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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게 정말 오랜만입니다. 왜 이게 말이 되고 이렇게 감정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는 느낌말이죠.

[영웅본색]을 볼 때와 좀 비슷합니다.

이야기는 뻔하고 음악은 과잉되었습니다. 시종일관 영화에 뭐가 철철 흘러넘칩니다. 스필버그처럼 유려한 흐름으로 넘기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는 종종 디테일들을 생략하거나 뭉갭니다. 그런데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영화가 작정하고 힘을 준 부분들에서는 피할 도리가 없이 감동하고 맙니다. 

이것 자체도 정확한 박자와 기교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영화를 보면서 조지 밀러의 특출난 힘을 느꼈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관객들을 우화적인 세계로 끌고가버립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화 역시도 새로운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는 작업입니다. 

이 부분에서 조지 밀러는 정교하거나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며 손짓하지 않습니다.

1차원적인 욕망들이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걸어다니는, 알레고리 같은 느낌으로 기이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의 매드맥스 시리즈를 보면 우리가 흔히 "원주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선주민들의 원초적 느낌이 있습니다.

서구 문명의 침략과 폭력적 개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지역에서 자연친화적으로 사는 사람들 말이죠.

그런데 그의 영화 속 선주민들이 기대는 건 쇳덩어리들입니다. 총, 바이크, 자동차, 쇠사슬 등이죠. 

인류 문명에서 화석연료의 문명만 남았을 때, 인간들은 어떤 원숭이가 될 것인가? 같은 실험같습니다.  

이 효과를 시리즈 전체로 보여주려는 게 혹성탈출일텐데요.

적어도 혹성탈출 시리즈는 분장이나 컴퓨터 그래픽 같은 특수효과에 많이 의존합니다. 

일단 원숭이가 말을 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걸 믿게 되죠.

그런데 조지 밀러는 매드 맥스 시리즈를 늙고, 더럽고, 추한 인간들이 어눌하게 말하는 것만으로 바로 납득시킵니다. 

이를테면 저건 내꺼다!! 저건 내꺼다!! 이런 식으로 어떤 캐릭터들이 두번씩 말합니다. 

단순히 멍청한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캐릭터로 이 세상은 유창한 언어나 대화가 작동하는 걸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는 걸 바로 체감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퓨리오사를 다시 보게 됩니다.

캐릭터들이 1차원적 욕망의 살가죽 조형물이라면 퓨리오사는 단어 그대로 '분노'의 인간적 형상입니다.

(이모탄 조는 immortal과 immoral을 추구하는 인간이겠죠 디멘투스는 demented 일 것이고...)

분노라는 이름의 인간은 어떻게 빚어졌으며 그 안에 어떤 분노가 가득차게 되었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제작상으로는 전작이고 영화의 시간대로는 그 후편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우리는 퓨리오사의 선택과 행위를 봅니다.

이번 작품은 퓨리오사가 왜 그런 선택과 행위를 하는지 근본적인 캐릭터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이미 나와있는 정답으로 가기 위해 길을 끼워맞춘 느낌이 좀 들긴 합니다.

이것은 모든 프리퀄의 재미이면서도 한계일 것입니다.

이미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이 캐릭터를 만들어놓았기에 안야 테일러 조이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퓨리오사라는 한명의 캐릭터 안에서 이미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이 남아있음에도 안야 테일러 조이의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그의 부릅뜬 눈과 일그러진 표정들은 샤를리즈 테론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위태로움이 있습니다.


전작은 황무지의 세계에서 답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끝없는 질주가 가능했죠. 일단 어디로든 달려나가며 때로는 급선회를 해서 예상 외의 지점으로 달려나가야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에는 분명한 종착지가 있습니다. 

퓨리오사는 왜 시타델에서 이모탄 조의 부인들을 데리고 탈출했는지 거기까지의 성장과 여정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엇나가도 결국은 그 지점에 도착을 해야하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차분한 후반부는 영화의 주제의식면에서도 들어맞습니다.

무작정 밀고 나갈 순 없습니다. 디멘터스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무한정의 질주에 대한 또 다른 답을 갖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분노가 어떻게 폭발하는지가 아니라, 분노가 어떻게 채워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퓨리오사의 이름은, 특정 대상이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강하게 결부된 알레고리일 것입니다.

디멘투스나 이모탄 조가 아무리 분노를 한다해도 그건 자신들의 이름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작상으로 결국 후속작이기에 조금 익숙하게 보인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액션은 아마 올해 개봉할 모든 액션 영화를 두고서도 베스트 3위 안에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액션 명작으로는 [몽키맨]을 기대하는 중입니다)

오히려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는 지점은 이 영화가 구체적으로 좁혀놓은 세계관입니다.

이 영화가 목소리를 내는 정치적 주체와 세계가 뚜렷해진 만큼 전작의 추상성은 조금 흩어졌습니다. 

도대체 이 캐릭터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만큼 저마다의 대의와 에너지를 품고 질주하는 그 에너지 자체가 영화에 넘쳤습니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게 한 캐릭터에게 다 귀속됩니다. 그의 사연은 보다 개인적이고 또 분명한 주체를 표방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큰 결점은 아닙니다. 다만 전작이 워낙 해석의 여지가 많은 풍요로운 작품이기에 살짝 아쉬울 뿐이죠.


길게 써놨지만 그냥 강추합니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못보면 정말 후회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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