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틸 때도 있는 거지, 뭐.

2012.09.03 00:52

유니스 조회 수:3009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소위 슬럼프란 몇 번이나 찾아올까요.

슬럼프란 역시 슬럼프다워서

'슬럼프가 오면 이런 이런 것을 해야지' 하고 야무지게 다짐했던 것들이

지우개로 지운 듯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설마 기억이 난다 해도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아서,

또는 '그딴 것 열심히 해 봐야 이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어' 란 부정적 상념에 잔뜩 싸여 있어야 바로 슬럼프겠죠.

 

말하는 건축가를 보며 베개를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울고

고기와 술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일어나 초콜릿에 프렛젤을 먹고 다시 잠들고 일어나면 진을 마시고

지인들에게 힘들다 징징대는 문자를 보내 다정한 문자를 받고

그러다 보니 할 일이 먼지처럼 쌓여 버려, 곧 죽을 것 같은 괴로운 표정으로 벼락치기를 하고

책을 펴면 욕이 나오고

멋진 문장을 보면 짜증이 나고

빛나는 사람을 보면 열패감이 듭니다. 아뿔싸. 만날 욕해오던 못난 인간이 여기 있네.

 

아, 내가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황당해요.

에너제틱한 척 하며 외면해 온 고단함과 자기연민이 쌓여, 쌓여

팍, 하고 터져 버렸어요. 하던 일들 모두 택배박스에 담아 먼 곳에 보내 놓고 딱 한 달만 누구도 나를 모르는 곳에 있다가 오고 싶은데.

다른 이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네요. 그만두는 것에도 에너지가 드니까요.

어쩌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떨어져 본 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워요.

어쩌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가 제일 싫어요. 전화기, 호수에 던져 버리고 싶다......

운동을 하면 좋겠죠. 여행을 가면 낫겠죠. 친구를 만나면 ....근데 그건 별로다. 말하는 내가 보기가 싫어요. 제 목소리가 짜증이 나요. 으악.

무엇보다 일을 하기가 싫어요. 싫은 마음으로 일을 하면, 고스란히 나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제 직업이라....꾸역꾸역 참으며 하는 게 민폐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니, 너.

 

 

+제목은, 사람많은 대낮의 커피숍에서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리게 한 문자 메시지.

나는 버티기 싫은 거구나. 만날 잘하고 칭찬받고 우쭐해하는 거에 익숙해졌구나...알았죠. 그순간.

너는 별 생각없이 던진 위로일지도 모르는데 말야.

다정한 친구, 너 이녀석 나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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