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명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라는 작명은 대단!)

먼저 이 영화는 완전히 성차별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인공 맥머피는 폭행전과자에 강간범이예요. 거기다 반성의 기미라곤 쥐똥만큼도 없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라는 여성에게 처음 본 남성과 잠자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권하는 등 포주의 기미도 보입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 범죄자는 깨어있는 혁명가로 그려집니다.

단순히 선악구분에 대한 철학적인 명제제시를 위한 캐릭터가 아니라 맥머피는 그냥 영웅이지요.

그러니까 '극악무도한 이 전과자도 사연은 있었다' 정도도 아니고

'성폭행좀 하면 어떠냐 그래도 애는 착해'라는 식인거죠.


사실 이 정도까지는 안티히어로물이라는 이름으로 어물쩍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의심은 증폭되어만 갑니다.

이 영화에서 착한 여자는 딱 두명 뿐인데, 그 두명 다 순종적인 창녀들입니다.

그 여자들은 하라면 하고, 오라면 옵니다.

나머지 여성은 남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악당들입니다.

그 중심에는 간호사 래치드가 있지요.

물론 래치드는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극이 이 사람을 그리는 방식은 어쩐지 수상합니다.


래치드는 냉혈인에 원리원칙주의자입니다.

'여성'이면서 애교도 없고 심지어 한번 웃지도 않습니다.

정신병원의 절대권력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래치드는 나쁜것이고 타도할 대상입니다.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강압적으로 복종시키기 때문에?

아니요. 남자들의 '기를 죽이기'때문이죠.


반면 이 영화에서 백인 남성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입니다.

알고보면 해맑고 순수하고 다정다감한 영혼들이예요.

단지 나쁜 래치드가 그들의 남성성을 거세해 맥머피처럼 남자다운 용기와 판단력을 잃어버린 상태일뿐이죠!


이 영화에도 나쁜 남성들이 나오긴합니다.

바로 래치드 밑에서 수족으로 일하는 '흑인' 남성들이죠.

그들은 폭력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거나 아둔하며 여성 권력자에게 벌벌 기는 한심한 족속들입니다.

'인디언' 브롬덴은 어떤가요?

이 사람은 나쁜사람이 아니더라도, '백인' 맥머피가 계몽하고 구원해줘야할 대상으로 그려질 뿐입니다.

성차별뿐만아니라 인종차별까지 고대로 녹아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이 영화가 훌륭한 부분이 완전히 없느냐, 그건 또 어려운 문제입니다.

순종적 인간 양산을 위해 권력이 어떤 작동방식으로 은밀하게 우리 내면을 잠식하는지에 대한 고찰이나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 광인과 정상인에 대한 진정한 정의 등등

뭐 아무래도 좋은 부분도 있긴 있었죠. (특히 잭니콜슨)

그래도 제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여전히 여성혐오에 대한 웅장한 서사시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래치드로 상징되는 '권력'에 대한 메타포는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여성권력'에 대한 상징처럼 보이기때문입니다.

래치드 캐릭터는 권력에 대한 '순수한' 메타포가 절대 아닙니다.

그랬다면 래치드의 상관인 '남성' 원장을 더 높은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정 많고 좋은 사람으로 그렸으면 안되지요.

같은 권력이라도 남성권력은 착하고 여성권력은 악한 것은 전혀 순수한 권력의 메타포로서 기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도 맞지 않고요.


더욱이, 작품에서 인물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마미즘이 등장합니다.

이 남자가 이렇게 잘못된건 사실 악독한 엄마탓이지! 하는거죠.

거기다 억압적인 그 엄마의 대리자가 영화 내내 악역으로 나오던 간호사 래취드!

즉, 억압자이자 권력이 어머니란 호소가 뜬금없이 영화 클라이막스에 등장하죠.

이런 묘사는 우연일리 없습니다.


당시는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권리를 쟁취해내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했고 그래서 '스윗하트'에 머무르기 보다는 다양한 경로로 사회로 진출했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이러한 '여성권력'에 불편함-심지어는 위협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들을 전처럼 무력화시키고 싶어했지요.

주인공 맥머핀이 주도한 봉기를 통해 아무렇게나 짓이기고 더렵힌 '간호사' 모자는 이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직업'을 통해 경제력을 갖춘 여성권력을 짓밟고 싶어하는 그 뒤틀린 마음말이죠.


그럼 성차별, 인종차별 등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은 명작이 될 수 없을까요?

사실 훌륭한 예술가, 철학자들 중 노골적인 성차별주의자인 사람도 많았습나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있어서는 시대상도 고려해야겠고요.


그래도 저는 이 영화를 차마 명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생각했던 것들이 있는데,

실제로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이 작품의 서브텍스트에 대한 제 인상은 거대사회담론이나 풍자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엔딩장면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밀려오지도 않았고요.

그저 작가를 갈색 가죽의자에 편하게 눕혀놓고 그의 여성관에 대해 정신분석하고 싶더란 말이죠. (농담입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엄청난 성차별 포스를 넘어설만큼 작품이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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