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한민국 국격 X까라 그래


2010. 11. 12. 금요일

산하

 

 

20년쯤 전 지하방에서 어린 남매가 지내는 방에 불이 나서 아이들이 타 죽은 사건이 있었다. 방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현관도 밖으로 잠겨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작은 손톱으로 열리지 않는 문을 긁어대다가 화마에 휩싸였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을 나가 있었고, 어머니는 반나절 파출부로 남의 집 마루를 닦고 있었다. 

 부엌에만 나가도 연탄불이나 식칼 등 다칠 구석이 많고 밖에라도 나가면 길이라도 잃을까 두려웠던 부모는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을 방 안에서 놀게 하고 문을 잠갔다. 조금만 있으면 엄마가 올게 약속을 남기고.  그러나 아이들은 살아서 엄마를 보지 못했다. 다섯 살 혜영이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이는 옷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숨져 있었다.   

 나는 꽤 감정이 무딘 사람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밤을 새며 울었다는 동료들이나 ‘그날이 오면’을 부르며 펑펑 눈물 흘리는 주위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럴까 자책도 하곤 했지만 이 사건을 노래로 만든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 을 들으면서는 왈칵 눈물을 쏟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기나긴 절창을 소개하다가는 주책없이 또 눈물보가 터질 것 같아 그 마지막 나레이션만 적어 보면 이렇다.

 

 


 



“엄마 아빠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내게는 이 노래에 얽힌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 있다. 저 슬픈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의 어느날,  술 한 잔 걸치고 버스 차창에 머리 기대고 잠을 청하는데 뒤에 앉았던 중년의 부부가 남매의 일을 화제삼는 것이 들렸다.  건성건성 넘기고 있는데 둘의 대화가 갑자기 화전이 되어 내 귓전을 뚫고는 머리 속에서 폭발했다.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리바이벌이 가능한 그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몇 푼이나 번다고......  여편네가 문 잠그고 나가서 그 지랄을 하게 했는지.  남편이나 여편네나 똑같다.”


“맞아요 무조건하고 애들은 엄마가 있어야 돼.” 

 솔직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시내버스 타고 다니는 처지로 미루어 “싸장님”과 “싸모님”도 아니었다.  나름 그 슬픈 사건에 가슴 아파하는 빛이었고, 딴에는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격노했다. 그리고 그날 부부는 내게 봉변을 당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우연히 올라탄 동아리 선배가 필사적으로 말리고 혼이 빠진 부부가 황급히 내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경찰서 신세를 졌을 것이다. 마치 내가 죽은 아이들의 아비라도 되는 양 악을 썼고 엄마라도 되는 양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퍼부어댔으니까. 

 바로 그 며칠 전 정태춘 공연에 가서 그 노래를 들으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가시지도 않은 나의 뒤통수에 대고 악담을 쏟아 냈던 중년의 부부는 참으로 불운하였다.  행여 다시 만난다면 무례를 사과하고 싶다. 기실 나를 정말로 화나게 했던 것은 “애들은 엄마가 길러야지.” 하는 당연하지만 지극히 폭력적인, 속 편하지만  그보다 더 잔인할 수 없는 명제 때문이었다.  

 요즘에사 맞벌이가 당연시되고 오히려 집안에 있으면 남편 눈치가 보인다지만 당시만 해도 “접시와 여자는 내돌리면 깨진다”는 개 같은 신화의 뿌리가 깊었고, 아이들을 위한 보육 시설같은 것은 부족하다 부족하다 소리 드높은 지금에 비해도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던 때였다. 그리고 탁아나 보육 시설의 확대를 논하면 “애들은 엄마가 길러야지.” 하는 논리가 정면으로 박치기를 하고 나서는 분위기였다.  보육은 부모 책임이지 사회가 뭘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암담함 속에서 파출부 나가는 엄마는 자물쇠를 잠가야 했고 아이들은 뜨거워지는 벽과 문을 긁어대다가 숨이 막혀야 했다.   

 언젠가 한 할머니가 며느리가 밥을 주지 않아 차창 너머로 이웃들이 건네는 밥으로 연명한다는 제보가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할머니는 국물 없는 짜파게티 따위로 부실한 아침을 먹은 후 숙박업소 청소부였던 며느리가 출근하고 퇴근하기까지 물도 먹지 못한 채  이웃들의 도움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내막에 접근해 보니 할머니의 죽은 아들은 엄청난 가정폭력의 가해자였고 할머니는 방관자 내지 방조자였으며 수십 년간 파키스탄산 고추같은 시집살이를 강요했던 장본인이었다. 또 이 할머니는 70년 전의 추억까지도 선명히 기억하는 왕성한 기억력의 소유자로서 치매를 의심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똥을 싸서 찬장에 넣어 놓는다거나 불을 지른다거나 수도를 틀어 집안을 한강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기행을 보였고, 며느리는 이것을 자신을 골탕먹이는 행위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 음식을 줄이고 수도를 잠갔다고 했다.   

 정황이 어떻든 여든 노인 배를 곯리고, 수도까지 잠가 먹을 물이라곤 변기 물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명백한 노인 학대에 해당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무력감에 가까운 당혹감에 휩싸였다.  할머니는 ‘혈관성 치매’였다.  차라리 신체와 두뇌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는 알츠하이머라면 누구나 치매임을 알아채지만 특정 기능에만 이상이 오는 혈관성 치매였기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행동을 병 때문이 아닌 악의 때문으로 오해했고, 싸움 싸움을 하며 지옥같은 삶을 통과해 온 것이었다.  “차라리 잘 오셨다. 나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며느리의 말이었다. 

 몇 년 후 다른 기회에 치매 환자 가족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마침 밥굶는 할머니 케이스가 떠올라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며느리가 이해가 가지만 좀 심했다. 하지만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정도의 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답은 상상 이상으로 엉뚱했다. 

“효부상 줘야겠네요.”

무.... 무슨 말씀이온지 말을 더듬는 내 앞에서 그녀는 차분하게 얘기했다.

 “남편 죽었다면서요.  시동생 하나 있는 건 소식도 없다면서요.  거기다 시어머니가 대단한 분이었고 이젠 치매에 걸렸다면서요.  근데 치매인지도 몰랐다면서요. 그런 분을 모시고 5년을 버텼다면 효부상 줘야 해요. 제 친정엄마가 치매예요. 우리 엄마 스물 여덟에 청상되어서 별의 별 고생을 다 하면서 저희들 뒷바라지하셨어요. 지금도 엄마 하면 눈물이 핑 돌 정도니까. 그런데 치매세요.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니 저도 남편 앞세우고 애 둘 길러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직장에 나가죠. 어떻게 하고 나갔는지 아세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떤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설마 그러랴 싶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윌리암 텔의 화살처럼 들어맞는 것이 내 평생의 징크스. 그녀의 말은 어김없었다.  


 “빨래줄로 묶고 나갔어요.  요양원 좋은 데 모시고 가는 건 꿈도 못 꾸고, 싸구려양로원에 넣자니 도저히 내 자신이 용납이 안되고, 20 평짜리 집하고 차가 있으니 생활 수급자같은 거도 안되구요.  엄마는 툭하면 나가서 사람 돌게 만드시더니 언제부턴가는 온 집을 폭격맞은 집으로 만들어 놓으시는 거예요. 

 처음 묶던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엄마 제발 나도 좀 살자. 엄마 미안해. 엄마 근데 엄마 너무해. 원망했다가 사과했다가. 개처럼 묶어 놓고, 앞에 밥상 갖다 놓고.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엄마가 아침에 나가는 제게 손을 내미는 거예요. 애들만 아니었으면 같이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죽어 버리라고 소리치다가 출근도 못하고 엉엉 울었어요.  하늘같은 엄마한테 내가 이런 소리를 하다니....... 같이 죽어버리고 싶더라고요.”


 

 


선량한 자식을 악마로 만들고, 못할 짓도 서슴지 않는 ‘패륜아’ (그녀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만드는 것은 치매라는 노인성 질병 때문이었다.  요즘은 뜸하지만 치매에 걸린 부모를 먼 도시의 터미널에 버리는 자식들의 이야기가 몇 년 전만 해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그래도 어떻게 부모를 버려? 하며 혀를 찼고 그 자식들은 존속 유기 혐의로 붙잡혀 콩밥을 먹기도 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빨랫줄로 엄마를 기둥에 묶고 나서야 하는 딸 앞에서 “어떻게 부모를......”이라는 질문은 얼마나 끔찍한가. 노모를 터미널에 버린 뒤 경찰이 모시고 가는 것을 보며 돌아서서 통곡하다가 수상히 여긴 경찰에 체포된 (10년도 더 전 내가 취재했던 사건) 아들에게 “어떻게 엄마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고 내미는 손가락질보다 더 독랄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명제는 어쩌면 가장 옳은 명제인지도 모른다.  법대로 하면 되고, 가정은 지켜져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옳고 지당한 책임을 사회가 전담 내지는 분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떠밀 때, 옳아서 더욱 단단하고 마땅하여 배로 갑갑한 명제의 동앗줄들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목을 잡아 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데, 대한민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분께서 그렇게 하는 것이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선언할 때 과연 그 나라의 백성들은 대체 무엇으로 희망이라는 이름을 부여잡을 수 있을까.     
       
 “우리들의 죽음”이 일어났던 노태우 정부의 국무총리도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사회의 책임도 있긴 하지만 결국은 부모 책임”이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 공정하고 서민 프렌들리하며 왕년에 풀빵도 팔아봤고 비정규직도 해 보신 행정부 수반이 좌정한 이명박 정부의 신임 총리의 말은 수십 번 곱씹어도 부아가 치밀고 이마의 핏줄이 융기한다.  



 


“가족 문제는 경제적 문제를 떠나 가족 내에서 서로 도와 주는 사회가 건전하고 바람직하며 노인 부양을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국격에 맞는지 검토해야 한다.”


 대학의 주인을 누이로 두고 두둑히 용돈도 받아 쓰는 그의 눈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위의 슬로건은 국격이 땅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땅을 파고 들어간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정년 연장’을 반대하며 시위하는 젊은이들의 나라는 아예 나라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은퇴한 뒤 나라에서 연금 받아 생활하는 주제의 노부부가 세계 각지를 누비는 것은 패륜에 가까운 짓일 터이고, 2008년에야 겨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같은 것은 북한에서나 실시되어야 할 저질스런 제도로 보일 판이다. 하물며 노인들의 경로우대권 따위야 얼마나 고깝고 아까운 과잉복지로 보이겠는가. 

 주변의 도움도, 기관의 개입도 혹여 자식에게 누가 될세라 결사적으로 거절하고 열악한 골방에 드러누워 연명하던 할머니가 계셨다. 노인들은 아동과는 달리 본인의 의사에 반한 주거 이동이나 분리가 어렵다. 오히려 그것이 노인들에게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만나고 왔던 PD는 무슨 수를 쓰든 거기 계시게 하면 안될 것 같다며 며칠 동안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참 동안 해당 PD는 술에 자주 취했고 자신이 죽인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입 꽉 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내버려 두라.”던 할머니의 모습이 유령처럼 눈 앞을 어른거린다고 했다.  김황식 총리의 눈에는 그 죽음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자식이 마땅히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품격 높은 국가에서 변변한 자식을 길러내지 못한 어미의 순사(殉死)로 보여지지는 않았을까.  눈을 부라리며 그 자식을 찾아내어 치도곤을 안겨야 나라의 품격이 높아진다고 으르렁대지는 않았을까.  대체 그 지랄맞은 국격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퀴퀴한 냄새 그득하여 기관 사람들도 코를 싸매야 들어가던, 햇볕도 들지 않고 온기도 전혀 없는 골방에서 색색거리며 힘겹세 호흡하면서도 자식 흉이라도 보면 성을 내면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할머니.  식민지 시대의 고달픈 딸로 태어나 전쟁을 치루고 그보다 더 참혹할 수도 있었을 일상의 전투를 겪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던 할머니가 마침내 반가울 수도 있는 죽음을 맞았을 때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아마 나지막히 이렇게 읊조리지는 않았을까.  “우리들의 죽음”의 아이들처럼. 

" 아들아 내 딸들아.  죄스러워하지 마라.  이건 너희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둘째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도저히 안되겠다고 포기하라 할 처지만 아니었더라면, 셋째가 죽어갈 때 팔 집이라도 있어 치료비를 댔더라면,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하나라도 똑똑히 해 준 부모였다면 그리고 그런 나라였다면, 너희들을 원망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아니지 않았니. 진작에 끊겨야 했을 목숨 질기고 질겨 이제야 너희어깨를 떠난다만 하늘나라에는 내 가서 먼저 간 셋째와 함께 터를 잡고 있으마.  거기서는 너희에게 한을 물려주지 않으마.” 


“말죽거리 잔혹사” 에서 열연했던 권상우의 말을 빌어 악을 써 본다.  

 


“대한민국 국격 다 좃까라 그래.” 
     
   






정태춘, [우리들의 죽음] (1990) 


수록앨범: 정태춘 5집, [아! 대한민국] (1990)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 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fin)





코멘트


위 기사를 쓴 분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노래를 진지하게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기사를 읽으며 대충 들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대책없이 눈물이 콸콸 쏟아지게 만든 노래는 이게 처음이다.


나 역시 이명박 무리가 말하는 '국격' 따위 X까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니들이 사람이냐. 

짐승도 그 따위로는 안 한다.

난 최소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정부를 갖고 싶다.



(201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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