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보면 서구 사회에서 사회 분위기가 바뀐 과정을 서술하고 있지요.

교회는 애초에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다"라고 설포했는데,

칼뱅의 pre-Destination은 이 가르침을 휙 뒤집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예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분위기가 요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는 악하고, 빈은 선했다가

부는 세련되고, 빈은 구질구질한 걸로요.

학교에서도 역할분담(모범생, 보통 학생, 날라리)이 선명했고 각자 공부, 학창시절의 추억, 미모?를 담당하는 교실의 멤버들이었는데

요새는 "부잣집 애들이 똑똑하고 학벌도 좋고 예쁜데다 성격도 좋다"..

 

 

이에 대한 반작용도 분명 존재합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오뎅집에서 한잔 기울이고 있는데 남2여2 머릿수 맞춘 옆 팀이 크게 떠드는 말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처음에는 스펙이 있어야 취업되고 취집되는 현실을 개탄하더니

"그래도 스펙 되는 사람들은 불쌍해.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없잖아. 다 조건 보고 따라오고 말이야."

 

그날 같이 술마시던 친구들 중에 두 명이 커플이었는데, 그 둘의 연애는 조건만 나열하자면 드라마 급으로 화려하지만 매우 모범적입니다.

스펙 되고 조건 되고 외모 되며 성격 되는 두 마리(얘들아 미안) 엄친아딸이 열렬히 불 같이 사랑해서 사귄지 석달째였죠.

둘 다 웃으면서 얼굴이 일그러지는걸 '니들은 술먹고 올바른 소리만 하냐'며 다른 즐거운 화제로 넘어갔습니다.

 

잘못 없이 자기의 진심을 간단하게 부정당하는게 기분은 참 나쁠 거란 생각도 듭니다만

빈자에게도 숨통을 틔워 달라.

대체 뭘 보고 어디에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야 할까요.

만인이 김태희 얼굴과 이건희 재력에 김영삼의 건강을 가지고 살 수는 없잖아요.

 

 

 

 

2.

출산률은 몇년 전 바닥을 찍은 이후 그 근처에서 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1인당 평생 1.17이랬나?

많은 분들이 아이를 낳으시지만 무자녀 가정이 이전보다 흔해졌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지만 일단 자리가 잡힌 이후까지로 미루고 있는 가정이 꽤 늘었죠.

제 주변 분들은, 특히 여자 선배들은 (결혼도 어렵지만) 자식을 무슨 수로 낳냐는게 중론입니다.

저희 전공에서는(어디나 그렇듯이 소수를 제외하면) 쉬면 커리어가 아작나게 되거든요.

저희 여자 동기들은 다 쫄아 있습니다.

바람직한 롤모델 (인간다운 생활을 하며-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고-행복한 2세와 가정생활을 영위하시는) 수퍼우먼은 아직 저희 주변에 안 계십니다.

마이 베이비, T1, 2세, 주니어를 과연 가질 수 있을까?

전 반쯤 포기했어요.

 

 

요새 남초 커뮤니티를 돌다 보면 "연애연애연애"에서 "결혼결혼결혼"으로 한탄의 기조가 추가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솔로 vs 연애의 경우처럼 처음에는 결혼 가능 vs 불가능의 구도가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사회적 스트레스의 소스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결혼과 아이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당연히(!) 누릴 수 있고 그 안에서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였어요.

직장에선 만년 치여도 집에서는 가장! 아빠 힘내세요~ 같은 이야기들이요.

 

이젠 번듯한 결혼과 전통적인 가족(홑벌이, 2자녀, 아파트 거주, 전업주부 어머니, 집에서 먹는 따듯한 온가족의 저녁)은 사치가 되어 버렸어요.

저게 되는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도대체 대한민국 탈탈 털어 몇 커플이나 나오겠냐는 말입니다.

 

당연히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가질 수 없게 되어버려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 분노, 허탈함, 부끄러움, 기타 등등이 매우 큰 것 같아요.

요새 세상에서 살면서 '이기는' 법은 정신승리밖에 없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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