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센덴스 Transcendence (2014)

2014.05.25 15:38

DJUNA 조회 수:10506


스파이크 존스의 [그녀]가 로맨스 영화의 틀 안에서 은밀하게 기술적 특이점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면, 월리 피스터의 [트랜센덴스]는 이 주제를 대놓고 관객들 전면에 꺼내 흔듭니다. 이 영화의 제목 '트랜센덴스' 자체가 특이점을 의미해요. 아마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특이점보다는 트랜센덴스가 더 그럴싸한 영화 제목이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윌 캐스터는 반 기술주의자들의 테러를 받고 시한부 환자가 됩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육체가 죽기 전에 그의 두뇌 안에 있는 정신은 컴퓨터로 옮기는 것이죠. 윌의 아내 에블린의 도움으로 실험은 성공하고 인터넷에 연결되어 인간두뇌의 한계를 극복한 윌은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들을 해냅니다.

재미있을 수도 있는 영화죠. 각본이 충분히 창의적이고 용감하다면. 하지만 [트랜센던스]의 각본은 어느 쪽도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앞에서 말한 기본 설정인데, 사실 이것도 그리 신선한 게 아니잖아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육체를 극복한 인간정신의 이야기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윌 캐스터가 이 영화에서 겪는 구체적인 모험도 미래학에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익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연히 이 익숙함을 넘어서기 위해 소재를 극한으로 밀고가는 도전정신이 필요한데 이 영화는 그게 없습니다. 흔한 장르적 공포증이 발목을 잡는 거죠.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간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특이점을 넘어서려하는데, 도입부만 봐도 그건 이미 실패로 끝났거든요. 이에 대한 고찰도 테러리스트들의 반기술주의와 캐스터 부부의 기술신봉 사이를 널뛰듯 오가느라 막연한 관념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요.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가 없습니다. 캐스터 부부의 친구 맥스 워터스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을 지나면 영화의 스토리는 그냥 생기없는 사건 나열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튜링 실험으로서의 로맨스'도 존스가 [그녀]에서 훨씬 입체적으로 다루었고요.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거의 몽유병자 수준입니다. 이러니 쟁쟁한 배우들이 잔뜩 나와도 생기가 없죠. 그나마 고민의 양이 많은 에블린 역의 레베카 홀이 그럭저럭 연기할 거리를 챙기지만 그것도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에요.

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특이점을 제목으로 삼고 특이점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정말로 그걸 그리라고요. 중간에 겁에 질려 멈추지 말고. 영화에서도 그 정도 상상으로 멈출 정도로 겁이 많다면 도대체 진짜 특이점(그런 게 정말 온다면)은 어떻게 맞을 생각인 겁니까? (14/05/25)

★★

기타등등
월리 피스터는 크리스포터 놀런 영화의 촬영감독 출신입니다. 놀런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감독: Wally Pfister, 출연: Johnny Depp, Rebecca Hall, Paul Bettany, Cillian Murphy, Kate Mara, Cole Hauser, Morgan Freeman, Clifton Collins Jr.

IMDb http://www.imdb.com/title/tt220976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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