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건 새끼를 잃은 어미고양이의 울음소리였어요.

 

죄송해요.

전쟁에 대한 강한 불안감이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 아닌 것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어쩌면 너무 길어질 지도 몰라요.

저는 주절주절 말하면 핵심도 없이 말만 길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나는 그 고양이 가족과 낯이 익은 사이였어요.

예쁜 회색 줄무늬 얼룩이 등에 있는 어미 고양이 한 마리와 새끼 고양이들.

그들은 저희 빌라 앞  주차장을 영역으로 삼아 여름부터 거기서 지내던 길고양이들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곳에 깃들어 있었고,

'길고양이용 사료를 하나 사야하나'를 고민할 즈음, 같은 빌라에 사는 누군가가 사료를 주차장에 놓아두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먼 발치에서나마 자주 그 고양이 가족을 마주칠 수 있게 됐죠.

끼니를 매일 챙겨줘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건,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활력이었습니다.

 

가끔은 동네 동물병원을 지나갈 때 통조림을 챙겨놓았다가 귀갓길에 살며시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늘 주차장의 세번째 차 아래에 숨어서 경계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현관계단으로 올라가고 나서야 차 아래에서 기어나와 살며시 그 통조림을 먹곤 했어요.

 

대개의 사람 손을 탄 길고양이들은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아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 고양이 가족들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내가 자신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한결같이 어미 고양이는 저를 경계했어요.

 

그런 점이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호의 따위에 엄격한 고양이였고, 새끼들을 늘 잘 보호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인생은 쉽지 않아, 장마철이 지나고 나자 새끼고양이는 단 한 마리만 남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단 한마리 남은 새끼고양이가 너무 예뻐서 늘 호시탐탐 훔쳐보곤 했어요.

정말 천진난만한 새끼고양이였습니다. 예쁜 반점이 얼굴과 꼬리에 나 있고, 온 몸은 하얀.

아주 작은 몸으로 늘 까불거리며 놀곤 했지요.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새끼고양이였는지, 우리 식구들은 모두 그 고양이를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곁을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늘 잘 보살폈기 때문에

저는 새끼고양이를 한 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어요.

좀 친해져보고 싶어서 괜히 멸치를 들고 나가서 새끼고양이에게 던져주면서 꼬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어미 고양이에게 야단 맞기도 하고 그랬죠:

거리를 조금 좁힐라치면 어미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서 하악! 하고 위협했거든요. 그러면 저는 다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멸치나 던져주고. 뭐 그랬더랬습니다.

 

하루는 - 그 날도 멸치로 좀 꼬셔볼까(며칠 멸치를 들고 나갔더니 새끼고양이가 저를 아주 반기는 눈치더군요)하고 - 주섬주섬 멸치를 챙겨나와서

새끼고양이에게 던져주고 있었는데,

마침 새끼고양이가 매우 고무적이게도 약 70cm 남짓한 위치까지 가까이 와서 멸치를 먹는 거였습니다!

얏호. 저는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라고 생각하며 멸치를 신중히 약 45cm 위치에 투척....하기 위해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말을 걸지 않겠어요.

 

"저어, 이 빌라에 사시는 분이세요?"

 

-아차.

 

뒤를 돌아보니 아기를 안은 여성 분이 계셨어요.

"네에."라고 대답하자,

 

"여기 주차장에 고양이 사료 놓는 분이신가요?"라고 묻더군요.

 

-아아, 올 것이 오고 있다.

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뇨. 저는 어쩌다 가끔 간식이나 주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예상대로, ''고양이에게 자꾸 먹이를 주지 말아달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어쩌자고 이런 모습을 들킨거야. 조금 더 조심했어야지! 라는 생각과

-뭐 어때. 내가 사료를 주는 당사자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동시에 떠오르더군요.

 

"저는 사료를 놓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말했습니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면 쓰레기봉투를 뒤지거나 음식물쓰레기통을 엎어놓지 않아서 거리가 오히려 더 깨끗해진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자 여성분은 "우리 아이가 아토피를 앓고 있는데, 빌라 복도에 잠깐 내놓은 유모차에 고양이들이 올라가서 놀고 있거나, 현관 앞에 나갈 때마다 마주치게 된다"고 항변하시더군요. "고양이가 가능한 이 곳에서 어슬렁거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늘어나는 건 곤란하니 제발 먹이를 주지 말아달라"는 그 여성의 말에, 저는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동의 건강을 이유로 삼는데야, 저도 도저히 할 말이 없었거든요. 저는 그냥 궁색하게 변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먹이를 놓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새끼고양이와 내가 유일하게 잠시나마 가져보았던 놀이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집 앞에 넋놓고 앉아 새끼고양이와 놀 엄두를 내지 못하고(그러기엔 이웃들의 시선이 신경쓰였어요)

그냥 멀찍이서 바라보던 방관자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집 앞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울며 뛰어들어오셨어요.

"새끼고양이가 죽어 있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가족은 모두 그 예쁜 새끼고양이를 눈 여겨 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새끼고양이를 알고 계셨던 거지요.

 

어머니는 "어떻게 해, 어미가 옆을 떠나지 않고 계속 새끼를 핥아주고 있어, 죽었는 줄 모르나 봐. 시체를 치워야 할 것 같은데 함부로 시체에 손댔다가 어미고양이가 할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치울께요"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린 뒤 서둘러 뛰어나가보니,

늘 고양이 모자가 지내던, 그리고 사료가 놓여있던 바로 그 주차장 자리 바로 앞의 도로에, 새끼고양이가 누워있었어요.

차에 치인 듯, 머리가 깨져 아스팔트 위에 선혈을 쏟아놓았습니다.

 

제가 나왔을 땐 어미고양이가 곁에 없었어요.

저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미고양이가 곁에서 계속 맴돌며 울고 있었다면 마음이 아파 시체를 치우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빌라 옆 화단을 적당히 삽으로 파낸 뒤,

고양이 시체 쪽으로 다가갔어요.

 

그게 여지까지 본 중 가장 가까이서 본 모습이었어요, 슬프게도.

가까이에서 비로소 본 새끼고양이의 모습은,

늘 내가 마음 속으로만 그려보았던 대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어요.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처참하게 한 쪽 얼굴이 망가진 것만 제외하면,

앙상한 네 다리도, 작고 둥근 하얀 발도, 아직도 젓살로 볼록하고 빵빵한 배도, 뾰족하고 가느다란 꼬리도

모든 게 그대로였습니다.

아침 햇살에 털이 반짝반짝 빛나, 하나하나 가느다랗게 날리고 있었어요.

정말로 어미고양이가 깨끗하게 핥아놓은 것처럼, 하얀 털은 핏자국 하나 없이 말끔해서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어째서 아름다운 것들은, 가장 빨리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걸까요.

 

조심조심 부삽으로 고양이 시체를 옮겨 와 화단에 묻어주고 나니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즈막하게 들렸어요.

 

화단 옆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 밑으로, 행인들 눈에 띄지 않게 어미고양이가 숨은 채 저를 지켜보고 있더군요.

 

고양이 눈이 저를 힐난하는 것 같아, 저는 괜시리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어요.

"걔는 묻었어. 저기 차도에서 사람들이 자꾸 건드리고 지나가지 않도록 숨겨놓은거야. 그 편이 너도 마음 놓이지?"

고양이가 웅-하고 울었어요. 낮게.

 

모르겠더군요.

어미고양이가 과연 새끼를 묻어주었다는 걸 이해할까, 납득해줄까, 그 때는 확신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화단을 파헤쳐놓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내친 김에 도로 위에 흘러있는 핏자국도 씻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끼의 피냄새가 그 곳에 배어있으면 저라도 그 자리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물을 담은 물통과 성긴 빗자루를 챙겨 다시 나오는데,

현관을 나와 도로 쪽으로 향하다가

 

보았어요.

 

자동차 밑에서 기어나온 어미고양이가 혼자 새끼 무덤 위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고 울부짖고 있는 것을.

 

도로 위 핏자국을 지우는 동안,

어미 고양이는 혼자서 계속 울어대고 있더군요.

 

저는 고양이의 그런 울음소리는 처음 들었어요.

제가 들었던 고양이의 소리는 대개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화답하기 위해 야옹거리는 소리였어요. 가령 발정기 때의 울부짖음은, 명백히 암컷이나 수컷에게 들리게 하기 위해 커다랗게 내지르는 소리지요. 그러나 어미의 울음소리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어미 고양이는 나즈막하게, 힘이 하나도 없는 듯이 멍하니 울음소리를 냈어요.

우웅-하고. 그 소리가 끊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이어져서 계속해서 튀어나왔어요.

마치 사람이, 너무 슬플 때 흐느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새어나오듯이,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고양이는 계속해서 크게 울었어요.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처참한지, 듣고 있던 제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뚝뚝 눈물이 떨어지더군요.

그게 얼마나 가슴을 쥐어 뜯는 것 같은 울음소리였는지... 그걸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요.

마치 가슴을 후벼 파내는 것 같았습니다. 굳은 마음 속의 틈으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파고 들어와 가슴을 두 쪽으로 쪼개 놓는 것 같았죠.

 

만약 그 고양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무심하게 '아침부터 고양이 울음소리라니, 불길하게-' 같은 생각을 하며 지나쳤겠지만,

저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 동안

얼마나

그 새끼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어미고양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왔는지를 저는 아니까요. 

 

 

그렇게,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며

사람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게 그토록이나 온 마음을 기울여 사랑하고 보살폈건만

하나 뿐이었던 새끼는 결국 보람도 없이 인간의 차에 치어 죽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렇게 조심했는데.

아.

그걸 가장 무서워하고 경계했는데.

 

차라리 애초부터 사람이 그곳에 밥을 놓아두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내가 좀 더 못 본 척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주차장을 맴돌다가 차에 치여 단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애써 그 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곳은 누군가가 사료를 주기도 전부터 그들의 영역이었고,

선후관계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것처럼 의미 없는 짓이겠지요. 이제 와서는.

게다가 난 언제나 방관자였을 뿐이에요.

 

오늘 하루 종일

어미의 울음소리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추운 밤에, 어미는 혼자 어느 골목을 배회하고 있을까요.

얼마나 춥고 얼마나 슬플까요.

 

동물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너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지만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이건 너의 탓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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