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보고 왔는데, 글 올리는 건 오늘이네요.

새 외장하드가 도착해서 Gmhddscan으로 검사 돌리고 있습니다. 문제 없으면 이리로 백업하고 뻑난 외장하드는 AS 맡겨야죠.

근데 대리점이 아니라 백화점 통해서 산 거라서 AS 되려나 모르겠네요.

요 며칠 사이의 교훈: 외장하드는 데이터 보관용이지, 데이터 작업용이 아니여. ㅠㅠ




각설하고.

집에 와서 인터넷 리뷰들을 살펴보니 다들 러셀 크로우가 별로였다고들 하는데, 저야 뭐 뮤지컬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별로 불만스러운 점은 없었습니다.

"비참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극이기도 하지만, 전 팡틴, 코제트, 에포닌 같은 개개인의 비참함 보다 중반부의 거지떼가 한 푼 내놓으라면서 부자들의 마차를 쥐고 흔드는 장면, 라마르크 장군 장례식, 바리케이드 전멸. 이런 장면이 더 와 닿더라구요. 혁명에 약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같은 경우에는 들으면서 눈물 줄줄 흘렸습니다. 제 옆의 옆의 옆에 앉아 있던(그 사이 자리들은 다 빈 자리) 커플이 제 쪽을 힐끔거리면서 이상한 놈 보듯 했지만 알 게 뭐야.

(사실 영화 보는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이 노래부를 때마다 클로즈업 되는 건 엄청 갑갑하고 불편했지만요.

그런데 극 내내 줄곧 클로즈업으로 잡히던 화면이 피날레에서 갑자기 전경 전체를 잡으면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다시 나오자 그냥 유체이탈 상태로 중얼중얼 따라불렀습니다. 오, 맙소사. 거리면서. 사실 그 이전 장면에서 주교가 다시 나오자 다소 냉소적인 느낌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터져나오자 반작용 덕분에 더욱 감정이 격앙된 거 같아요.


캐릭터들에 대한 얘기를 좀 하자면, 제가 보기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자베르와 에포닌이었어요. 에포닌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자베르가 가브로슈의 시체에 자기 훈장을 달아주는 부분에서는 장발장과는 또 다른, 인간성의 변화가 느껴졌기 때문이죠. 장발장이 범죄자에서 개심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 개인의 개심이고 회심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제가 싫어하는 종교적 요소가 개입되었다는 점도 이런 삐딱한 생각에 한 몫 했겠죠). 그런데 자베르는 단순히 장발장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경감이라는 경찰 간부로서 억압적 사회의 대변자이자 그 억압의 첨병에 선, 사회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억압 체제의 상징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자기모순을 이기지 못해 투신하는 장면에서는 자베르에 대한 연민까지 생기더군요(물론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장발장이 자베르의 가치관 붕괴에 한몫하긴 했지만). 이런 캐릭터 유형 좋아해요. 체제 내부에서 번민하고 갈등하는 자. 《브이 포 벤데타》의 에릭 핀치처럼요. 뭐, 엄밀히 말해서 자베르는 지속적인 번민의 결과 붕괴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한 순간에 붕괴하는 캐릭터지만.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별로 마음에 안 들덥니다. 어린 코제트와 어른 코제트가 자꾸 분리되어서 다가왔어요. 어린 코제트는 예쁘고, 또 불쌍하죠. 귀신 튀어나올 것 같은 숲 속으로 양동이를 들고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또다른 사회의 피해자구요. 하지만 어른 코제트는 그저 자상한 양아버지와 잘생긴 부자 남편을 가진 티가 전혀 묻지 않은 아가씨일 뿐이었어요. 제가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별로 정이 안 가더군요). 가난 코스프레를 하다가 에포닌에게 야유를 듣는 마리우스의 모습에서는 딱 그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살롱 좌파. 샴페인 좌파. 바리케이드에서 죽을 고비까지 넘긴 마리우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부당하겠지만, 이 둘은 6월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왕당파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서 룰루랄라 성대하게 결혼식까지 올리지요. 물론 영화상 축약이 심해서 그런 겁니다. 하지만 그 축약의 결과 그렇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죠.


원작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종교적 상징이 보이는 것 같아서 불편하기도 했어요. 앙졸라가 머스킷 세례를 받고 창문 밖으로 날아가 양 팔을 벌리고 거꾸로 매달려 죽는 장면에서는 "야 저놈이 베드로 코스프레를 하는구나"라는 불순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제 생각이 맞다면 아주 효과적인 상징이긴 하죠. 혁명의 "반석"이 되어 죽는 거니까. 하지만 이런 불순한 생각이나 불편함을 금방 뇌리에서 지워 버린 것도 이 영화의 힘이 아닐까 싶었어요.


다음 번엔 로봇 앤 프랭크 개봉하면 그거 보러가야겠습니다.









사족.

헬레나 본햄 카터는 볼 때마다 금보라 씨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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