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갑은 소설가입니다. 한 출판사가 신인 발굴 차원에서 짧은 수필 공모전을 했습니다. 출판사는 갑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했고(사례금 있음), 예심을 통해 추려낸 50여개의 출품작을 갑에게 심사 의뢰했습니다. 심사표와 함께 50개 작품 파일을 압축해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갑이 받아서 심사를 하려고 보니, 아무래도 컴퓨터로 파일 하나 하나 열어보면서 심사하려니 좀 불편합니다. 아까 봤던 작품을 다시 한 번 보려니 어떤 파일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아무래도 출력을 해놓고 봐야 심사가 쉬울 것 같습니다. 출력하면 100장 정도 나오겠네요. 집에 프린터는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 갑이라면 어떻게 하시나요?

 

1. 그냥 시키는대로 한다. 불편해도 일일히 클릭해서 열어보고 심사.

2. 봉사도 아니고 사례금도 받는데 종이값 이거 얼마 한다고. 내 돈으로 프린트 한다.

3. 출판사 담당자에게 전화해 출력해 달라고 부탁한다.

4. 출판사 담당자에게 "사람을 뭘로 보고 이걸 출력도 안해오고 파일만 달랑 날려! 내가 뽑아서 보라는 거야? 당장 뽑아와!!" 하며 열낸다.

 

전 보통 1~2에서 움직입니다만...3, 심지어 4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저런 태도와 자신감은 누가 가르친 걸까, 아니면 스스로 몸에 익힌 걸까 궁금해집니다. 점잖게 부탁한다고 해도(3) 결국 내가 뻔히 할 수 있는 일인데 남한테 해오라고 시키는 거잖아요.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내가 클릭 클릭 해서 이거 뽑고 있을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일 것 같은데요.

 

가끔 집에 일이 있어 사람을 쓸 일이 생기면 주변에서들 그러더군요. "아서라. 사람 쓰는 것도 써본 사람이 쓰는 거지, 우리처럼 산 사람들은 누가 와서 내 일 하고 있으면 황송해서 못견딘다. 맘편하게 부려먹지도 못해."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일을 턱턱 잘 시키는 사람은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3, 특히 4로 행동하는 게 부럽진 않습니다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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