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5 11:30
아침부터 먹던 게 얹힌듯한 느낌이지만.. 그거야 읽지 않아도 되는 글을 읽은 제탓이고 기분 전환을 위해서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달달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한꼭지 소개해 드립니다. 유익하다는 것은.. 연애를 하고 있거나 언젠가 여성 동지들께서 질문할 본질적인 궁극의 퀘스쳔에 직면할 모든 남성들에게 유익하다는 얘깁니다. 다음을 따라 읽고.. 잘 외워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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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야?"라는 질문에 대해 제시하는 하나의 모범 답안이다.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어. 손이 꽁꽁 얼고 귀가 시려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은 연신 귀를 주무르며 종종걸음으로 집에 오고 있었지. 그런데 멀리서 보니 집 근처 쓰레기 봉투 버리는 자리에 고양이가 있더라. 이 추운 날 쟤도 고생이구나 하면서 다가가니 뭔가에 열중했는지 사람이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거야. 자세히 보니 음식물 쓰레기봉투 안에서 닭뼈다귀를 꺼내보겠노라고 아등바등하고 있더라고. 날이 추워서 쓰레기도 얼어붙은데다 매듭이 워낙 바짝 묶여 있어 뜻대로 안되는 눈치였지. 닭뼈다귀에 뭐 먹을게 있다고 저걸 못 꺼내서 안달복달일까 하고 마음이 짠하더라. 그래서 집에 들어가 사기 그릇에 고양이 사료를 담아서 나왔지. 문소리가 나자 황급히 달음박질 쳤던 녀석은 내가 그릇을 놓고 멀찍이 떨어진 사각지대로 들어가니 그제서야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사료를 먹기 시작하더라고. 눈치를 살살 보며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웃긴 건 녀석이 사료를 다 먹고서 다시 쓰레기 봉투로 돌아가서 끝내는 닭뼈다귀를 꺼내더라고. 이미 내가 준 사료로 배가 꽉 찼을텐데도 말이지! 살 한점 안 붙은 닭뼈다귀를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사라지더라니까."
"그래서? 그게 지금 내 질문이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고양이고, 넌 그 닭뼈다귀라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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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은 가을방학, 줄리아하트, 바비힐의 멤버인 정바비의 산문집 "너를 스치는 세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음악도 좋지만.. 글도 참 맛깔나게 잘 쓰네요. 읽다 보면 하루키를 주구장창 읽었다는 생각도 들고 인용문은 명백하게 모방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식 현지화가 맘에 들어서 잠시 낄낄거렸습니다.
다만.. 저 인용문은.. 하루키도 모르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으며 문학적인 메타포에도 관심 없는 상대방에게는 분노를 일으킬수도 있지요.
"그래서 내가 닭뼈다귀란 말이냐? 이 개뼈다귀야!!!!"
2014.08.25 11:31
2014.08.25 11:48
다른 얘기지만 동물들 닭뼈 먹으면 위험한 걸로 아는데. 그런 암시도 들어가 있는 건 아니겠죠?
2014.08.25 14:56
넌 나에게 치명적이야. 너랑 만나다 죽을수도 있을 것 같아!!라구요?? 과연..
2014.08.25 11:54
"니가 고양이잖아!"
저도 (굳이 쓰자면 남자로부터) 저런 말 들어봤어요. 고양이와 같이 살아보니 그것이 (고양이 좋아하는 여자에겐) 얼마나 최고의 칭찬이었는지 더 새록새록 느끼며, 사실 나는 고양이 발바닥도 못따라가는 닝겐이구나 라고 자괴감이 빠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 몸짓, 발짓, 표정, 눈빛, 자태 등등... 후아아...
2014.08.25 14:57
짐승 짐승하지만.. 사람이 짐승을 따라가려면.. 멀었지요. 다만 짐승보다 나은 면도 있겠거니 하고 삽니다. 고양이를 안키워 봐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 기회에..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댓글이네요.
2014.08.25 11:55
뜬금없이 전 그 고양이가 걱정돠네요. 인용구일 뿐인데.....살점만 먹고 뼈는 안먹어야 할텐데...
닭뼈먹다 세상 하직하는 고양이를 두어건 봤어서...조류의 뼈는 안이 비어서 깨물거나 부서지면 끝이 날카로워져 위험하거든요. 개는 턱이 강해 그나마 아작아작 씹어먹어버릴수도 잇지만(그래도 개한테도 위험) 고양인 턱이 약해서 그저 삼키다 일 나죠.
2014.08.25 14:58
전 반대로 개가 위험하고 고양이는 괜찮다고 알고 있어서.. 신선합니다. 이렇게 모르는 정보를 알게 되고..
2014.08.25 15:30
개고 고양이고 닭뼈는 위험해요. 고양이들이 닭 연골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어서 오해가 퍼지는거 같은데 절대 안괜찮습니다.
개가 그나마 낫다는건 선배네 개가 닭뼈를 아그작거리며 먹고 멀쩡했던 기억 때문인데요 나중에 알고 엄청 혼내더라구요 그냥 운좋은 케이스였던듯.
고양이는...... 쬐끄만 고양이가 치킨에 든 작은 뼈 (보통 다리뼈만 안되고 나머진 먹어도 된다시던데 그게 아니더라는)를 먹고 그날 내내 토하고 다음날 저세상 간 케이스를 봤어서구요.그 녀석이 좀 씹을 힘이라도 잇었으면 안죽었을거란 생각을 지금도 해서 그리 썼네요.
여튼 닭뼈 금집니다.
2014.08.25 12:19
2014.08.25 14:59
넌 좀 개같아. 아니 아니.. 내 특별한 애완견...하고 동급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긴 해요.
2014.08.25 14:17
2014.08.25 15:00
그러게요. 저도 고양이는 괜찮은줄 알았건만..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거랄까요. 음.. 동일 종족과의 연애라기 보다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어필하기 위한 비유인 것 같은데.. 비슷한 글을 기분 나쁘지 않게 다시 써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014.08.25 14:20
넌 나의 닭뼈다귀야 라는 말에 감동하는 애인이라니..ㅋㅋㅋ
나중에 혹시 생길지 모를 닭뼈다귀를 위해 갈무리해두겠습니다?
오후까지 얹힌게 안내려가신다면 저녁 한잔술로 달래보심도..... ('도'아니면 '모'가 되겠죠..ㅎㅎ)
2014.08.25 15:01
머. 이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넷상이지만 어떤 사람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건 향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요. 저녁에 술이라.. 땡기지만.. 당분간은 좀 참아볼까도 생각중입니다.
2014.08.25 15:07
만약 아내가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야??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해줄까.. 를 고민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지어 봤습니다.
"내가 결혼전에 북해도 여행간 적이 있는데 말야. 하필이면 그때가 겨울이었어. 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자란 곳이 있다고 사진 찍으러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하얀 벌판에 인적도 없고 그냥 가도 가도 숲이더라고. 자작나무 숲말이야. 다행히 많이 춥지는 않았는데 한참을 가도 인적이 없으니까 슬슬 무서워지고 있던 차에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까 새끼 노루가 저도 놀란 것 처럼 멀뚱하니 가던 길 멈추고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고. 해는 쨍쨍한데 입김은 나오고 인적은 없는데.. 사방 천지에 살아있는 건 나하고 그 새끼노루밖에 없었는데 아.. 그걸 뭐라고 하지? 아주 비현실적인데 묘하게 아름답고 시간이 좀 멈춘듯한 그런 생각이 들지 뭐야. 나중에 돌이켜보니 정작 찍으러 가던 나무는 생각도 안나고 지금도 하얀 눈밭에 새끼 노루만 기억이 나. 어쩌면.. 살면서 마주치는 단 한번의 기적같은 느낌도 들고.."
"그런데??"
"당신은 내가 살면서 만난 두번째 기적이야.."
................................................. 여러분.. 지금 다 손발 퇴장하고 오그리 토그리 하고 계시죠?? ㅎㅎㅎ
그 기운으로 힘찬 오후 보내시길.
2014.08.25 16:21
마르코 폴로는, 머나먼 도시의 낯선 지역에서 길을 잃으면 잃을수록 거기에 도착하기 위해 지나왔던 다른 도시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여정을 다시 훑어보게 되며, 닻을 올렸던 항구, 젊은 시절 친숙했던 장소들, 그리고 집 주위, 그가 어린 시절부터 뛰어놀던 베네치아의 광장을 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대답하는 상상을 했다. (아니 쿠빌라이가 그런 대답을 상상했다.)
- 이탈리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 경험과 실재가 상상과 가정을 압도하는 현실이잖아요. 5분 간 진심어린 이야기를 하는 것과 5분 간 상대의 손을 꼬옥 잡는 것의 무게감을 비교해보는 상상을 해 봅니다. 길을 잃었을 때의 압도감은 알겠는데 이건 상상으론 좀 어렵네요.
2014.08.2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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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바비는 저딴식으로 계피를 꼬신 게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