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1 12:02
백두산 장백산 논쟁과 관련해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인하고자 자료들을 좀 찾아 봤습니다. 그 결과 생각 이상으로 많은 ‘장백산’이라는 명칭의 사례들을 찾아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제10권, 세조 1
○ 양성지가 상소하여 여러 조항의 정책을 진달하였다. 그 내용은, 1. 천지신명에게 제사지내는 일, 2. 한성을 상경(上京)으로, 개성(開城)을 중경(中京)으로, 경주(慶州)를 동경(東京)으로, 전주(全州)를 남경(南京)으로, 평양(平壤)을 서경(西京)으로, 함흥(咸興)을 북경(北京)으로 정하는 일, 3. 삼각산(三角山)을 중악(中嶽)으로, 금강산(金剛山)을 동악(東嶽)으로, 구월산(九月山)을 서악(西嶽)으로, 지리산(智異山)을 남악(南嶽)으로, 장백산(長白山)을 북악(北嶽)으로 삼고 그 밖의 악진(岳鎭), 해독(海瀆), 명산(名山), 대천(大川)의 사전(祀典)을 고쳐 정하는 일,
세조대에 장백산을 북악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는 일이 논해지고 있습니다. 전국의 중요한 산들을 꼽아 동악, 서악, 남악, 북악, 중악으로 명명하고 있으므로, 북악에 해당하는 장백산은 백두산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백두산이라 칭하지 않고 장백산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혹자는 이 장백산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산과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 이것은 어떻습니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50권, 함경도 회령도호부(會寧都護府)
백두산(白頭山) 바로 장백산(長白山)이다. 부의 서쪽으로 7, 8일 걸리는 거리에 있다. 산이 모두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2백 리요, 가로는 천 리에 뻗쳐 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리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아야고하(阿也苦河)이다.” 라고 했는데, 아마 속평강(速平江)을 가리킨 듯하다. 다음은 모두 두만강 밖에 사는 야인(野人)의 지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44권, 강원도 강릉대도호부
대관령(大關嶺) : 부 서쪽 45리에 있으며, 이 주(州)의 진산이다. 여진(女眞) 지역인 장백산(長白山)에서 산맥이 구불구불 비틀비틀, 남쪽으로 뻗어내리면서 동해가를 차지한 것이 몇 곳인지 모르나, 이 영(嶺)이 가장 높다. 산허리에 옆으로 뻗은 길이 99구비인데, 서쪽으로 서울과 통하는 큰 길이 있다. 부의 치소에서 50리 거리이며 대령(大嶺)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함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백두산이 곧 장백산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심지어 강릉의 대관령 설명 항목을 보면 백두산이라는 호칭 대신 장백산이라고 단독 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즉, 조선 시대 사람들은 백두산이라는 명칭과 장백산이라는 호칭을 혼용하고 있었고, 장백산이라는 명칭에 어떤 거부감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다음 자료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온보(朱溫堡)로 가는 도중에 장백산(長白山)을 바라보다. 《학봉집》
김성일
우뚝하니 뜬구름 밖 솟아 있어서 / 卓立浮雲外
묏부리가 눈앞 바짝 다가서누나 / 層巒咫尺臨
경계 나눠 변새 보장(保障) 웅대케 했고 / 分疆雄塞障
장벽 되어 오랑캐들 마음 눌렀네 / 設險鎭戎心
옛 둔영에 까마귀들 모여드는데 / 古戍鴉初集
황량한 성엔 날이 흐리려 하네 / 荒城日欲陰
우리 강토 내 일찍이 상상하다가 / 輿圖曾想見
참모습을 내 이번에 다시 찾았네 / 面目此重尋
선조대 인물인 학봉 김성일의 시 제목을 보면 역시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일성록》 정조 11년 정미(1787, 건륭 52), 2월25일(계해)
황제가 내각(內閣)에 명하여 《황청개국방략(皇淸開國方略)》을 편찬해서 왕업을 개창한 전말(顚末)을 거슬러 올라가 서술하도록 하였는데, 권질(卷帙)이 자못 많아서 지금 이미 여러 해가 되었지만 아직도 탈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문자는 보지 못하였지만, 그 제1권은 ‘발상세기(發祥世紀)’라고 하는데, 사막에서 처음 일어나던 때의 일을 개괄하여 적고 있습니다. 그 내용에, ‘장백산(長白山)은 높이가 200여 리이며 1000여 리에 뻗쳐 있다. 산 정상에 있는 연못을 달문(闥門)이라고 하는데, 둘레가 80리이다. 하루는 천녀(天女) 3인이 내려와 못가에서 목욕을 했는데, 맏이는 은고륜(恩古倫), 둘째는 정고륜(正古倫), 막내는 불고륜(佛古倫)이라 하였다. 갑자기 신령한 까치가 붉은 열매를 물어다가 떨어뜨리자 막내가 주워서 삼켰는데, 목욕을 마치고 옷을 정돈하다가 문득 몸이 무거워진 것을 느껴 하늘에 날아오를 수 없었다. 두 언니가 이르기를, 「너는 이미 임신하였으니, 이것은 천명(天命)이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 뒤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하고는 드디어 솟구쳐 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불고륜은 바위 굴 속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살다가 달수가 차서 산달이 되자 과연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귀가 크고 이마가 넓었다. 겨우 10살이 지났는데 보통 사람들과 달리 장대(壯大)하였다. 천녀(天女)가 작은 배 한 척을 얻어 모자(母子)가 함께 타고 물을 따라 가다가 삼성계(三姓界) 물가에 이르자 아이를 언덕에 두고 이르기를, 「너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고, 너의 이름은 포고리옹순(布庫哩雍順)이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 표연히 날아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 삼성(三姓)에서는 누구를 우두머리로 세울지를 다투면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연유를 물어보고 서로 전하기를 신(神)이라고 하면서 삼성의 우두머리로 맞아들였으니, 이 사람이 청(淸) 나라 사람들의 시조(始祖)이며, 조조원 황제(肇祖原皇帝)로 추존(追尊)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이 자랑하는 위대한 기록물 중 하나인 일성록입니다. 여기에서는 청에 갔다 온 사람이 책에서 읽은 청 황실의 기원과 관련한 내용을 정조에게 설명하고 있는데, 역시 장백산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이라고 표현하지만, 청나라 입장에서도 ‘황실의 영산’으로 굉장히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산이 가지고 있는 인문적 콘텐츠를 한국이 독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3권, 정약용
백두산(白頭山)을 유람하러 가는 진택(震澤) 신공 광하(申公光河)를 전송하는 서(기유년(1789)에 지음.)
백두산(白頭山)은 《산해경(山海經)》에 이른바 불함산(不咸山)이고, 지지(地志 지리서)에 이른바 장백산(長白山)이다. 그 산맥이 서쪽으로 선비(鮮卑)에서 일어나서, 동북쪽으로 흑룡강(黑龍江)의 위에 이르고, 그 한 가닥이 남으로 꺾이어 우리나라 경계의 북쪽에 이르러 우뚝하게 일어나서 북진(北鎭)ㆍ여진(女眞)ㆍ오랄(烏喇)의 으뜸이 되었으며, 남쪽으로 말갈(靺鞨)이 되고, 서쪽으로 여연(閭延)ㆍ무창(茂昌)이 되고, 서남쪽으로 발해(渤海)가 되었는데, 그 뿌리가 땅에 서리어 수천 리나 뻗어 있다. 그 위에는 큰 못이 되어 주위가 80리나 된다.
《여유당전서》 〈강계고〉 (정약용)
두만강과 압록강이 모두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發源)하고, 장백산의 남맥(南脈)이 뻗쳐 우리나라가 되었는데, 봉우리가 연하고 산마루가 겹겹이 솟아 경계가 분명치 않으므로 강희(康熙) 만년에 오랄총관(烏喇總管) 목극등(穆克登)이 명을 받들어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니, 드디어 양하(兩河)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정약용의 글들을 보아도 역시 백두산과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혼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암집(燕巖集)》 제7권 별집, 《종북소선(鍾北小選)》
〈풍악당집서(楓嶽堂集序)〉
나는 산에 있어서도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북으로는 장백산(長白山), 남으로는 지리산(智異山), 서로는 구월산(九月山)이 있다.
박지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백두산을 가리키며 그냥 장백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외에도 조선 시대의 각종 서적과 시문에 장백산이 등장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이에 따르면 장백산은 중국 명칭, 백두산은 우리나라 명칭이라고 보는 이분법적 시각조차도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백두산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장백산이라는 호칭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 시각에서 산의 이름이 여러 개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장백산이라는 명칭 또한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했던 소중한 ‘우리의 명칭’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동북공정과 엮는 시각이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지요. 동북공정과 엮고 싶다면 도대체 어떤 목적에서, 어떤 형태로 장백산이라 명칭이 나쁜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냥 되는대로 갖다 붙인다고 논리가 되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논리적 구조물이라도 제시해야 검토라도 할 텐데, 이건 그냥 ‘이건 동북공정이다’, ‘이럴 수가, 한국인이 맞느냐’ 같은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들만 던지고 있으니 답답한 일입니다. 만약 이 바보같은 논란으로 인해 한중 국민간에 감정이 상하거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면 더더욱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고요.
2014.06.21 12:08
2014.06.21 15:17
중국 문헌이 장백산이라고 하는거야 이상할게 없겠죠. 그런데 백두산은 500년 정도고 고려때까지 백두산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있나요? 당장 '고려사'만 찾아봐도 백두산이라는 표현은 고려 태조 부터 쓰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고려사' 전체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2014.06.21 22:56
고려사는 조선 단종 때 간행된 사서입니다. 고려사 태조편에 나왔다고 해서 고려 태조 때 쓰이던 표현은 아니죠. 백두산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최초의 기록은 고려 후기에 쓰인 삼국유사고요.
그 이전에는 한중 공히 태백산, 삼신산 등으로 불렀고, 장백산이라는 호칭은 발해 때부터 만주족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왔으며, 백두산이라는 호칭은 고려 때 처음 생겼다는 게 학계 정설입니다. 우리는 태백산, 장백산, 백두산이라는 호칭을 혼용했지만, 중국 쪽은 백두산이라 부를 이유가 없었던 것뿐이지 다른 호칭은 다 썼습니다.
우리가 백두산만 쓰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때 지명이 일원화되면서부터이고, 중국은 만주족 정권인 청에서 지금의 중국정부로 넘어가면서 장백산으로 굳어진 것뿐이죠.
언제부터 남한 사람들이 장백산이란 호칭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막연히 대종교, 증산도, 환단고기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되네요. 동북공정 이전에 역덕들끼리 키배가 붙으면 '白頭는 벼슬 못 한 선비라는 뜻이라 비하적 표현이므로 장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2014.06.21 13:15
믿고보는 칸막이님글이고
또 전지현,김수현이 욕 들을 일은 아니라 보지만
그래도 될 수 있으면 CF 안 찍었으면 좋겠어요.
(류승룡CF를 패러디해서) 중국이 어떤 민족입니까.
2014.06.21 16:46
문제 삼을 것은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건은 너무 잘못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국인들은 이런 터무니 없는 일에도 트집을 잡는다는 빌미를 주면 나중에 정말 잘못된 것을 문제 삼았을 때에도 말발이 먹히지 않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2014.06.21 14:45
저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의 사용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보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문제를 살피기 위해 조선시대 사료를 뒤져보는 것은 근거가 좀 미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욱이 조선시대 문헌에서 지명 등의 표기는 중국의 선례를 따르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보다는 근대적 국가 개념과 민족주의 개념이 형성된 개화기 이후를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국편에서 백두산과 장백산을 검색어로 넣고 무작위로 돌려보면 신문잡지 자료가 백두산은 704건, 장백산은 133건이 뜹니다. 장백산에 대해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동아일보를 살짝 훑어봤는데요. 지나인은 장백산이라 부른다고 하여 중국에서 부르는 백두산의 명칭이라고 한 기사, 백두산은 백산, 장백산이라고도 한다고 하여 단순 이명이라고 보는 기사도 있습니다만, 백두산이라고 써도 될 자리에 장백산이라고 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결국 백두산이 더 보편적으로 쓰이긴 했지만, 장백산도 그다지 거부감없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죠. 이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수립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언제부터 장백산이라는 명칭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던 것인가. 물론 기사 좀 훑어보는 것으로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경향신문 1972년 2월 21일자 고지도에 관한 기사에서 장백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던 것을 백두산으로 정정했다고 하여 장백산이란 표기를 그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점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신문사가 경향인 것은 좀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뭐 대략 살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재미난 결과들도 나올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지금 일이 바쁜 관계로.
2014.06.21 16:36
해삼너구리 / 조선 시대 사람들의 '백두산', '장백산' 사용례와 개화기 이후의 사용례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우리쪽에서는 일반적으로 백두산, 중국쪽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른다는 전제 위에, 한편 우리쪽에서는 '장백산'을 백두산의 이칭 내지 별칭으로 흔히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개의 이칭이나 별칭 사용이 그렇듯이 아무래도 교양인들 사이에서는 백두산이라는 이름보다 장백산이라는 이칭 내지 별칭을 더 운치 있고 품위 있는 표현이라 여겼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검색하다 보니 이광수가 '장백산인'이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했네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북한에서 불리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에도 장백산이 나오네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 력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 /"
이를 통해 보면 남한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장백산이라는 명칭의 사용이 사라져버린 반면, 북한에서는 조선 시대나 개화기 때와 마찬가지로 백두산의 이칭으로서 장백산이라는 명칭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건 북한 출신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확실하겠습니다만.
2014.06.21 17:53
2014.06.21 18:12
늘상 하는 얘기지만 칸막이님 존경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세계적으로 "한국인은 이런 터무니없는 일로 빌미를 잡는다는" 인식이 생길대로 생겨서 "나중에 진정으로 잘못된 일을 (저같은 학자연하는 인간들이) 지적해도 말발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된 지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한국 사는 특정 분들께 하면 그분들은 또 "원래 중국이나 일본은 양놈들이 좋아하잖느냐" 고 정신승리하고 말아요. 이런 장백산이란 표기가 쓰인 CF 따위로 트집 잡는 분들한테 무슨 자기 자신 나아가서는 자신의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릅니다.
2014.06.21 18:19
2014.06.22 12:16
잘 읽었습니다. '장백산 줄기 줄기 피어린...' 이 가사는 저도 들은 적 있어요. 집안 어른들이 한국 전쟁 때 인민군이 들어와서 가르쳤다고 했죠.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요즘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던 차에 이번에 '국민 정서'란 이름으로 저지르는 터무니 없는 린치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이래 놓으면 정작 분노할 데서 어떻게 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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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헌에는 1000년도 전부터 장백산이라는 이름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백두산은 500년 정도? 고려때까진 백두산이라고 하지도 않았다던데요.
결국 역사를 따져도, 현재 차지하고 있는 넓이를 따져도,
한국은 백두산에 대해서 중국한테 판판이 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