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사에서 그런 걸 많이 느낍니다.

 

1. 기자가 취재원을 만남. "이번에 뇌물을 받았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누굽니까?"

2. 취재원은 밝히기를 거부. 

3. 기자가 다시 설득 "일단 실명으로 기사화는 안할게요. 나중에 확실해졌을 때 자료로 쓸 수 있게 좀 알려줘요." 

4. 취재원은 "그럼 지금은 보도하지 말고, 하더라도 실명으로는 하지 마"라는 다짐과 함께 알려줌. 

5. 기자는 보도함. 그것도 실명으로.  "오프 더 레코드 혹은 익명화를 요청받았으나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제가 기자인데 뭔가 하나 정보를 얻었다 이거죠. 확인을 했더니 "맞긴 하다, 그런데 보도는 자제해달라."고 했다면, 그걸 보도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전에 푸틴 딸이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기사가 그런 경우죠. 제가 그 글에 기자가 매너가 없는 것 같다고 욕하긴 했습니다만 그나마 이쪽은 이해할만 합니다. 다른 곳에서 들은 정보를 가지고 그냥 안물어보고 쓸 수도 있었는데 굳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오프 더 레코드 부탁이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인터뷰를 기사화한 시사저널 같은 경우가 이건 뭥미? 싶습니다. 물론 비난의 화살은 이인규쪽에 더 많이 갔습니다. 그렇게 오프 더 레코드가 깨지고 수사 관련 정보가 보도되는 일을 안겪어본 것도 아니었고, 정작 국감에는 그런 얘기 못한다며 출석 거부해놓고 기자한테는 이야기 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시사저널 기사를 보면 당시 박연차의 돈을 먹은 것으로 의심되는 민주당 정치인 두 명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안밝히겠다고 하는데도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하고 실명을 얻어냈습니다.

 

이 전 부장은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1년 넘게 속으로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라는 말은, 실명 비공개 조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 정보는 못얻었을 거라는 뜻이니까요. 이인규 케이스는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찬반이 엇갈릴 수 있지만, 하여간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하고서 최대한 정보를 우려낸 후, 정작 보도할 때는 정보 준 사람 생각은 안해주고 특종이라고 터뜨려버리는 행태가, 그냥 기자의 특권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애초에 기자를 만날 때는 오프 더 레코드 약속 따위는 못들은 걸로 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건지.

 

p.s. 옛날 광수생각 생각나네요. 작가가 단행본 내면서 이런 에피소드를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 좀 울었다. 창피해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빼달라"고 했고, 기자도 "알았다. 절대 보도 안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돌아갔는데, 정작 인터뷰 기사 제목은 "박광수, 통한의 눈물고백" 이었다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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