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한글이 고민

2015.10.2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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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일요일에 만 5세가 되는 남자아이(이하 누에)를 키우고 있어요. 쭉 집에 있고 여행다니고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유치원에 갔어요. 인근에 여러 선택지 중에 가장 공부를 덜 시킨다고 하는 곳으로 보냈죠. 애가 한글은 커녕 숫자도 못 셌거든요.

4월에 입학 전에 미리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절로 하게 된다며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마음을 놓았죠.

그런데 6월 말에 전화로 누에가 유일하게 한글을 쓸 줄 모르며 2학기에 문제가 될 수 있으. 여름이 지나기 전에 한글 교육을 마쳐달라고 하더군요. 자신. 누에가 쓸 글자를 미리 점을 찍어.. 그 위에 대고 누에가 그리는.... 식으로 변통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면서요.

아이에게 물어보니 한글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어요.. 부랴부랴 교재를 사고 ㄱ가르치기 시작해서 지금 차열까지 왔어요.

그런데 한글날 또 사단이 났어요. 체육관에 애들을 모아놓고 과거시험을 봤는. 누에 혼자 답안지 작성을 못한 거죠.... 벽에 붙은 답안지들을 보고 내심 놀랐어요. '훌륭한, 긍정적인' 이런 어려운 단어들을 누에를 제외한 모든 아이가 받아썼더라고요.

그 날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했지만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누에가 드디어 속마음을 얘기했어요.
오늘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누에는 '한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해요. 애들이 어지간히 놀리는 모양입니다. 한달 내내 놀렸다고, 놀린 아이 이름을 일일이 대가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선생님들도 놀렸다니..
다른 반 선생님이 일부러 누에 답안지를 보러와서 놀렸다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제대로 못썼겠지만.. 눈물의 한글날이었죠.
좀 친한 친구는 안놀린다고 해요. 누에가 '걘 내 친구야, 걘 내 친구가 아냐.' 이런 말을 자주 했는데 그 기준이 놀리고 안놀리고였다니..
밥 먹으면서 얘기 듣는데 너무 속상해서 쓰기 복습 시키고 설거지하며 울었어요. 우는 거 보면 앞으로 얘기 안할까봐 ㅠㅠ
오늘 누에는 차열을 끝냈어요. 이제 자음 네개가 남았네요. 받침과 이중모음 등 갈 길이 머네요..

지금 누에가 속한 교육과정이 누리과정인데 이 안에는 한글교육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요. 그리고 원에서 할 수도 없죠. 선행 때문에 실력 차가 천차만별이니까요.

전 저때만 생각하고 학교 가기 전에 떼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급작스럽고 당황스럽네요.

처음엔 여유있게 놀이처럼 재밌게 했는데 요즘은 마음이 급해서 자꾸 화를 내게 돼요. 침울해하는 아이를 보면 뭐하는 짓인가 싶고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사교육의 힘을 빌려야하는 걸까요? 혼란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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