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28 18:59
[드래곤 길들이기]는 전형적인 너드 판타지입니다. 스포츠도 못 하고 늘 따돌림 당하는 우리의 남자주인공이 갑자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서 일약 스타가 되고, 아버지나 친구들의 인정도 받고... 단지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 고등학교가 아니라 바이킹들이 사는 중세 북유럽의 작은 섬입니다. 툭하면 드래곤들이 마을을 습격해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 세계에서 드래곤 사냥은 미국 고등학교 영화의 미식축구보다 비중이 더 크죠. 우리의 주인공 히컵은 자기가 만든 사냥 도구에 의해 부상당한 용 투슬리스를 보살피게 되고 두 종족간의 험악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투슬리스를 타고 하늘을 나는 멋진 경험들도 포함되지요.
영국의 아동작가 크레시다 코월이 쓴 동화책을 각색한 이 영화는 거의 자동항법으로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린 이미 이런 캐릭터들을 알고, 그들이 놓인 상황들도 알고 있지요. 바이킹과 드래곤은 거의 레고 블록처럼 당연한 조합이며, 히컵과 투슬리스의 관계 역시 전형적인 소년과 애완동물 이야기입니다. 이게 비행 경험과 결합되는 것도 그만큼 자연스럽고요. 두 종족을 맺어주기 위해 설정한 최종비밀을 제외하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길들이기]는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영화 곳곳에 수많은 '박제된' 장면들이 깔려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컵과 투슬리스의 모험은 생생하고 둘이 결합한 뒤에 벌어지는 모험이 주는 대리만족은 그 단순한 '생생함'을 넘어섭니다. 자주 인용되는 옛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요. 영화는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냈고 그를 통해 그들을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그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경험입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드래곤이 결합된 비행 액션 장면입니다. 많은 분들은 [아바타]를 연상하실 겁니다. 전 오히려 [아바타]보다 더 즐겁게 보았지요. 그냥 스펙터클로 즐기기엔, [아바타]의 전쟁 액션은 내용이 너무 어둡지 않습니까. [드래곤 길들이기]는 그런 불편함이 없는 순수한 판타지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그 파이트처럼 고풍스러우면서도 그럴싸하게 논리가 맞으며 최종결과는 환상적이지요. 그 곳까지 주인공들을 끌어가는 상황의 설정이 스토리보다 액션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흠입니다만.
하여간 [드래곤 길들이기]는 휴일날 아이들을 끌고 가서 보기 딱 좋은 영화이며, 전 별 생각 없이 추천합니다. 3D 아이맥스로 보세요. 3D보다는 아이맥스에 방점을 찍습니다. 3D 효과도 괜찮지만 큰 화면과 높은 해상도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는 다 3D일 테니 별 의미없는 소리겠지만. (10/04/28)
★★★
기타등등
영화 중간에 나오는 드래곤 안내서의 문장들은 모두 영어입니다. 그냥 현대영어를 룬문자로 쓴 거라는군요.
감독: Dean DeBlois, Chris Sanders 출연: Jay Baruchel, Gerard Butler, Craig Ferguson, America Ferrera, Jonah Hill, Christopher Mintz-Plasse, T.J. Miller, Kristen Wiig, Robin Atkin Downes, Philip McGrade, Kieron Elliott, Ashley Je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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