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06 08:08
최근에 여차저차하여 불륜격정로맨스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어요.
<The English Patient>(1996)와 <The End of the Affair>(1999)
두 영화 모두 레이프 파인즈가 주인공인데 장국영과 양조위에게서나 나올 법한 흔들리는 눈빛, 가슴에 칼 맞은 듯한 표정이 이 파란 눈의 배우에게서 나오는 걸 보니 어쩐지 감격스러웠어요. 오랜만에 본 순수하고 지극한 열정이었죠.
두 영화 모두 원작이 소설이어서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The End of the Affair>에서 레이프 파인즈가 쏟아내는 말들은 로맨틱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들을 보며 오랜만에 피가 끓어올라서 이제까지 봤던 불륜격정로맨스 영화들을 떠올려 봤는데요.
우선 최근의 영화로는 <A Royal Affair>가 있네요. 매즈 미켈슨의 매력이 철철 넘쳐 흘렀던 영화죠.
(<The Hunt>의 매즈 미켈슨보다 훨씬 생기가 (혹은 색기가 ^^)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불륜격정로맨스의 주연을 하려면 의외로 상당한 연기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질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갈망, 그의 배우자에 대한 질투와 죄책감, 제어할 수 없는 충동과 고뇌,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순간의 환희까지,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위대한 작가들이 불륜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아마 불륜이라는 설정이 그것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야기하는 감정의 강도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All Things Fair>(1995)라는 스웨덴 영화는 15세 소년과 학교 여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예요.
소년이 여자에게 매혹되는 순간의 황홀함과 그에게서 뿜어나오는 열정, 소년과 그녀의 남편간의 우호적인 관계, 전쟁이라는 배경 등이 묘하게 어우러져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영화였어요.
15세 소년이 나오는 영화로는 <The Reader>도 있네요. (미혼 남녀지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육체 관계를 맺으면 무조건 불륜!!)
이 영화에도 레이프 파인즈가 나오죠.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였지만 저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더 감명 깊었어요.
여선생님과 15세 소년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로는 <Notes on a Scandal>도 있고요. 이 영화는 격정로맨스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다 보고 난 후 어쩐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베트남 남자와 15세 프랑스 소녀와의 격정로맨스 <The Lover>(1992)도 있고요. 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보다 이 영화가 더 인상 깊었어요.
좀 더 어린 소녀가 나오는 <Lolita>도 있죠. 약간 코믹한 느낌이 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Lolita>(1962)보다 순수격정로맨스인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Lolita>(1997)가 더 기억에 남았어요. 제레미 아이언즈가 어린 소녀에 대한 집착과 불안을 너무 잘 표현해서요.
(영화에서는 육체 관계까지 갔는지 안 갔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를 열심히 읽어봤는데 소설에서는 한술 더 뜨는 걸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도 불륜격정로맨스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자의 딸'인 줄 알았는데 Ryan's daughter였어요. ^^)
이건 무려 노무현 대통령께서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하셨던 영화였죠. (그렇다고 결코 격정의 수위가 낮지는 않아요.)
밤에 잠자는 남편을 집에 놔두고 사랑하는 남자를 보려고 뛰쳐나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소설 <위험한 관계>는 영화로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지만 저는 존 말코비치가 나온 <Dangerous Liaisons>(1988)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뻔한 이야기지만 후반부의 존 말코비치와 미셸 파이퍼의 연기가 이 영화를 가슴 아픈 비극으로 만들지요. 존 말코비치의 예민한 표정과 까칠한 말투(목소리+발음)가 저에게는 참 매력적이었는데... (이분이 일찍 대머리가 되신 건 로맨스 영화계의 비극입니다. ㅠㅠ)
로맨스 장르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우디 앨런의 불륜격정로맨스스릴러 <Match Point>도 참 재미있게 봤고요.
케이트 윈슬렛이 나온 <Little Children>은 정신없이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보고 난 후 어쩐지 허무했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제 기억에 남는 불륜격정로맨스 영화들을 좀 더 세분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가슴에 새기고 계시는 불륜격정로맨스 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
[불륜격정비극로맨스]
The English Patient (1996)
The End of the Affair (1999)
Ryan's Daughter (1970)
A Royal Affair (2012)
Dangerous Liaisons (1988)
[미성년자불륜격정로맨스]
All Things Fair (1995)
Lolita (1997)
The Lover (1992)
The Reader (2008)
Notes on a Scandal (2006)
[불륜격정허무로맨스]
Little Children (2006)
[불륜격정로맨스스릴러]
Match Point (2005)
[불륜격정로맨스코미디]
The Graduate (1967)
박쥐 (2009) - 저는 이 영화가 호러나 스릴러보다는 잘 만든 코미디 같아요.
[영혼불륜격정로맨스]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Far From Heaven (2002)
Death in Venice (1971) - 동성미성년자영혼불륜격정로맨스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
동사서독 Ashes of Time (1994)
The Earrings of Madame de... (1953)
2014.09.06 12:22
2014.09.06 15:57
이 게시물 찬성일세!
로얄어페어 추천하러 들어왔는데 제 취향의 영화들이 줄줄이군요. 말코비치의 발몽은 정말 섹시했어요.
2014.09.06 16:41
2014.09.06 17:46
2014.09.06 17:44
2014.09.06 17:48
2014.09.06 18:24
말씀하신 영화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로 The reader, Ryan's daughter(그 분이 언급하셨는 줄 몰랐네요 ㅎ) 받고,
추가해서 밀회, 아이 엠 러브, 브로크백 마운틴, 폴링 인 러브, 사랑도 통역되나요, 부운, 진주귀고리 소녀를 꼽겠습니다.
지금 제 책상에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사랑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이 꺼내어져 있어요. 신형철의 '문학이야기' 팟캐스트 요번 회에서 언급되는 것 듣고 읽어보려고 꺼내놨는데 언제 읽을지.;; 영화는 애수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고 하더군요. 언제 영화도 보고싶고요. 아, 그러고보니 그린의 소설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건의 핵심(the heart of the matter)도 불륜 소재네요. 아주 옛날에(50년대쯤) 영화화도 된 걸로 알아요. 이건 원서 킨들로 받아서 *개월째 다시 읽는중..;;;
2014.09.06 21:35
2014.09.06 22:54
(<폴링 인 러브>라는 쉬운 제목에 좀 만만하게 봤는데 ^^) 로버트 드니로와 메릴 스트립의 사랑 이야기라니 갑자기 긴장되는걸요. ^^ 아, 세상엔 제가 못 본 영화들이 너무 많아요. 이번 연휴엔 댓글로 추천해 주신 영화들만 붙잡고 봐도 되겠어요. 영화 제목들만 봐도 배부르네요. ^^ (키드님의 친절한 안내 댓글 감사합니다.)
2014.09.06 18:41
raymond님과 아실랑아실랑님, 저와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 계셔서 힘이 불끈 솟아요. ^^ 저는 로맨스라도 (심리적+육체적으로) 격정적이어야 끌리는 것 같아요. <엘리자베스>는 영어로 듣다가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중간에 포기했던 것 같은데 격정로맨스라니 스크립트를 찾아서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키드님은 제가 언급한 영화들 거의 다 보신 것 같네요. ^^ <우리도 사랑일까?>는 제목이 시원찮아서 안 봤는데 원제는 멋진걸요. <Take This Waltz> 내용도 제 취향인 것 같고... Daum영화에서 1000원에 볼 수 있으니 당장 봐야겠어요.
브랫님, <밀회>가 김희애 배우가 나오는 그 밀회인가요? ^^ 저도 봤지요. <부운>은 처음 들어보는 제목인데 어쩐지 제 취향일 것 같아요. <진주귀고리 소녀>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저랑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 영화 추천해 주시는 것 너무 좋아요. ^^)
2014.09.06 18:43
아니요. 밀회는 라이언의 딸 감독한 영국 감독 데이빗 린의 흑백영화 말한 거예요. :)
부운은 일본 1955년 흑백 영화. 나루세 미키오 감독.
2014.09.06 19:08
아, <밀회>가 <Brief Encounter>였군요. ^^ 이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사랑의 종말>을 갖고 계신다니 부럽네요.
검색해 보니 품절에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없었거든요.
2014.09.06 19:26
저희 집엔 두 권이나 있네요.;; 1989년 삼성출판사 꺼랑 2002년 혜원출판사.
정 원하시면 인터넷 중고서점 같은 곳 검색해보세요. '북코아' 검색해보니 많이 뜨네요. 물론 제 책처럼 오래된 책일 거라는 생각은 하셔야되고요.
2014.09.06 22:26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브랫님이 좋아하신다는 <사건의 핵심>은 있나 도서관 검색을 해보다 <사랑의 종말>을 찾았어요!! 제가 전에 검색을 엉터리로 했나봐요. orz (어쨌든 덕분에 돈이 굳었어요.^^) 좋은 책도 덤으로 추천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2014.09.06 20:57
저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The End of the Affair 좋아해요! 번역제는 애수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사랑의슬픔:애수였네요. 포스터에 애수라고 크게 써 있고 위에 사랑의 슬픔이 작게 써 있는데 역시 별로군요.
레이프 파인즈는 늘 위태한 사랑을 하는 역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이 두 영화 말고도 히스클리프라거나 오네긴이라거나 쉰들러 리스트의 아몬 괴츠도 그렇고.
불륜격정로맨스로 톰 히들스턴과 레이첼 바이스가 주연한 The Deep Blue Sea도 추천해요. 2차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좋았어요. 성질 더러운 남자로 톰 히들스턴은 좀 순한 느낌이긴 했지만요 ㅎㅎ
2014.09.06 22:20
아, Ralph를 영국식으로 읽으면 레이프군요!! (영국 사람이니까 영국식으로 발음해 주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고칠까 말까 하다가 본문에 '랄프 파인즈'라고 쓴 것 '레이프 파인즈'로 다 고쳤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이프 파인즈가 히스클리프도 연기한 줄은 몰랐어요. (이름 바꿔 부르려니까 엄청 어색하네요. ㅠㅠ) <The Deep Blue Sea>는 포스터를 보니 예전에 봤던 영화인데 (영어가 잘 안 들려서 중간에 그만 봤는지) 줄거리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네요. 이것도 불륜격정로맨스라니 스크립트 붙잡고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
댓글도 없고 심심해서 사진 한 장 ^^ (<The End of the Affair>에서 레이프 파인즈와 줄리앤 무어가 비 오는 거리에서 키스하는 장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