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와세다에서 박사과정 밟고 있는 사학과 선배 한 분과
'블랙 호크 다운' 영화가 나왔을 때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길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BOB처럼 이 영화도 원작 논픽션이 있더군요. 꽤 읽을 만한 책이었습니다.

이하 옛날 글. (근 십년 전인가요... ㄷㄷ)
근데 지금 다시 보니 어째 목차 잡아놓은 게 전공 답안지 쓰는 삘이 팍팍 나는 게-_-;



#0. 들어가며

지금부터 쓰려 하는 이야기는 그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개봉 훨씬 이전에 출간되어 본토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호평받았던 한 논픽션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에 더해 영화에선 어쩔 수 없이 다루지 못했던 후일담이나 그 '묻혀졌던'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한다.



#1. 사건의 전말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3년 10월3일 오후 3시. 레인저를 태운 블랙호크(정확히는 각종 센서를 강화한 특공대용 패이브 호크) 4대와 
델타포스 팀을 태운 리틀 버드 4대, 같은 수의 호송 및 지상제압용 리틀 버드 - 도합 12대의 헬기들은 
한가로운 오후의 인도양을 가로질러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의 일명 '검은 바다 구역'을 향해 돌입하게 된다.

이들의 주 임무는, 유엔의 대의(大義)에 반발한 채 계속 저항하며, 유엔의 원활한 식량공급을 막고 
다른 소수파 민족을 억압하는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장군'의 참모진을, 그들의 세력권에 
직접 강습해들어가 체포하는 것이었다.

'어디로 보나 지극히 정당한 작전이었다'고 투입되는 병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비슷한 작전이 
이전에도 몇 건 있었으며 비록 애꿎은 민간의 물적 피해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성공했기 때문에
이들은 '토착 군벌의 사병 따위는 정예 '델타포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존재들'로 생각하고 있었고 사실이 그랬다. 

작전은 1시간 이상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고, 그들이 체포작업을 하는 동안 외곽을 경계하는 레인저들은 
장갑화된 험비를 타고 육로로 오는 또 다른 그들의 동료와 합류, 체포된 참모를 싣고 유유히 모가디슈 외곽에
주둔한 미군 본부에 도착하면 작전은 종결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때 하늘에서는 'P-3 대잠초계기'를 개조한 
전자정찰기가 정보 -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 -을 지휘본부로 실시간 전송시키는 상황이었다. 

물론 만약이란 사태를 상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만약'이 일어난 경우, 
"그들은 전투에선 승리할지언정 전략적으로는 패할 것"이란 경고는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그 만약이 일어나버린 것이다.

작전은 순조로웠고 목표는 모두 손쉽게 제압되었다. 레펠 중 추락사고가 일어나 한 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어떻게 응급후송 하면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미군으로서는 악몽 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소말리아의 하늘에선 무적이나 다름없던 블랙호크는 어이없게도 이들을 노리고 날아온 조악한 로켓탄
(북한에서 쓰는 RPG-7과 비슷한..) 공격에 후미의 테일로우터를 직격당해  추락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벌때처럼 몰려온 군중과, 그 속에 숨은 아이디드의 사병들 한복판에서 호송대는 고립당했다.

쏟아지는 총탄과 로켓탄 - 완전히 도시 전체가 작심한 듯 들고 일어난 치열한 저항 속에 미군의 레인저들과
델타포스는 고립되고, 추락한 헬기 승무원을 구하기 위해 새로 돌입한 델타포스 대원조차도 적들의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장갑험비로 이루어진 호송대는 체포 대상을 
천신만고 끝에 본부까지 실어와 인계하여 당초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그들은 재차 지옥같은 도심
(시가전 상황은 언제나 그러하다)으로 재진입한다. 그러나 돌발사태에 따른 혼란으로, 믿었던 전자정찰기의
항공 통제관들은 오보를 연발했다. 결국 이들은 남은 고립병력을 구출하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그리하여 작전 개시로부터 18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도시 전체가 적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마치 알라모 요새의
데이비 크로켓과 다른사람들처럼 - 민병대와 처절하게 싸우던 레인저와 델타포스는, 마침내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운
유엔의 다국적 임무 지상군 부대와 미군 제 10 산악 사단 연합병력에게 구출되지만, 이 때는 이미 18명이 전사하고 
70여명 이상이 중상을 입은 후였다. 또한 소말리아측의 피해는, 상당수의 민간인을 합쳐 최소 사상자 1000명 이상. 
분노한 군중은 미처 구출부대에게 회수되지 못한 미군들의 시신을 난도질하고 끌고 다녔다. 이 모습은 외신에 그대로
중계되었고, 분노한 클린턴 행정부는 작전책임자 경질과 함께 소말리아 지역에서 미군의 조속한 단계적 철수를 명한다.

결국, 이 작전에 투입된 미군은, 작전입안 당시 일부의 경고대로 '전술적으로는 승리했으나 전략적으로는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2.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하의 사건의 전말에 대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기아에 신음하던 그들을 도우러 온 미군들을 소말리아의 민중들 전체가 
벌떼처럼 몰려와 저항하고 그들의 시체를 끌고 다녔는가? 
거기에다 엄청난 민간인의 피해까지.......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2시간 20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의 한계 때문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 자세한 배경은
설명하지 못한 채 오직 처절한 전투씬과 그 와중의 미군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혹자는, 근래 9/11테러 공격 이후 고조되고 있는 미국중심주의의 선전물에 불과하다며 이 영화를 혹평했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소말리아의 현지인들은 인간이 아닌 시커먼 파도에 불과했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시커먼 파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고용한 "소년병" 민병대였으며, 
아이디드가 뿌린, 마약성분이 있는 환각제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환각에 취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른 채 총질하다가
총에 맞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소년병과 환각제 투여는 제3세계의 군벌 민병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속성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논하고 있는 '논픽션'의 저자 마크 보우든은, 그 배경의 설명에 대해서도 미흡하나 최선을 다했다. 
그는 소말리아인들 당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터뷰 등을 통해 중론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의 글을 근거로 할 때, 근본적으로 미군과 다국적군이 투입되게까지 한 소말리아의 기근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되려 부족간의 싸움이 초래한 인재(人災)였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90년대 초의 소말리아는, 어지러운 내전의 수렁 속에서  나라 전체가 허우적대고 있었다. 수십 여년간 
철권통치를 한 독재정권이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고 (바로 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주도한 쿠데타였다) 
그 동안 억압되던 각 부족의 갈등이 촉발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긴 내전을 통해 소말리아의 기본적인 국가의 생산 유통 시스템은 괴멸적 붕괴를 겪는다.
또한 각지에 할거한 군벌들은 자신들의 군사 전력 - 중화기 - 들이 전투 중에 거의 소모된 시점에서 
마침내 매우 효과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전투 수단을 꺼내든다. 이들은 서로 상대편 구역으로 갈
유엔 등지에서 온 구호식량을 차단시키는 것을 무기로 삼았던 것이다. (영화 첫 장면.)
이는 결국 물자부족을 기근으로 촉발시키는 결과를 낳고, 한 해에만 수십만 명이 굶어죽고 만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기아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누가 뭐래도 내전이란 것이다. 과거의 비아프라, 이디오피아에서 발생한 기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장면은 각지의 외신에 대대적으로 중계되었고, 국제사회의 온정어린 원조가 도착했으나 
군벌들은 이마저 탈취했다. 차단된 식량은 심지어 국제 암시장에 풀려 군벌의 사욕을 채웠다.
(북한이 자주 하는 짓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근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걸프전의 승리로 기고만장했던 집권 말기의 
부시(시니어) 행정부는, 냉전 종결 직후의 미국이 갖는 새로운 위상 - 이른바 '세계의 경찰'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 첫 무대를 소말리아로 택했다. '희망회복 작전'이란 이름 하에 
다시 다국적군을 편성, 소말리아의 치안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감행했던 것이다. 공화당과
부시(시니어) 행정부로서는 뒷감당의 걱정도 필요 없었다. 뒷감당은 곧 정권을 인수받을 
클린턴과 민주당의 행정부가 맡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최강으로 일컬어지는 중무장 상태의 미 해병대가 상륙했다. 코브라 공격 헬기와
각종 장갑차를 앞세운 미군과 다국적군 세력에게 군벌들은 놀라울 만치 고분고분했다.
소말리아에는 곧 평화가 오는 듯 했다. 부시(시니어)는 만족했고 소수의 치안 유지를 위한 
특수부대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주력인 미 해병대는 중화기와 함께 철수해버렸다. 
- 마치, 1949년의 남한처럼.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고분고분하던 군벌들은 강력한 제압 세력이 사라지자
다시 식량을 약탈하고 세력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뒤를 이은 클린턴 정권이 추진 중인
소말리아의 신정부 수립 구상은, 마치 설립 당시의 레바논처럼 여러 부족과 계파들의 권력을 
균등하게 나누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전임 군사독재 정권을 역시 그 또한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소말리아 내에서 최대 세력권을 자랑하던 '하브지디르' 부족의 수장,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는 
유엔과 남겨진 다국적군의 눈치를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병력을 이용하여
그들 군벌의 무장해제를 실시하고 있던 유엔 평화유지군(PKO) 소속 파키스탄 병사들 24명을 
무참히 참살시켰다. 그것이 국제사회, 즉 유엔과 미국의 정책에 대한 그들의 첫 대답이었다. 

뒤이어 아이디드의 민병대들은 파키스탄군 시체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잡어 낸 채 질질 끌고 가는 것으로
퍼포먼스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리고 정보가 통제되어 있는 소말리아의 민중들에게는 반미감정을 교묘히
이용하여 피의 카니발을 완성시킨다. 바로 "미국이 이교도의 신앙을 퍼트려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려 한다"는 
악선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 형제 국가인 파키스탄이 과연 그들에게 이교도의 신앙이었던가?
어쨌거나 군벌들은 이런 식으로 테러와 사보타주를 통해 소말리아의 민중들에게 국제사회에 반기를 들 것을
촉구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모가디슈의 유엔 평화유지군 최고위직에 있던 '조나산 하우' 제독은 치안유지와
소말리아 민중의 평화에 명백한 위험 인물인 아이디드의 제거를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엔군은
미군 휘하의 특수부대들을 이용, 아이디드와 그 심복들의 체포작전을 감행했다. 헬기 공중강습 작전이
여러 차레 실시되었고 또한 성공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아이디드와 그의 참모 둘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아이디드 군벌에 대한 미군의 공격에, 아이디드 자신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긴 내전으로 중화기를 완전 소모한 지금, 미군의 헬기를 격추시킬 수단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이웃 수단에 주둔하던 '아프간 전쟁출신의 게릴라'들이 등장한 것이다.
(9/11 테러보다 10년 전의 일임에 유의. 이 때의 아프간은 구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의미한다.)

(*지금 추측해보건대, 여러 뉴스와 외신을 조합할 때 이들은 빈 라덴의 수하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그들은
수단에 은거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웃기는 건 이들은 아프간-소련 전쟁 당시에는 미국의 지원을 암암리에
받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들 게릴라가 북한에서 파견된 군사고문단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소말리아쪽이 아닌 탈북 군관들의 증언들을 근거로 한 것임을 참조.) 

이들은 아이디드 군벌의 군사고문을 자처하고, 그들이 구 소련군의 헬기를 간단한 로켓 발사기로 격추할 때 쓰던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해 주었다. 영화 제9중대에서 그려지듯, 그들은 4발엔진 수송기 정도는 간단히 격추시켜버리는
전문가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이디드 측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을 무렵, 미국은 아이디드의 최중요 심복 2명의 소재를 파악하고
다시 그들을 체포하는 공중강습을 감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은 일어나고 만다. 게릴라의 조악한 로켓포에 
최첨단 페이브 호크기가 격추당하는, 그래서 미군의 상황실에서 저주스러운 파동으로 울려퍼지는 
'We got a black hawk down!' 이란 그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다 작전 중 가끔 발생하는 양측의 교전 때문에
물적 인적 피해가 발생하는 소말리아의 민간인들은 아이디드의 악선전에 제대로 고무되어 흥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분노한 소말리아 민중들까지 여기에 가세하였고... 그 처참한 결과는 먼저 언급한 바와 같다.




#3. '블랙 호크 다운' 그 이후와 사안의 본질

'작전'은 영화에서 표현된 대로 처참한 희생으로 마무리되었다. 

막대한 숫자의 소말리아 민간인의 피해,  그리고추락 헬기 조종사의 시신이 분노한 군중의 손에 의해
시장바닥을 질질 끌려 다니며 유린되는 장면이 외신을 통해 생중계 되는 모습 - 이런 것들은 집권 초기의
클린턴 행정부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과거 케네디 시절의 '피그스 만 사건'처럼 
군부가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것으로 여겼고, 분노했다. 하필이면 당시 클린턴은 러시아에서 벌어지던 
옐친의 반대파 쿠데타 진압에 관한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소말리아에 신경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국방장관 에스핀이 사임하고 해당 작전 책임자인 게리슨 소장은 군복을 벗어야 했다. 

이 사건의 후속 조처로서 다시 중화기(전차와 장갑차)가 소말리아에 투입되어 치안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이는 미군의 '영광스러운 철수'를 위한 초석일 뿐이었다. 클린턴/민주당 행정부로서는 애초에 이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기아에 빠지고 내전과 무정부상태의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는 소말리아 민중을 긍휼하기 위해'
나선 미국이 되려 소말리아 민중들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히는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은 한시바삐 손을 떼고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미국은 이러한 판타지를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대북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몇 달 전 워싱턴에서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라는 관계자의 코멘트가 나온 것도 이런 시각의 비판이다.)

그리고 미군의 전술에도 대대적 손질이 가해졌다. 추후 분석 결과, 작전 중 발생한 미군측의 인명피해의 원인은 
대부분 시가전 상황에서 그들을 보호할 적절한 장갑차량이 없었기 때문이란 결론이 나왔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전훈까지 이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냉전 당시 구 소련의 대규모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M-1A1 전차나 M-2 브래들리 장갑차는 이런 내전국가의 신속대응군용으론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래서 소말리아에서 당초에 미국이 전차를 배치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작전 지역으로 재빨리 운송되어
적대 세력을 시가전에서 제압, 조속히 치안을 회복할 수 있는 경량 장륜장갑차 부대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2000년대초 본격 제창된 '에릭 신세키' 참모총장의 '신개념 기동여단' 플랜으로 현실화되었다. 

(*웃기게도 당시 한국에서는 이 스트라이커 재편을 놓고 미군의 전쟁책동이라며 비난하는 세력이 있었고,
다른 일각에서는 미군철수의 초석이라며 비난하는 세력도 있었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출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건의 다른 쪽 당사국이요 제일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소말리아는 ㅡ 결론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말리아인들, 그 중에서도
미군에 대한 저항의 주체였던 하브지디르 부족은, 이 사건이 벌어졌던 10월3일을 국경일로 제정해놓았다.

그러나 "이미 국가조직 자체가 사라진 소말리아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해당 논픽션의 저자
마크 보우든은 고소(苦笑)를 짓고 있다. 비록 아이디드와 하브지디르 부족은 타 부족 세력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권을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방어했지만, 국제 사회는 그들의 내전과 기아 문제에는 알량한 구호품 외엔
완전히 등을 돌렸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디드의 폭주를 본 타 부족들도 세력다툼에 다시 나섰고, 이리하여
소말리아 내전은 재발하였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와중에 그 '아이디드' 또한 암살당하고 만다. 
차라리 아이디드 자신으로서는, 그 때 체포되어 미군에 의해 연금당하는 것이 결과론적으로는 좀 더 목숨을
부지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이라크 신정부가 사담 후세인을 빠른 시일 내에 목매달아 버린 것은 이러한
소말리아의 교훈에서 어느 정도 배운 것도 있다. 더 이상 '피노체트 방식'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말리아는 지금 현재, 완전히 다국적군 개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버린 상태이다. 내전과 기아로 인한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이젠 그것을 집계할 공신력 있는 조직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민중들 중
상당수는 중요한 인도양 교역로에 있는 소말리아에서, 그 흉흉한 이름의 '소말리아 해적떼'가 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앞서 펼친 의문들을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왜 그들(소말리아인들)은 국제사회의 구호의 손길조차 뿌리친 체 이 같은 결과를 자초했는가? 
왜 그들은 미국과 다국적군이 그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나? 그들은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원치 않았던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앞서도 설명하였지만) 외부인들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갭이 큰, 알려지지 않은 팩트가 많다. 

일단 미군에 대해 '저항했던 소말리아인'들은 내전 중 가장 큰 기득권을 가진 하브지디르 부족이었다.
그리고그 사건이 벌어진 공간은 그들의 세력권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기근 자체가 이들 다수파
부족의 상대 부족 견제수단으로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재' 인 마당에, 그들로선 다국적군에 의한 
평화의 유지보다는 그들의 기득권유지가 더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 동아프리카 특유의 
고질적인 부족간 전쟁 문화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들의 혈맥에는 용맹한 전사란 많이 죽이는 사람이란
전통이 아직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이 있다. 
저자 마크 보우든과 인터뷰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의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사건이 미국의 모든 중요정책에 대해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미국의 견해는, 
사악한 국가란 「깡패같은 지도자가 고상하고 선량한 국민을 억압하는 곳」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말리아가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전 국민이 악에 받쳐 대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의 노파를 붙잡고 물어 보십시오. 평화를 원하냐고... 그러면 노파는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신께 매일 기도한다」고 답할 겁니다. 

질문을 바꿔, 그렇다면 평화를 위해 상대편 부족과 권력을 공유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노파는 정색하며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그 살인자, 도둑들 말이오? 차라리 내가 죽고 말겠소.」 

요컨대 그런 나라 사람들 - 대표적인 예로 보스니아 -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항구적인 권력을 원할 뿐입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말이죠. 미움과 살육은 
그들이 원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그들이 증오와 살육을 멈출 만큼 
평화를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견해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그 후 웬만한 중소국의 내전과 학살극에 대해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르완다에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당해도 수수방관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된
보스니아 내전 또한 거의 막바지가 다 되어서야 참가했을 뿐이었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시도된 국제사회와 그 것을 주도하던 강대국의 '평화를 위한 실험'은,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렇게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실패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4. 마치며

이리하여 블랙 호크 다운은,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르며 영화화 이전까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새까맣게 잊혀졌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게 적대하는 세력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훌륭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설령 자기편의 사람들이 500이 죽어 나가건 1000이 죽어나가건, 미군 몇 명만 살해하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려한 저자 마크 보우든은 책의 말미에 미군의 조기 철수는 분명 잘못된 것이며, 
상대에 대해선 애초에 가능한 한 협상하는 입장으로 견지하고, 그게 안 되어서 무력을 쓸 경우엔
절대 고삐를 늦추지 말고 끝을 보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상대측은 승리의 개가를 올렸고
그 뒤에선 이 사태 배후에서 암약한 '빈 라덴'도 미소짓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러한 미적지근한 태도는 그들의 적들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어쩌면 9.11테러의 참극은 그 당시의 미국의 실책도 일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________________

밑에 소말리아에 대한 세계일보 기사가 있길래 다시 꺼내 봤습니다.

요즘 시국에도 별로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그게 하필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건 기분이 참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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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65 여기가 듀나무숲인가요? [14] 잉여공주 2010.12.01 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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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63 욕망의 불꽃 정하연 작가, 신은경-조민기 연기 공개지적 (조작 기사였다는 군요.) [16] 보이즈런 2010.12.01 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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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59 처음으로 부러워하게 된 남의 삶 [11] 푸케코히 2010.12.01 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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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55 사람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괴리 [10] One in a million 2010.12.01 2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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