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니던 시절의 얘기들

2010.11.01 19:45

메피스토 조회 수:1042

* 중학교 선생님 중 어떤분은 중2가 가장 골칫덩어리라고 했습니다. 중1은 초딩(당시엔 국딩)을 막벗어난 애들이라 어리버리하고, 중3들은 연합고사준비하느라 정신없다..이거였죠. 그 이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자퇴생이나 소위 '일년 꿇은 복학생(?!?'들이 등장하는 학년도 중2였습니다.

 

 

* 우리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를 쳤습니다. 수업시간 떠들기나 졸기, 지각, 시험성적의 하락과 같은 가벼운 것에서 시작해서 담배나 수업 및 야자시간 땡땡이도 간혹 있었고 본드, 지나가는 애들 돈뜯기, 절도 같은 범죄에 해당하는 것들도 있었죠. 무엇이 되었건 대부분 걸리면 많이 맞았습니다.

 

근데 말이죠. 돌이켜보건데 체벌은,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쓸모가 없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체벌은 대단히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간혹 중고딩시절자체를 타자화하거나, 그때 생각하는 가치체계를 '어리다'라는 수식어를 붙여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어떤 행동을 하는 동기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이나 가치체계들은 20살 이후 부터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을 한 후 갑자기 습득한게 아니라 이 시절부터 몸과 머리로 익혀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정도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 역시 아니죠.   

 

이러한 전제아래, 체벌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대단히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물론 매를 맞는 것은 무서웠습니다. 싫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무섭다고해도 그게 생명을 위협하는건 아닙니다. 선생이 학생을 폭력으로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선생들도 알고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고, 일부 영악한 아이들은 체벌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교사에게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그 간격을 노리기도 했습니다(여담이지만 중학교시절 '이쑤시개'라는 애칭의 각목을 애용하던 선생님은 "교사에게 학생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줬으면 좋겠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수업시간 중 하기도 했습니다).

 

체벌이 싫다고해봐야 중고딩 청소년시절에 하고싶고 놀고싶은 마음을 꺾을 정도의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체벌은 그냥 가볍건 무겁건 사고한번치고 지불하는 가격이었죠. 그것도 상당히 저렴한. 물론 단기적인 효과는 끝내줬습니다. 고통이니까요. 하지만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맞았다고 해서 상급(고등학교or대학교)학교로 진학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맞을 뿐이죠. 흔히 얘기하는 "에라 몸으로 때우고 말지"라는 생각은 군대에서 정립되는게 아닙니다. 이 시절 정립되는거죠.

 

사고치는 애들(소위 문제아들)은 체벌에 상관없이 항상 사고를 칩니다. 열대를 맞건 스무대를 맞건. 그리고 점점 더 큰 사고를 치며 학생과 선생 모두에게 민폐아닌 민폐를 끼치다가 결국은 학교에서 짤리죠.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중학교때 담배피우다 걸리고 맞은 애들은 고등학교가서, 대학교 가서도 담배를 피우더군요. 맞아서 담배를 끊는 아이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 결국 이런 얘기들은 중고딩시절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다 걸려서 니스칠한 각목에 두들겨맞은 추억을 반추할 구실에 불과합니다. 바른 인간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체벌이라는 교육의 도구가 사용되고 남는 것은 도구의 목적인 바른 인간이 아니라 그냥 맞은 기억 뿐입니다. 전 교사가 바른 인간을 만들기 위해 체벌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구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교사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테니까요. 다만, '편의'를 위해 체벌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뿐이죠.

 

 

* 좀 다른 얘긴데, 위에서 "에라 몸으로 때우고 말지"라는 얘길했죠. 좀 거창하게 얘기해볼께요. 전 어떤 규칙이나 룰을 지키고 그것들을 위반할 경우 명문화된 적절한 처벌을 받거나 규제를 당하는 것이 아닌, 뭔가 합리적이지 않거나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통제를 받은 뒤 넘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좋은게 좋은거다 식의 사고방식의 일부분이 여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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