기록을 까볼 것 같으신가요? 이거 의외로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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