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0223.html?_fr=mt5

 

강용석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많은 분들이 확 빨리 대법원 확정판결이나 나와라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대와는 다른 판결이 나왔네요.

 

1.

 

간단히 말해 강용석이 적용받은 죄목은 두 가지입니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된다고 말해서 여자 아나운서들을 집단으로 모욕한 죄, 그리고 그걸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가 뻥을 친거라며 적반하장으로 고소했다가 역관광당한 무고죄. 1심과 2심은 둘 다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만, 오늘 대법원은 무고죄는 유죄라고 하면서도 모욕죄는 무죄로 판단해 파기환송했습니다.

 

모욕죄가 무죄인 이유는 그 발언에 피해자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나운서 ㅇㅇㅇ는 다 줘서 성공했다 뭐 이렇게 말했다면 제대로 걸렸겠지만, 실제 강용석의 발언 가지고는 사람들이 특정 아나운서를 떠올리며 다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딱히 강용석을 봐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집단모욕죄에 적용되는 아주 일반적인 사실이니까요. ㅇㅇ도 사람들은 다 사기꾼! 이라고 말한 사람을 특정 ㅇㅇ도 사람이 모욕죄로 고소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ㅇㅇ도 사람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실제 특정 인물까지 내려가면 그런 부정적 이미지는 충분히 희석되어 버린다는 건데... 가끔은 법원이 너무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중을 가정하고 판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ㅇㅇ도 사람은 사기꾼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믿고 자기가 만나는 모든 ㅇㅇ도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출신지역은 운명적으로 정해지는 거지 사회 시스템에 의하지 않으니까요), 선발과 육성 프로세스를 거치는 아나운서라는 특정 직업에서 탑 레벨에 오르는 사람은 사실 대단히 소수이기 때문에 피해자 특정이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시간이 흐르고 강용석이 방송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줬을지 궁금하네요.

 

2.

 

이 발언에 대한 강용석의 대응은 좀 오락가락 합니다. 처음엔 그런 적 없다고 잡아땠고, 나중에 쓴 책을 보니 술도 먹었고 해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증인들이 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하긴 한 모양이다, 뭐 미안하다, 이런 정도로 퉁친 것 같고... 최근에 종편에서 하는 프로를 보니 정미홍이었나.. 어떤 아나운서의 자서전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그걸 근거로 발언했었다, 미안하다(이 이야기 할 때도 옆에 아나운서 김성경이 있었군요) 이렇게 말했는데 그 발언을 맨정신에 제대로 했었다는 걸 인정하는 취지인지, 아니면 여전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도 그래서 하게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

 

이 사람의 대응에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 건 이것 마저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썼다는 겁니다. 방송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스타 특강쇼>에 나와 이 이야기를 했는데, 뭐 미안하다 이런 것보다 자기가 얼마나 이 사건에서 효과적으로 법률적인 대응을 했는지에 더 집중하더군요. 원래 법리상 유죄가 될 수가 없는 건데 여론에 떠밀려 1심 유죄가 나왔고, 항소심까지 유죄가 나와서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자기 논리가 옳다는 걸 중명하기 위해 개그맨 최효종을 개그맨에 대한 집단모욕죄로 고소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 결과 욕도 먹었지만 결국 자기에게 적용된 혐의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건지 증명이 되면서 민사재판에서는 이겼다... 뭐 이런 식으로 본인의 전략적인 대처 능력을 그 와중에 홍보... 이 사람을 보고 있으면 김구라가 공중파에 데뷔하며 한 과거 악행에 대한 사과가 매우 진실되게 느껴집니다. 정말로. 아나운서 발언에 대한 강용석의 인식은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인식과 비슷할지도..

 

4.

 

강용석 이 사람에게 어떤 처벌이 적절할지는 솔직히 좀 아리까리 합니다. 분명 저질스런 발언을 하긴 했지만 장소와 대화상대가 부적절했다는 점을 빼고 내용만 보면 솔직히 남자들끼리 있는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 수준? 아니 카톡으로 마구 유통되는 찌라시에 비해 과하다고 하기도 힘들고... 물론 그 정도 때와 장소도 못가리는 능력이라면 정치인을 해먹기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만약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상관없다며 찍어준다면 그걸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인간이 방송에 나오는 게 더 문제라는 의견도 있는데 각종 혐의로 형사 유죄판결을 받은 연예인도 자숙을 거쳐 방송 잘들 하고 있으니 그것도 논리가 약하고... 방송인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대단한 도덕성 요구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현재로서는 일단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요.

 

방송 하는거 보면 범용 인재는 아니고... 분야에 대단히 한정되긴 하겠지만 그 특정 분야에서는 적어도 몇 년은 더 해먹겠다 싶던데... 오늘 판결 나왔으니 이번 주는 힘들거고, 다음주에 본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이걸 어떻게 다룰지... 기대가 된다기 보단 무섭네요. 3.에서 한 걸 보면 무고 쪽은 쏙 빼고 본인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만 나갈 게 뻔해 보여서...

 

5.

 

보통 형사처벌이 한 인간에 대한 처벌의 끝판왕인 것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사회적인 처벌이 더 무서운 처벌입니다. 빵에 안가도 사회에서 아무도 자기를 제대로 대우 안해주면 얼마나 괴롭겠어요. 본인은 정치에 꿈이 있는데 선거에서 아무도 안찍어주고, 심지어 본인이 속한 당 전체가 욕먹고, 방송인이 되고 싶은데 자기가 나오는 방송 사람들이 안봐주고. 이런게 진짜 무섭죠. 강용석이 이런 처벌을 받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긴 현재까지의 추세를 보면 우리 사회는 적어도 방송인 강용석에게는 그 정도의 처벌을 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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