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0 14:06
아이와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새 몇 달이 지났습니다.
결코 평온하달 수만은 없는 나날들을 보냈지만, 그럭저럭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이도 예전 지내던 곳에서보다 훨씬 밝아지고 행복해진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든간에 머지않은 때에 취업을 해서 조금씩이라도 경제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제가 이전에 해오던, 제가 제 정체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분야에 일을 얻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쪽 일은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데-그래서 이쪽에서 일하는 분들은
프리랜서가 많고, 다른 일과 겸업을 하시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저에게는 적으나마
고정적인 수입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을 맡으면서 머지않은 때에 2-3주간 해외출장도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홀몸이라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출장 갈 날이 조금씩 가까워올수록 아이가 마음에 걸려 고민이 됩니다.
아이는 제가 일하는 동안 오전-이른 오후까지는 어린이집에서 돌봄을 받고,
그 이후 시간은 외할머니(제 어머니)가 돌봐 주고 계십니다.
아이와 외할머니의 사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할머니가 아이를 무척 사랑해주시거든요.
어린이집은 다닌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적응하는 듯이 보입니다.
원체 씩씩하고, 잘 먹고 잘 자는 타입의 아기예요.
하지만, 아이에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적잖이 말을 시작한다고 하는 때에도 별다르게 말을 하지 않았고(옹알이를 비롯해
자기 표현은 어느 정도 되었지만),
그 점이 마음에 걸려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달센터에서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결과는 '반응성 애착 장애'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자라난 환경이 불안정하여, 아이의 발달에 지연이 오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교육과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간 놀이치료도 꾸준히 받아 왔습니다. 지금은 처음 보는 타인과 상호작용이 더디다는 것과,
여전히 또래만큼 말을 하지는 못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아기들과 다를 바 없이 잘 놀고 잘 웃고,
가족과는 의사소통도(말을 제외하면)잘 됩니다.
특히 고무적이었던 것은, 예전 타국에서 부부간의 불화 등으로 인해
내적 에너지가 소진되어, 아이에게도 좋은 정서와 애정을 심어 주지 못했던 제가
이곳에 와서 비로소 조금은 편해진 심신으로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돌보아 주게 되자,
아이가 저에게 이전과는 또 다르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발달센터의 선생님 말씀을 빌리자면, 아이가 그전(타국에서 지낼 때)에 보였던 저에 대한 분리 불안과
애착은 '생존'에 대한 불안의 측면이 있는 반면,
지금은 비로소 엄마와 자신(아이)이 함께 어울려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이렇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 자신(엄마)에 대한 사랑이 새로이 또 생겨난 듯하다고 하네요.
겨우 그나마 아이가 엄마인 저와 새로이 애착을 갖고 행복해하는 중에,
머지않아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서 내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이가 생각보다 충격을 받아, 그간의 치료와 돌봄이 수포로 돌아가고
나빠지거나 하는 건 아닌지...걱정이 됩니다.
사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금 다니는 곳에 취직 자체를 말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 개인의 측면으로는 제가 하는 일 분야와 제 처지를 아울러 보았을 때 이만한 곳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아서
욕심도 났구요.
사실 해외출장의 내용 자체는, 힘든 일이긴 하지만 저 홀몸이었다면 열심히, 즐거움을 찾으며 수행할 만한 업무이기는 합니다.
연휴 내내, 그간 출퇴근으로 곁에 있어주지 못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복잡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혹시 비슷한 월령의 아기가 주 양육자와 떨어져서 저만한 시간을 보낸 경험을 겪으시거나,
옆에서 지켜보신 분이 있으신지요.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물론 케바케인 것은 참고하겠습니다.
2014.09.10 14:43
2014.09.10 23:18
답변 감사드립니다. 하나하나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만약 이 출장을 그만두려 한다면 회사도 그만두어야 할 입장입니다.
마지막 배가 떨어지면 엄마로서 마음이 괴로울 수 있다는 말씀... 그렇지요. 저도 그 때문에 걱정이네요.
2014.09.10 15:59
2014.09.10 23:23
네, 아이 치료 선생님께 의견을 구해 보려고 합니다. 말씀 감사드려요.
2014.09.10 18:16
저는 선물이가 30개월 쯤 되었을 때 2주 출장갔다 왔습니다. 돌아오니 냉냉 하더군요. 그런데 제 동료중 한분도 우리 딸도 어렸을 떄 내가 출장만 다녀오면 나를 벌주었지 라고 하시더군요. 요즘에 선물이는 선물기대하고 있습니다.
가기 전에 열심히 설명해 주세요. 엄마가 언제 가는 지, 언제 돌아오는 지, 왜 가야 하는 지, 가서 전화 할께 이런거. 엄마가 가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거. 아이들의 이해력은 상상이상입니다.
제가 학사일 때 아동 심리학 교수님이 마지막 수업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론으로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환경의 아이가, 어떤 일이 아이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을 때 어떻게 성장하는지, 어떤 영향을 받는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아이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찌 어떤 미래를 살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많이 나쁜 일을 격은 아이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도 있고, 어떤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심리적으로 아픈 사람도 있다. 어떤 한가지 일, 사건, 성격, 혹은 한 사람 이런것이 아이의 미래를 자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가지 모든 것들이 조합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아이를 크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라고요.
2014.09.10 23:33
커피공룡님도 비슷한 일을 겪으셨군요. 동료분 딸의 말이 재미있으면서도 안쓰러워요. 나를 벌주었느냐니...
제 아기가 선물이처럼 선물을 기대할(^^)정도의 월령이라면 좋겠어요.
지시적인 부분에서는 이제 말이 꽤 통하지만,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말을 이해하기에는 벅찬 나이라서
말을 해도 이해해 주지 못할 거란 생각에 안타깝고 어쩔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이해하든 못하든 진심을 다해서 때때로, 처한 상황에 대해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려 해요.
교수님이 해주셨다는 말씀을 읽으며 웬지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외할머니가 주 양육자라고 보이는 데, 그렇다면 장기간 출장이 한 번은 다녀오셔도 부모 자식간에 비가역적 손상이 올 거 같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엄마가 없다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기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정하고 안정된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다녀오시면 아기와의 관계에 꽤 마이너스가 되며 복구하는데 2-3배의 시간과 많은 노력이 들긴 합니다. 경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잘 생각해보시고 경제적/경력 손실 정도라면 안 가시는 쪽으로 추천드리고, 직업 유지상 필수라면 다녀오시되 후에 많이 노력할 수 있는 환경 - 2-3달은 아기와 많이 놀아 줄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의 보장 -을 갖춰 놓으시면 좋을 듯합니다. 환경이나 애착에 예민한 아기라면 까마귀가 아예 날지 않는 것이 최선이긴 합니다. 혹여 배가 떨어지면 엄마로서 마음이 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