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9호선에서 있었던 일.

2015.12.09 23:12

구름진 하늘 조회 수:3611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출퇴근 러시 때의 9호선 급행이 왜 '지옥철'로 불리는지를, 출근 첫날부터 톡톡히 깨달았었지요.

요즈음은 그래도 출근 때라도 사람답게 이동하고 싶어 약간 더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고 일반열차를 타기도 합니다만,

퇴근 때에는 거의 매번,함께 일하는 분과 같이 급행에 오릅니다.

집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흡곤란의 상태를 견딥니다. 이제는 제 몸을 테트리스의 알맹이 한 조각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그 좁디좁은 공간이나마 몸을 효율적으로 오그릴 수 있을까, 알아채는 데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오늘 퇴근 때.

함께 타는 분들이 오늘은 유달리 거의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남자분들이었습니다.

남자들이 한번에 한 장소를 향해 떼로(?)힘을 쓰니, 그 박력이 남다르더군요.

내 몸이 내 몸 아닌 상태로, '찌브'가 되어 어느 순간 전철에 쑥 밀어넣어졌습니다.

고탄력 팬티스타킹 속의 다리가 된 기분으로, 함께 일하는 사수님과 겨우 맞닿아 설 수 있었습니다.


노량진 역 즈음에서, 예의 사람들이 인정사정 봐 주지 않는 무지막지함으로 내리고,

또 역시 그같은 힘으로 사람들이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 친근한 동행이 있거나 할 때 감탄사 같은 혼잣말을 종종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혼잣말 하면 좀 그렇겠죠 )

원래는 입 속으로 조용하게 이 말을 중얼거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장 속에서 연동 운동을 겪는 음식물과 같이 다방향에서 들어오는 강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저는  

그 순간 그만 육성으로 외치고 말았습니다.



"사람 살려...!"




곧이어 주변 분들-아저씨들의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군요.

문자 그대로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흘긋흘긋 제 쪽을 보며, 또는 혼자서 웃음을 삼키듯 하는 분들의 표정을 보며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더군요.



그 때에는 창피했지만, 집에 가서 그 상황을 생각하니 좀 웃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순간 진심이었는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03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6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760
126493 서울에서 프렌치 수프(포트푀Pot-au-feu) 파는 레스토랑 아시는 분?(노 스포일러) new ally 2024.06.17 48
126492 베네데타 포르카롤리 인터뷰 [3] catgotmy 2024.06.16 87
126491 [영화바낭]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봤습니다 [1] update 로이배티 2024.06.16 279
126490 에어 보다가 든 생각 daviddain 2024.06.16 94
126489 (전범선과) 양반들 정규앨범 1집 타이틀곡 Let It Flow 뮤직비디오 상수 2024.06.16 47
126488 [노스포] 인사이드 아웃2, 영화관람주기/비용 [2] 가라 2024.06.16 173
126487 매드맥스 시리즈의 연속성 [2] 돌도끼 2024.06.16 187
126486 프레임드 #828 [2] Lunagazer 2024.06.16 41
126485 게시물 목록이 884페이지까지만 보이네요 [2] civet 2024.06.16 102
126484 '걸어서 세계 속으로' 축구선수 이름 자막 사고를 기억하시나요? [4] civet 2024.06.16 233
126483 the crow Eric Draven guitar solo/INXS - Kiss The Dirt (Falling Down The Mountain) (Official Music Video) [8] daviddain 2024.06.16 34
126482 [게임바낭] 조현병 체험 게임 두 번째 이야기, '세누아의 전설: 헬블레이드2'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6.16 122
126481 우주소녀 성소 중국어 catgotmy 2024.06.16 78
126480 넷플-마담 웹, 짤막평 [4] theforce 2024.06.16 207
126479 야채듬뿍 더 진한 음료 catgotmy 2024.06.15 101
126478 영드 "더 더럴스(The Durrells)"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족 드라마 있을까요? [3] 산호초2010 2024.06.15 116
126477 Interview With the Vampire’ Director on Casting Tom Cruise Over Daniel Day-Lewis and the Backlash That Followed: ‘The Entire World’ Said ‘You Are Miscast/벤 스틸러의 탐 크루즈 패러디’ daviddain 2024.06.15 69
126476 프레임드 #827 [4] Lunagazer 2024.06.15 51
126475 TINI, Sebastián Yatra - Oye catgotmy 2024.06.15 34
126474 나와 평생 함께가는 것 [2] 상수 2024.06.14 219
XE Login