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남자 (2014)

2014.06.08 14:56

DJUNA 조회 수:16426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킬러 곤은 [우는 남자]의 제목이 뜨기도 전에 끔찍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조직의 명령으로 타겟을 제거하는 동안 실수로 타겟의 딸인 어린 소녀를 총으로 쏴 죽인 거죠. 죄책감 때문에 술로 떡이 된 그에게 새로운 임무가 떨어지니, 이번엔 그 소녀의 엄마인 모경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임무를 위해 어린 시절 엄마와 떠난 뒤 단 한 번도 돌아가 본 적이 없는 한국을 방문합니다.

물론 정말로 곤이 모경을 죽일 거라고 믿는 관객은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설정은 잘 나가는 스타 배우가 분한 인간병기가 여자 한 명을 보호하거나 구출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위한 밑밥에 불과하죠. 보호의 대상이 어린 소녀에서 이혼 경력이 있는 30대 커리어 우먼으로 옮겨갔을 뿐, 이정범의 전작 [아저씨]와 거의 똑같습니다. [우는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상하지는 않아요.

[우는 남자]. 굉장히 가증스러운 제목입니다. 실수로 어린 여자아이를 죽였으니,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라고 해도 고통스러워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제목으로 쓰는 것은 자기 자랑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어느 순간부터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 죄책감을 멋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건 곤 자신도 그렇습니다. 자기 죄책감을 즐기고 있고 그런 자신이 너무 멋있는 거죠. 최악의 나르시시스트인 겁니다.

영화의 캐릭터 설정은 이를 더 끔찍한 것으로 만들어놓습니다. 많은 관객들은 곤과 모경의 관계나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소녀를 죽였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이번엔 소녀의 엄마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막아야 합니다. 이건 단순명쾌한 행동동기입니다. 이것만 가지고 가도 돼요. 하지만 영화는 멋을 더 부리겠다고 곤의 어린 시절을 장황하게 삽입해서 이것이 그가 모경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허세를 부립니다. 물론 이건 허세일 뿐 그 안에 정말 의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이런 허세는 경제적인 액션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는 자기가 멋있는 것 같아도 위기에 빠진 여자가 있다면 우선순위는 그 여자를 최대한 빨리 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곤이 벌이는 살육의 절반 정도는 그 목적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멋있게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거죠. 심지어 여자를 구출하는 과정 중 자기 속죄까지 하겠다고 벌이는 쇼는 지독하게 이기적입니다. 이건 [아저씨]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그 영화의 주인공을 좋아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죠.

[아저씨]가 홍콩이나 태국의 동아시아 맨손 액션을 흉내내고 있다면 [우는 남자]는 총기를 쓰는 미국 액션물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액션 스타일만 흉내내는 게 아니라 그냥 미국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대사의 상당부분이 영어이고 중반에 나오는 형제 악당들은 콜롬비아에서 왔지요. 그리고 영화는 멋부리고 싶어서 영어를 쓰는 한국영화의 함정에 그대로 빠져버리고 맙니다. 언어가 실용성 대신 허세를 위해 사용되는데, 그 때문에 그게 한없이 촌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물론 설정과도 맞지 않습니다. 장동건은 설정과는 상관없이 영어를 못하고 한국어를 이상하게 잘 하니까요. 사방에 총알이 날아다니는 액션 자체도 한국 배경과 따로 놉니다. 그냥 남의 나라려니 생각하고 타격감만 즐기고 싶어도 악당들이 굳이 무기를 밀수입해서 이렇게 번거롭고 눈에 잘 뜨이는 방법으로 일을 저질러야 할 이유가 설명이 안 되지요. 그냥 뜬금없이 외국 영화를 흉내내는 것처럼만 보이는 것입니다.

장동건의 경력 대부분은 남성적인 나르시시즘에 푹 빠진 캐릭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업계가 그의 다른 기능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우는 남자]에서도 그의 패턴은 반복되는데 이번엔 좀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최소한 그는 이전 영화에서 성실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나쁜 남자'를 연기하느라 그냥 재수가 없어졌어요. 그리고 그는 그 재수없음을 제대로 연기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배우들은 [아저씨] 때와 마찬가지로 각개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캐릭터를 짊어지고 알아서 뛰는 거죠. 의외로 가장 좋은 배우는 모경 역할의 김민희입니다. 아마도 이 캐릭터가 영화가 추구하는 자기도취적 액션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김민희가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배우로 컸기 때문이겠죠. (14/06/08)

★★

기타등등
원래 모경 역은 임수정에게 갔었지만 촬영 직전에 포기했었죠.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희가 그럭저럭 자기 몫을 잘 챙기긴 했지만 그래도 두 배우의 위치는 다르니까요. 특히 전 장동건의 '지나치게 한국어 잘 하는 교포 역할'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었을 걸요.


감독: 이정범, 출연: 장동건, 김민희, 김희원, 김준성, 변요한, Brian Tee, Anthony Dilio, Alexander Wraith, 다른 제목: No Tears For the Dead

IMDb http://www.imdb.com/title/tt36975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7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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