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9 18:23
첼리스트 카렐 노박은 하이든의 첼로 콘체르토를 연주하고 나오다가 이제는 크리스틴
래드클리프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옛 애인 샤치를 만납니다. 둘은 결혼하지만
크리스틴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죠. 그녀가 지금까지 맨해튼에서 넉넉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작곡가인 알렉산더 홀레니우스의 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뻔뻔스럽게
결혼식 만찬에 들이닥친 홀레니우스는 노골적인 질투심을 표시하며 부부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갈등은 홀레니우스가 노박에게 그의 신작 첼로 콘체르토의
독주자로 노박을 선택하면서 더 지독해지지요.
어빙 래퍼의 [디셉션]에는 래퍼의 전작인 [가자, 항해자여]의 세 주연배우가 그대로
나옵니다. 하지만 화기애애했던 전작과는 달리 영화 내내 부정적인 감정만 흐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멜로드라마이긴 하지만 영화의 끝은 필름 느와르에 닿아있지요.
원작이 있습니다. 루이 베르누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무슈 랑베르티에]라는 희곡이랍니다.
세 번째 각색물이라고 해요. 27년작인데, 시대배경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이니 다른 부분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다소 믿기 어렵습니다. 일단 현대 관객들은 크리스틴이 남편에게
홀레니우스와의 관계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감추려 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미 노박은 둘 사이가 어떤지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를 막으려고
들이댄 거짓말은 어설프기 짝이 없거든요.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온 망명객들은 별별 일들을 다 겪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다들 이해하고 살면
되는 거죠. 암만 생각해도 크리스틴처럼 극단적인 길을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비하면 오히려 [토스카]가 더 그럴싸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날 때까지 강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일단 캐릭터의
이상함과 별도로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가 좋아요. 완벽하게 조율된 40년대식
과장된 멜로드라마 연기라고 할 수 있죠. 어빙 래퍼의 지도 아래 노련한 워너
브라더스의 스태프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클로드 레인즈가
연기한 홀레니우스가 걸작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뿐만 아니라 가장 재미있고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하죠. 이 자기 에고에
중독된 예술가가 리허설이나 저녁식사 때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크리스틴의
공포증이 거의 이해가 될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진짜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음악입니다. 홀레니우스가 존경받은 현대작곡가로 나오니까 이 영화에 나오는
첼로 콘체르토도 당연히 그 무게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코른골트는 정말 그
무게에 맞는 첼로 콘체르토를 만들어냈어요.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중심으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훌륭한 영화음악을 썼죠. 현대음악 작곡가인 캐릭터가
진짜로 의미있는 현대음악을 작곡해 영화 내에서 발표했는데, 그게 음악으로도
설득력 있고, 영화음악으로도 제 기능을 하는 희귀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겁니다.
(13/08/19)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폴 헨리드를 대신 해 첼로 독주를 한 엘리노어 알러는 할리우드
현악사중주단의 첼리스트입니다.
감독: Irving Rapper, 배우: Bette Davis, Paul Henreid, Claude Rains, John Abbott, Benson Fong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8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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