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무 피곤해서 곰가죽같은 껍데기를 장옷처럼 쓰고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즈이 방을 들여다보시던

디자인팀 차장님이 '어머 폴씨, 참 캐릭터 특이하다' 하시는거예요(이미 효소잘마시는 애로 암암리에 유명).

제 맞은편 실장님이 옳다구나, 하고 '토토로에 나오는 먼지인형 같지 않아요?' 맞장구를 치십니다.

피곤하니 대꾸할 기력이 없어 그냥 '또또로~또또로~'하고 토토로 주제가를 흥얼거렸어요.

옆 선배가 '에이그 오덕아;;;' 이럽니다. 그리곤

 

-근데 폴아 넌 대체 왜 그 곰가죽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는거니-_-

-이걸 뒤집어쓰고 한마리 곰이 되어 겨울잠에 들고 싶은 마음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어요.

-....넌 대체 정체가 뭐냐;;;;;;;;;;

 

대각선 디자이너 누나는 '그거 같애요,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아 뭐지 이름 기억 안나 금 달라고 하는 애'

 

-가오나시요.

-어, 그건가? 잘 모르겠어요

-'아아...아...(가오나시 흉내) 그리고 걘, 금을 달라그러는 게 아니라 금을 주죠.

-(까르르르르 빵)맞다맞다

-옆 선배: ...역시 오덕이야 넌

 

...........................토토로니 센과 치히로니, 인용은 그대들이 먼저 해놓구서-_-;;;;;;;;;;;;;;;;;;;; 왜 나만 오덕으로

매도당하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오덕은 특이함의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다는 결론. 그리고 전 과거에

쁘띠만화오덕이었으니, 역시 약간 티가 나긴 나나봐요.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일코한 세월이

길어도 뭔가, 의성어를 소리내어 말한다거나(전 일코한지 오래되어 이제 에엣, 엣! 아라? 이런거 안 쓰지만...)

어말어미나 간간히 섞어쓰는 단어들이 좀...비범한 게 있긴 해요, 티 나는 건 인정. 글타고 그게 이상할 것 까지야!

 

제가 초중고딩 시절을 보냈던 90년대~2000년 초까지만 해도 대놓고 오덕인 게 별로 흠이 되지 않는 시절이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만화 자체를 전반적으로 많이 봤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아니메도

희귀 아이템이었고. 불법비디오로 보던 에반게리온이나 X, 바람의 검심 이런 것들이 그렇게 간지나보였드랬죠.

그 외에도, 지금은 다 음지에 숨어들거나 손가락질;; 받는 몇몇 행태들도 그땐 일상에 공존하는 하나의 특징일

뿐이었어요.

 

1. 코믹( ..)에 줄 서서 건담윙 동인지를 사갖고 학교 와서 보면 같은 반 애들도 그냥 그림 이쁘다며 돌려보고(faid라고

건담윙 동인지로 유명해져서 한국판 뉴타입 초창기 일러스트로 활동했던 지금은 뭐하는지 모르는.........),

 

2. 종이에 그림 그려서 코팅;;;후 펀칭뚫어서 고리 연결해 만든 열쇠고리를 막 몇 개씩 잔스포츠 가방 뒤에 매달고

다녀도 덕이라며 놀리지 않았고. 아, 폴은 그러지 아니하였어요, 그때의 심미안으로도 왠지 그건 촌스러워 보여서.

그려서 판 적은 있지만

 

3. 선배 언니가 투하트 코스프레 할거라며 재봉질해 만든 교복을 보였을 땐 '우, 우와 이언니 하얗고 귀엽고 날씬하니까

짱 어울리겠다 불헙삼(그당시 폴은 쁘띠 안여돼ㅋㅋㅋㅋㅋㅋ)'하는 기분.

 

 

근데 제가 대학 갈 무렵이 되니 시절도 많이 바뀌었을 뿐더러 저 자신도 '만화 좋아하는 애' 이미지를 꺼리게 되더군요.

(뭐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매니악한 수준도 아닌...ㅋ..ㅋㅋ....) 일단 주변에 코스프레 하는 만화동아리 과 선배를

보다보니 거부감이 일었어요. 휴일에 로리타 코스프레하고 종합강의실 돌며 사진찍고 그 차림으로 소렌토 가서 밥먹었단

얘긴 주변 사람들과 두고두고 농담거리 소재가 되기도 했고. 신입생 중에 샤기컷을 하고 십자가 귀걸이, 해골 피어싱,

무릎부위가 연결된 펑크풍 체크바지에 통굽신발(네, NANA풍)을 신은 여자애가 있길래 '오덕이다 오덕 수군수군' 했다가

결국 걔가 만화 동아리에 들어가니 '여억시나아' 했고, 그 담에 걔가 코스프레 한다니 '여어어억시나아....' 했고. 2~3년뒤

휴학하고 학교에 돌아가니 몰라보게 일반인 처자가 되어 눈에도 안 띄게 된 걸 보고 '오덕의 사회화를 거쳤군' 이라고

수군수군하기도 했고. 사실 이런 얘기가 농담거리가 되는건, 전직오덕이나 쁘띠오덕들 사이에서 뿐입니다ㅋㅋㅋㅋ

 

 

 

암튼, 저와 제 주변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만화 좋아하는 애'의 이미지는 옛날에 비해 묘하게 과장되고, 희화화되어 있어요.

다 어느정도는 옛날의 제 모습이고, 그래서 '헐 나는 지금은 완전 아닌데과연 쟤들은 나이먹어서 아직도...'이런 느낌에 더

깔깔대고 웃게 되었던 건지도. 그러나 정작 사회나가니 나는 오덕 소리를 듣는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는군요.

남들보다 관련 고유명사 좀 더 알고, 관련 상식 좀 더 풍부할 뿐( ..) 뭐 그걸로 오덕이라 그러면 그러려니, 해야죠.

내가 좀 튀나보다 하믄서.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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