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 최후의 결전'

2024.05.12 11:07

돌도끼 조회 수:130

윌리스 오브라이언은 70대 중반이 되는 60년대 초쯤에 새로운 킹콩 영화를 기획합니다.
이분은 명성과는 다르게 평생을 제작비 모으느라 고생하셨어요. 스톱모션이란 게 워낙에 돈 많이 들고 시간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오브라이언이 낸 이런저런 기획에 선뜻 돈을 내놓는 투자자가 없었습니다. 킹콩이라는 희대의 히트작을 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 희대의 히트작 킹콩을 다시한번 우려먹으면 돈이 좀 쉽게 모이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왕 하는거 킹콩과 동시기의 대히트작이었던 또다른 몬스터까지 한데 붙였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이름하여 '킹콩 프랑켄슈타인과 만나다'
프랑켄슈타인(의 손자)의 괴물이 킹콩만큼 덩치가 커서 킹콩이랑 맞짱뜬다는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양대스타를 한자리에 모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작비는 못구했습니다. 당시 RKO는 이미 영화제작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 실제 제작을 하려면 돈대줄 다른 스튜디오가 필요했습니다.
존 벡이라는 제작자가 오브라이언에게 자기가 책임지고 영화를 만들 스튜디오를 연결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제목은 '킹콩 대 프로메테우스'로 바뀌었습니다. 벡이 생각하기에 제목에 프랑켄슈타인을 쓰면 저작권료 줘야할 거 같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프랑켄슈타인 원작 소설의 부제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였으니 아주 멀리간 제목은 아니죠.

그러니까 그 저작권이 말이죠.... 존 벡이 보니까, 오브라이언은 영화속 킹콩을 실제로 만들어낸-킹콩의 아버지라고 할수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딱히 킹콩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벡은 오브라이언 몰래 기획안을 여기저기 돌렸고, 좀 엉뚱하게도 일본의 토호가 그걸 덥썩 사들입니다.
오브라이언은 뒤늦게 뒤통수 맞은 걸 알았지만 어떻게 해보지도 못할 처지였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된 또 한사람, [킹콩]의 감독이자 제작자인 메리언 쿠퍼도 들고 일어났지만, 쿠퍼 역시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킹콩]이 워낙에 오래된 영화라 당시만 해도 저작권이란 거에 사람들이 그렇게 열나게 신경쓰지는 않았더랬어서... 뭐 그 후로도 킹콩의 권리는 이리저리 쪼개져서 지금도 아주 개판이라고 하는듯...

서로서로 소송하고 난리가 났었더라는데, 결국 토호는 RKO한테서 거금을 주고 킹콩의 제작권을 샀고, 그러는 동안  원기획자인 오브라이언의 이름은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관련자들 중 오리지날 [킹콩] 영화의 창조주들은 다 뒷전에 밀린채, 아무 관련없는 제3자였던 벡만 돈을 챙겼습니다.
얼마후 오브라이언은 사망했는데, 노년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게 건강에 좋았을 리는 없겠죠.

당시 토호는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거기 맞춰 거창한 이벤트 거리를 찾고있었는데, 일본에서 킹콩 영화를 만든다는 것보다 더 거창한 이벤트가 어디있겠습니까.
돈을 아끼지 않고 펑펑 써서 킹콩의 권리를 얻어낸 토호는 킹콩과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싸운다는 원래 기획에서 당연하게도, 킹콩의 상대역을 고지라로 바꿉니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거대 괴물이 나오는 영화는 따로 만들었습니다)

고지라 영화는 54년에 1편, 55년에 속편이 나온뒤로 오랫동안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토호는 고지라만 계속 우려먹기 보다는 라돈 바란 모스라 등 계속해서 새로운 괴수들을 창작하는 방향으로 가고있었습니다. 그러다 킹콩이라는 엄청난 이벤트 건수가 생기자 상대역으로 자신들의 상징과도 같은 고지라를 다시 불러온 거죠.

제목은 '고지라 대 킹콩'이라고 하려고 하다가 더 유명한 선배의 체면을 봐서 킹콩의 이름을 앞에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 나온 영화들이 다 '고지라 대 뭐시기'라는 제목인데 이 영화만 혼자서 튀죠.(60년 뒤에는 전세가 역전되는 것 같지만...)

1962년에 나온 [킹콩 대 고지라]는 세번째 킹콩 영화이고 고지라 영화로도 3편입니다. 그리고 두 괴수 모두에게 첫 와이드스크린이자 첫 칼라 영화이기도 합니다.

혼다 이시로 감독은 처음엔 내켜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시키니까 했는데, 일단 하기 시작하면 또 각잡고 하는 사람이라... 영화를 만들면서 시청률에 목숨 걸고 온갖 기행을 일삼던 방송국과 광고계에 대한 풍자를 영화속에 넣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정하고 코미디를 만들려고한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나왔던 토호 괴수영화들 중 가장 가벼운 분위기이면서 웃깁니다. 거기다 특촬감독 츠부라야 에이지는 한술 더 떠서 괴수들의 액션까지도 웃기게 만들었습니다. 혼다 감독이나 츠부라야의 제자들까지도 난색을 표했을 정도로 츠부라야는 폭주를 해버렸는데,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먹혀서, 이 영화는 천만을 가볍게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지금까지도 관객동원수로는 고지라 영화들중에 1등입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고지라는 확실하게 시리즈로 정착할 수 있었고, 토호는 신괴수를 창작하는 것 보다는 이미 이름이 나있는 애들을 모아다 쌈질 붙이는게 더 잘먹힌다는 걸 깨닫게 되어 모스라 라돈 등 별도 작품으로 나와있던 애들을 전부 고지라 영화로 불러들이게 되고 이후로 고지라 시리즈는 밝은 분위기의 괴수레슬링 영화로 굳게됩니다. 이 영화가 고지라 시리즈의 틀을 잡게된 거죠. 뿐만 아니라 괴수들이 나와 치고받는 영화는 다 이 영화의 영향권하에 있다고 봐도 될겁니다.

'킹콩 대 프로메테우스'를 토호에 팔 때 완성된 영화의 미국 배급권도 미리 확보해뒀던 존 벡은 [킹콩 대 고지라]의 미국판을 만들어 유니버설에 팔았습니다.(그렇게 해서 유니버설 명의로 나온 첫 킹콩 영화가 되었다는...)
미국판은 원작의 스토리 상당부분과 코미디를 다 잘라내버리고는 영화 전체가 UN에서 방송하는 뉴스프로그램인 걸로 개조했습니다. 잘라버린 스토리 부분은 패널들이 나와서 해설하는 걸로 퉁치고요. 그니까 미국판에서 새로 촬영한 장면은 좁아터진 뉴스 스튜디오에서 사람 몇명이 앉아서 이빨터는 것 밖에 없어요.(야외 장면은 다른 토호 영화 장면들 끼워넣은 거고...) 나름 일본판에서 어색한 부분을 살짝 보완한 측면은 있습니다만...

늘 그랬듯이 이 미국판이 일본외의 대다수 지역에 배급되었고, 그 덕에 영화에 나온 하마 미에와 와카바야시 아키코는 해외에 얼굴이 팔려 공공칠 영화에 캐스팅되게 됩니다.

글구 한국에도 일천구백구십년에 '킹콩 최후의 결전'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한국어 더빙으로 비됴로 나왔습니다. 국내에서 고지라의 인지도가 낮다보니 제목에 굳이 넣을 필요를 못느꼈었던지... 아니면 고지라를 강조하면 일본영화란게 들통날까봐 숨긴건지 어쨌든... 비됴 껍데기엔 '킹콩 VS 공룡'이라는 선전문구를 써놓기도 하고(여담으로 이 영화의 대만 개봉 제목이 [금강이 공룡과 싸우다]...) 거기다 고지라를 고드질라라고, 영어 써진 그대로 읽었습니다.(근데 이 비됴는 뭔가 수상쩍인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어쩌면 정상적인 경로로 수입된 건 아니었을지도...?)






-토호는 RKO한테서 5년간 킹콩 임대계약을 했고, 이 영화 뒤로 이런 저런 기획안들을 짜내보지만 실현되지 못했다가 계약기간 끝날 때 다 되서 [킹콩의 역습]을 만들었습니다.

-일본판에서는 주인공 괴수 이름을 꼬박꼬박 킹콩이라고 하고있는데 미국판에서는 콩과 킹콩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이나 그외 여러 국가들에서는 콩이라는 이름은 좀 낯설었으니까(2017년 이전까지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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